공의와 사랑이 만난 십자가

김환기/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4/01/26 [11:25]

구약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이고, 신약은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록이다. 히브리서는 모세를 통해 주어진 옛 언약과 대조하면서 새 언약의 개념을 강조했다. 히브리서 1장 1-2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의 연속성과 성취를 강조하며 구약과 신약을 연결했다.

 

1절을 보면 하나님은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저런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구약이다. 2절 하나님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신약이다. 구약은 ‘하나님의 공의’를 강조하고, 신약은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십자가에서 만났다.

 

하나님의 공의 (Righteousness of God)

 

공의란 '공평’과 '정의’를 하나로 줄인 말이다. 하나님께서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는 상급을 주지만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벌을 내린다. 문제는,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의가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아담의 죄로 인해 육으로 태어났다. 육에 속한 자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을 자랑을 쫓는다.

 

"만물보다 더 거짓되고 아주 썩은 것은 사람의 마음이니, 누가 그 속을 알 수 있습니까?"(렘 17:9)

 

인간은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 죄인은 결코 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에 속한 것을 생각하나,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한다. 육신에 속한 생각은 죽음이나, 성령에 속한 생각은 생명과 평화이다.

 

하나님의 사랑 (Love of God)

 

하나님의 사랑은 '아가페' 사랑이다. 아가페 사랑은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이며, 이타적인, 자기희생의 사랑이다. 아가페는 개인적 이득이나 감정적 연결에 기반을 두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최선을 추구하려는 의도적인 선택에 기반을 둔다는 점에서 낭만적인 사랑(에로스)이나 형제애(필리아)와 같은 다른 형태의 사랑과 구별된다. 하나님의 사랑은 바다보다 넓고, 하늘보다 높고, 우주보다 크다. 우리가 아무리 큰 죄를 지었을지라도 하나님이 용서하지 못할 죄는 없다.

 

우리가 아무리 큰 문제를 만날지라도, 하나님께서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며, 우리의 믿음을 통해 은혜를 베푸신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아가페 사랑은 우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지고,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만든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Cross of Jesus Christ)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만난 곳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공의를 바탕으로 한 사랑이다. 공의가 없는 사랑은 ‘무법주의’이고, 사랑이 없는 공의는 ‘율법주의’이다. 십자가는 우리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공의가 완성된 곳이다.

 

우리는 아담의 죄로 인해 육으로 태어났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믿음으로 영으로 다시 태어났다. 요한복음 4장 3절에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지’(born again)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했다. ‘거듭난다’(born again)는 것은 ‘영으로 나는 것’(born spiritually)이고, ‘위로부터 나는 것’(born above)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 제물이 되고, 제사장이 되어 제단인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시고,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3일 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셨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김환기|본지 영문편집장, 구세군라이드교회 

▲ 김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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