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이 행복

손성훈/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4/01/26 [12:01]

 

인생 말년이 뇌졸증 전과 후의 삶으로 바뀌었다.  뇌졸중 전엔 건강하고 무료했으나 후엔 병을 치료하며 다시 건강해지고자 무진 애를 쓰게 된다. 다시 건강해지면 전에 못 느꼈던 행복감에 휩싸일 것만 같다.

 

두통이 한 달 이상 계속되고 왼쪽 팔에 감각이 무뎌지는데도 병원 응급실을 안 찾은 나의 무지함에 화가 나기도 하고 상담했던 인도인으로 보이는 여의사가 미워지기도 한다.

 

일주일에 서너 번의 골프를 치고 거의 매일 와인을 마셨지만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고 신앙생활도 무덤덤하고 맹숭맹숭한 좀 지루하달까, 하는 날의 연속이었다.

 

전에는 혈압도 정상이요 콜레스테롤 치도 평균에 속했기에 뇌졸증은 꿈도 꾸지 않았는데 쓰러진 날 저녁에 백포도주를 많이 마신 게 원인이었다. 나중 들은 담당 의사의 말에 의하면, 와인이 혈압을 높혀 그 지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아쉬운 것은 진작 그런 정보를 알았다면 취하도록 와인을 마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상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라고 밤낮 앵무새처럼 읊어댔지 실질적인 건강 관리는 등한시했던 것이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뇌졸증은 전혀 다른 동네 얘기로 여기고 있지 않았는가.

 

이른 아침에 머리가 깨질 듯 아파(종래와 다른, 치통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사고를 직감하고 구급차를 불렀다. 구급차는 쓸데없이 로비나 병원에 갔다가 마땅한 의사가 없다는 말에 골드코스트 대학 병원으로 다시 갔다.

 

그곳에서 난 정신을 잃었고 의사 말에 의하면 기적처럼 사흘 만에 깨어났다. 병원 측에선 아내를 따로 불러 닥쳐오기 싶상인 죽음이나 반신불수를 준비하라는 안내를 했고 아내는 마음 준비를 단단히 하며 아들과 함께 하나님께 나를 살려달라는 기도를 했다고 한다.

 

병원에 3개월쯤 있다가 퇴원했다. 병원에선 더 있으랬지만 우선 밥이 입맛에 맞지 않았다. 양식 체질이 아닌 이유도 있었지만 냄새 하며 영 성의를 보이지 않는 식사였기에 식사 시간 때마다 미간을 찌푸리곤 했다.

 

그래서 배달 음식을 많이 먹었는데 무엇보다도 병세가 굳이 병원에 더 있는다고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아내의 걸어서 퇴원하게 해달라는 기도 덕분인지 무사히 걸어서는 나왔는데, 어지럼증과 미각 후각의 감각이 거의 상실되었고 변비가 심했다.

 

이런 증세는 퇴원 6개월이 지난 지금도 거의 똑같다. 약을 먹고 운동을 해도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엔 그래서 한의원을 찾아 침과 뜸을 맞고 한약도 주문했다. 보통 어지럼증은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없어진다고 들었는데 한편 거저 없어질 것 같지 않아 한방에 의존해보기로 한 것이다.

 

의사들은 이나마의 상태가 기적이라고 하지만, 만약 이 상태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많이 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뇌졸증 전의 비교적 건강했던 삶이 그리워진다. 누구든지 건강한 사람들을 보면 부러웠고 그들이 행복해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보였다. 정말 “건강을 잃으면 모든걸 잃는다”가 지금처럼 실감 날 때가 없다. 그야말로 건강을 가지면 모든 것을 가진 것 같다라는 말로 대체할 수 있을 것 같다.

 

풀어진 신발끈을 매려고 해도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하는 이 어지럼증은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최악의 짐이다. 걷는 것도 조금만 자세가 흐트러지면 비틀거리게 되고 좋아했던 골프도 못 치고 어떤 일도 하기가 힘들다. 운전도 하지를 못해 어디를 가도 항상 아내의 도움를 받아야 하니 답답하기가 그지없다.

 

하루하루가 감옥에 갇혀있는 것 같은데다 미각과 후각도 망가져서 맛을 제대로 못 느끼고 냄새도 그 좋아했던 구수한 커피 내음이 역겹게 느껴진다. 그 달콤한 맛의 초코릿도 씁쓸하기만 하고 식욕까지 잃어 식사 시간만 되면 괴로워진다.

 

변비도 병원에 자꾸 누워있다보니 생겼는데 변비약도 잘 듣지를 않아 일주일 이상 볼일을 못본 적이 있다. 그러면 배가 탱탱해지며 관장을 해야 했는데 나중엔 그것도 내성이 생기는지 하나마나였다.

 

한 번은 딱딱한 변이 오줌관을 누르는지 오줌통은 탱탱하고 오줌은 마려운데 오줌을 눌 수가 없었다. 한 방울도 나오지 않고 오줌보는 터질 듯 하는 게 정말 고통스러웠다. 간신히 관장을 몇 번 해서야 해결을 했는데, 정말 오줌을 잘 누는 것도 복이었다.

 

그 뒤 의사에게 사정을 하여 위 내시경 찍을 때 먹는 위와 장 세척액을 처방받아 만성변비를 가까스로 해결했고 지금은 그럭저럭 변비를 해결한 상태다.

 

그 하찮게 생각했고 어느땐 귀찮기도 했던 변보기와 오줌 누는 것이 여간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각종 음식의 냄새에 만족해하며 맛있게 먹던 그런 것들이 얼마나 행복했던 것인가. 비틀거림 없이 맘대로 골프치거나 걷고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실로 큰 축복이었다.

 

돌이켜보면 매순간 즐겁고 생명의 기쁨을 가져야 마땅했던 그 시간들이 왜 무료했는지 참 모를 일이다. 매 순간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도 모자를 판에 무감각한 신앙 상태에 메마른 감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깨닫는 것은 아무리 감정의 샘이 말라 있더라도 이성의 우물을 퍼올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의 믿음이 왜 이러지 하며 메마른 감정을 용납하면 안 된다. 억지로라도 펌프질을 하듯 기도와 노력으로 감정을 살려야 한다. 그러면 신앙의 회복은 물론 성령님의 도움으로 믿음의 열정이 살아나리라 본다.

 

뇌졸증 전의 그 평범했던 일상이 행복이었고 뇌졸증으로 말미암아 감사함을 깨닫게 된 지금 오히려 뇌졸증이 내 잠자던 믿음을 깨웠다고 생각하니 그것이 당장은 고통스럽더라도 필요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지금의 육체적 생활이 너무 힘들어(특히 인내심 부족으로) 아프고 나서가 여러 면에서 더 낫다고 할 수는 없지만 조만간 다 회복된다면 차라리 아팠던 것이 나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것 같다.

 

아프기 전에 좋은 믿음으로 그때의 행복감을 알았다면, 건강에 좀더 신경 썼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후회도 들지만 이미 지나간 것을 되돌릴 수는 없어 마음이 아프기만 하다. 이런 이유로도 타임머신이란 주제가 흥미로운 것일 터이다.

 

곰곰 생각하면 인생은 금방 끝나는데 영원한 내세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뇌졸증이 없이 그럭저럭 삶을 무난하게 끝냈다 한들 하늘의 상급이 별로 있었겠는가.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큰 육체의 손상없이 살려주신 것은 나를 어여삐 보셔서 남은 인생 하늘의 상급을 잘 쌓으라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이제 확실히 알았다. 영원한 죽음 이후의 생에 비해 극히 짧은 이 세상에서의 삶은 그 긴 삶을 위해 치러지는 시험 기간이라는 사실을. 이 찰라의 순간에 길고도 긴, 아니 끊나지 않을 삶이 결정되는 것이다.

 

지금은 하루하루가 사실 불편하고 지루하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다. 자살하는 사람들 이해가 될 정도로 우울증도 찾아온다. 밤에 잠도 안 와 수면제에 의존한다.

 

그러나 아내의 말처럼, 언젠가 지금의 내가 괜찮았다고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억지로라도 행복해지려고 애쓴다.

 

아무튼 이제 남은 삶은 온전히 영원한 시간을 위해 바쳐야 한다. 실수와 실패가 많은 삶이었지만 앞으로는 현명한 판단만을 해야겠다.

 

그래, 가자 힘차게, 영원한 미래를 위해! 〠

 

손성훈 |크리스찬 소설가 골드코스트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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