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

글/주경식 사진/권순형 | 입력 : 2024/04/23 [12:11]

▲ 시드니인문학교실 초청으로 시드니를 방문한 지강유철 작가가 본지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크리스찬리뷰     

 

시드니에서 만난 지강유철 작가 

 

시드니인문학교실(대표 최진)에서 장기려 평전을 쓴 지강유철 선생을 지난 3월 시드니로 초대했다. 

  

그는 시드니인문학교실에서 ‘아우슈비츠에서 드러난 음악과 인문학’ 강의를 시작으로 시드니새순장로교회와 시드니한인장로교회에서 ‘의사 장기려가 튼 삶과 신앙의 물꼬’ 그리고 시나브로 독서회에서 ‘장기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한 의사’ 등 4차례의 강연을 펼쳤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강연회는 아니었지만 지강유철 선생의 강연에 참석해 진수를 맛본 사람들은 모두 감명 깊은 시간이었다고 평가들을 하고 있다.

  

그가 시드니에 일주일 머무는 동안 그와 함께 여러 곳을 다녔다. 지강유철 선생은 기자의 대학 선배이다. 그를 사적으로 만나본 사람들은 모두 느끼겠지만 치열한 독서와 끊임없는 사색을 통해 다져진 그의 품격은 사람을 묘하게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그런데 그는 늘 변방의 경계에 서있는 경계인이다. 

  

그는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한 음악가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개신교와 진보 월간지에서 우리시대 양심적 지식인, 정치인, 예술인 등을 인터뷰한 전문 인터뷰어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1998년 교단장 금권 선거 양심선언이 계기가 되어 교회개혁운동에도 뛰어들었다. 이런 경력 때문인지 2002년 창립한 교회개혁실천연대 초대사무국장도 역임했다. 2009년부터는 양화진문화원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하며 부당해고를 당하기도 했지만 승소하여 2019년에 퇴직했다. 

  

그는 2002년 ‘요셉의 회상’을 시작으로 ‘안티 혹은 마이너’ ‘장기려 그 사람’, ‘장기려 평전’을 저술했고, 이외에도 ‘존 스토트, 우리의 친구’, ‘전병욱 다시 읽기’, ‘교회 세습반대의 풍경들’, ‘사랑하며 춤추라, ‘백낙청 회화록’, ‘신영복의 말과 글, 만남’, ‘당신은 정의로운 사람입니다- 노회찬이 꿈꾸는 정치와 세상’등을 공저했다. 

  

이쯤되면 그는 작가이다. 그러나 지강유철 선생은 작가라는 호칭보다 선생을 선호한다.

  

이 시대의 작은 거인

  

그의 이력이 보여 주듯이 그를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힘들다. 어떻게 보면 그는 교회와 세상의 주류보다는 변방을 선호한 경계인이 어울린다.  

  

▲ 지강유철 작가는 의사 장기려에 대해 ‘장기려, 그 사람’, ‘장기려 평전’ 등 두 권의 책을 집필했다.     

 

시드니인문학교실의 최진 대표는 지강유철을 이렇게 소개한다. “지강유철 작가는 장기려 평전을 쓴 저자로, 직접 만나면 평생 올 곧게 살아가려는 단아하지만 기품 있는 사람이다.” 평생 올 곧게 살아가려는 사람, 단아하지만 기품 있는 사람이라는 짧지만 정곡을 찌르는 그의 관찰력에 고개가 끄덕여 진다.

  

기자는 지강유철 선생을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에 등장하는 주인공 ‘프로도’에 비교하고 싶어진다. 간달프는 왜 이 절대 반지를 싸움 잘하고 용맹한 많은 장수들에게 맡기지 않고 작고 힘없는 프로도에게 맡겼을까? 그것은 프로도의 올 곧은 양심과 그의 변하지 않는 인간성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유혹과 욕심이 찾아와도 프로도는 이 절대반지의 파워의 유혹을 거부하고 임무를 수행함으로 악의 세력을 물리친다. 결국 세상의 평화는 욕망을 거부하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은 작은 거인 프로도가 가져왔다. 

  

그래서 기자는 지강유철 선생을 ‘이 시대의 작은 거인’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는 언뜻 보기에는 조용하고 온순하고 수줍음까지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는 부당한 차별과 부정직한 세상에 대해서는 결코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투쟁하는 결기가 있다. 그의 이러한 용기와 신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러면서도 그는 음악을 사랑하는 음악가이다. 그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경지를 소개해 본다. 일주일 그와 함께 차를 타고 다니는 동안 호주 ABC 클래식 방송을 틀었다. 클래식 음악이 연주되면 아나운서가 소개하기도 전에 누구의 무슨 곡인지 심지어는 누가 이 음악을 지휘했는지까지 맞추기도 한다. 

  

얼마나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들었으면 이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그는 이렇게 조용하면서도 단단한 내면과 부당한 차별에 항거할 줄 아는 올곧은 외면 모두를 소유한 이 시대의 작은 거인임에 틀림없다. 

  

이제 직접 그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이 인터뷰는 지난 3월 27일 맥쿼리 팍 메리톤 호텔에서 약 한 시간 반 동안 진지하게 진행됐다. 

 

▲ 본지 주경식 편집국장과 인터뷰중인 지강유철 작가(왼쪽).©크리스찬리뷰     

 

- 간단하게 자신에 대해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생긴 대로 살아야, 그러니까 순리를 따라야 더 행복할 것 같은데 어찌하다 보니 저는 제 생긴 대로를 거부하거나 거기서 도망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생긴 대로의 자아’와 ‘되고 싶은 자아’ 사이에서 갈등하며 살고 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는 화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색을 또렷하게 구분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화가의 꿈을 접었습니다. 그러다가 멋진 지휘자가 되고 싶다는 저의 두 번째 꿈과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부모님의 뜻을 동시에 충족시키기 위해 총신대에 들어가 음악을 공부했습니다. 

  

졸업 후에 교회 지휘자로 사역하던 중 교단장 금권선거 양심선언이 계기가 되어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본부 건강교회 국장으로 사역했고 담임목사 세습반대운동에 참여했습니다. 그 후 교회개혁실천연대 초대사무국장, 기독교 사상, 복음과 상황, 인물과 사상에서도 일을 했고, 마지막으로 양화진문화원 선임 연구원을 하다가 부당 해고를 당했지만 승소하고 은퇴를 했습니다.” 

  

- 최초 작가로 등단한 작품이 ‘요셉의 회상’ 소설인데 어려운 소설 책을 쓰게 된 동기 그리고 과정들을 설명해 주십시오.

  

▲ 지강유철 작가의 등단 첫 작품 ‘요셉의 회상’     

 

“‘요셉의 회상’을 소설이라고 규정한 것은 제가 아닙니다. 저는 소설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냥 요셉이 되어서 그의 눈으로 창세기를 읽어 본 에세이였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저는 30여년 동안 청년 대학부 지도만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삼일교회 목사님께서 고등부를 맡아 부흥시켜 달라고 했습니다. 청년부만 했던 제겐 큰 부담이었습니다. 고등부에 가보니 초점을 잃은 고등부 학생들이 눈도 마주치지 않고 앉아 있는데 고등학생 지도를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저로서는 큰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어려운 난제를 풀기 위해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에 대해 설교를 해보자, 그래서 주석도 참고하고 요셉에 대한 책들도 찾아보면서 요셉에 대한 연속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요셉에 대해 당시 제가 찾아볼 수 있는 책들은 다 참조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의 요셉에 ‘나’를 대입하여 그의 눈으로 보다보니 안 보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다행히 그 설교는 저와 학생들 모두에게 좋았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을 청년 대학부 주보에 에세이로 썼습니다. 

  

그러나 총리가 된 요셉과 형제들의 만남이 전개되는 부분에서 연재를 중단했습니다. 용서란 주제를 30대 초반의 나이로 풀어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몇 년 후 왕성교회 청년교역자로 있을 때 이 에세이를 고쳐 썼습니다. 

  

그 원고는 월간 복음과상황에 연재가 됐습니다. 당시 복음과 상황 담당 기자가 홍성사로 자리를 옮긴 후 책으로 출간하게 된 것입니다.” 

  

- 여러 기관들(특히 ‘복음과상황’, ‘기독교사상’ ‘인물과사상’)을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했습니다. 그분들을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그분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분들 몇분을 소개해 주시고 인상깊었던 부분을 말씀해 주세요. 

  

“인터뷰를 가장 오래한 잡지는 월간 ‘복음과 상황’이었습니다. 3년 6개월 동안 매월 원고지 100매 분량의 긴 인터뷰를 했습니다. 

  

저를 전문 인터뷰어 직함을 달게 해준 첫 인터뷰였던 DJ. DOC 인터뷰를 잊을 수 없습니다. 파격적인 음악과 가사로 당시 우리 사회에 여러 면에서 충격을 안겨주던 이 인터뷰가 기독교 잡지에 실린 게 당시 복음과 상황 잡지들에게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때 ‘선택과 옹호’라는 꼭지 제목을 달고 우리 시대에 올곧은 목소리를 내며 저항하는 이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때 이름을 날렸던 이들을 호출하여 추억담을 듣는 인터뷰가 아니라 당시 우리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다가 불이익을 당하며 싸우고 있는 이들을 만나 그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하려고 했습니다. 

  

노무현, 김근태, 권영길, 이문옥 전 노동당 서울 시장 후보, 유시민, 문성근, 고종석, 진중권, 김규항, 정연주, 강만길, 김정란, 고은광순, 오한숙희, 이유명호 등 한 분 한 분과의 만남이 제겐 모두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로는 민중 미술가 홍섬담입니다. 그리고 원로 수학자이자 장기수였던 안재구 선생입니다. 또 호주제 폐지와 가부장적 권위에 발랄하게 저항한 고은광순, 이미 고인이 된 노무현, 그리고 인물과 사상에서 만났던 노회찬, 신영복 선생 등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월간 ‘기독교사상’에 1년 연재를 한 박홍규 선생과의 12차례 연속 인터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들에게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얼 지향해야 할지, 그리고 예술은 무엇인지, 우리 시대를 어떻게 읽고 거기에 합당하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하셨는데 책마다 뚜렷한 시각과 특징과 주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러한 시각을 발전시켜 나갔는지요? 그리고 지강유철 선생의 문학적 스타일이나 작가로서의 철학은 어떻게 설명하실 수 있습니까? 또한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가치관이 있는지요?

  

“여러 권이라고 하지만 제 주제는 늘 사람이었고 시대였습니다.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 일이 가장 의미있는 일이었고 제가 즐겨하고 싶은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어려서부터 저의 부친과 상담을 받으러 온 다양한 신앙인, 파출소장, 면장 등 지역 유지들 이야기 속에서 제 신앙의 주요 골격이 형성되었습니다. 

  

월남한 아버지는 여러 차례 목숨을 걸고 38선을 넘은 이야기를 많은 이들과 대화 중에 간증하셨습니다. 거기서 대화의 즐거움, 대화를 통한 신앙 교육을 배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배우는 일은 저에게 가장 큰 배움을 얻는 시간이었습니다. 

  

작가로서의 철학에 대한 질문은 저같이 부족한 작가가 대답할 사안은 아닌 듯합니다. 그러나 저의 일관된 관심이 하나 있다면 부당한 차별에 반대하며 약한 쪽을 편들며 그들의 목소리를 우리 사회에 들려주는 것입니다.”  

  

- 많은 책들을 저술한 작가이기도 하지만 찐 음악가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음악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요? 그리고 지금도 음악을 너무 사랑하고 있는 데 제가 보기에는 이렇게 철저하게 음악을 듣고 공부한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음악에 대한 애착(?)과 집중은 본인의 성격과도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음악가는 못되고 음악을 좋아하는 음악도 정도가 어울리겠습니다. 50대 초반까지는 제가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 지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소리를 감히 못합니다. 음악을 사랑한다는 표현도 자제 정도가 아니라 포기했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 정도가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음악에 재능이 있다는 건 초등학교 때 교회와 학교에서 어쩌다 한 번씩 노래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선생님들로부터 과분한 칭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누군가가 시켜서 노래를 할 때마다 벌벌 떨었습니다. 

  

▲ 부당한 차별과 부정직한 세상과 결코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투쟁하는 결기가 있는 지강유철 작가. 그는 음악을 사랑하는 음악가이기도하다.©크리스찬리뷰     

 

만약 그때 선생님들이 저에게 노래를 잘 한다는 칭찬과 격려를 안 해 주셨더라면 제가 음악적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살았을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어린이들에게 칭찬과 격려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된 것도 제 마음속에 언제부터인가 생긴 ‘나는 글쓰기를 잘 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이 들 때 제 마음이 들려주는 소리를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썼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음악을 더 철저하게 연구한다고 생각하는 건 제가 역사나 인물 공부에서 얻은 노하우가 음악 듣기에도 자연스레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작품이나 작곡가가 궁금해지면 인물 평전을 쓰면서 얻었던 시각이나 문제 의식이 상당할 정도로 도움이 됐습니다. 

  

제 성격과의 연관이란 주제는 별로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 ‘의사 장기려’에 대해 두 권의 책을 내놓으셨습니다. 맨처음 장기려에 대해 책을 집필하신 동기 그리고 같은 사람에 대해 두 번씩이나 책을 저술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지강유철 작가는 시드니한인장로교회, 시나브로독서회, 시드니새순장로교회, 시드니인문학교실에서 강연회를 가졌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크리스찬리뷰     

 

“장기려 선생님이 평양에서 해방 이후 출석하셨던 산정현교회는 한국 전쟁 이후 부산과 서울에 세워졌습니다. 물론 평양에서 월남한 그 교회 교인들이 세웠습니다. 

  

저는 서울 서초동에 있던 산정현교회 청년부 교역자와 지휘자로 있을 때 홍성사로부터 집필 청탁을 받았습니다. ‘성산 장기려 기념사업회’가 장기려 10주기를 기념해 홍성사에 작가를 의뢰했는데 제가 선정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2007년에 ‘장기려, 그 사람’을 출간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여러 자료들이 새롭게 발굴되었고, 무엇보다 제 책에 아쉽고 보완해야 할 점이 너무 많았습니다. 게다가 장기려와 관련된 역사 왜곡 시도가 한 개인이 아니라 교단 차원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전면 개정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왜 두 번이나 거의 20년에 걸쳐 이 작업을 해야 했느냐 물으신다면 함량 미달의 책을 낸 것이 장기려 선생에게 미안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그 미안함이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평전을 새롭게 쓰게 만들었습니다.”

  

- 마지막으로 본인의 인생철학과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책, 추천하고 싶은 책과 그 이유, 앞으로의 저술 계획이나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감명깊게 읽은 책은 좀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책이라 해야 할 만한 책이 있기는 한건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20-30대에는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와 손봉호, 언론인 김중배와 작고한 김성식 전 경희대 서양사 교수, 존 스토트 등을 거듭해서 읽었습니다. 50대 이후에는 장 아메리, 파스칼 키냐르, 가토 슈이치, 철학자 김진석을 거듭 읽었습니다. 저는 한 권을 오래 거듭 읽는 독서를 선호합니다. 

  

음악으로 평전을 써 보고 싶은 음악가는 프란츠 리스트입니다. 만약 제가 한국에 태어나서 기독교 신앙을 갖지 않았다면 굳이 프란츠 리스트 평전을 써볼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리스트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리스트가 우리 한국 사회, 특히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제공하는 작곡가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3년 전부터 괴테의 ‘파우스트’를 몇 년째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예술, 특히 음악에 끼친 영향을 중심으로 책을 한 권 써볼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 제 관심은 블레즈 파스칼과 한국 전통춤 ‘승무’입니다. 춤, 특히 우리 춤을 통해 우리 민족의 얼과 멋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에필로그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가 인생을 얼마나 치열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는지 숙연해진다. 별난 사람 지강유철은 그냥 떨어진 것이 아니다. 많은 담화 가운데 아직도 그의 말이 기자의 귓전을 때린다. 

  

“26세에서 45세까지 정말 미친듯이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지적으로 거듭났습니다”

  

“제가 작정하고 교회와 사회의 불의에 맞서 싸우려고 나간 것은 아닙니다. 단지 저는 저의 삶에 던져진 불의와 부당한 차별에 정직하게 반응한 것뿐입니다”〠

 

주경식|본지 편집국장 (PhD)

권순형|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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