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요일 4:7-11)

정지홍/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2/01/27 [11:03]

독일어 권에서 금세기 최고의 시인으로 꼽히는 릴케는 ‘사람을 고독한 존재’로 정의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는 유독 ‘고독’을 주제로 한 시가 많았다. 또한 당대 최고의 실존주의 문학가였던 장 폴 사르트르 역시 “인간이란 자유로우며 고독한 존재”라고 했다.

 

20세기 유럽 철학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마르틴 하이데거는 그 유명한 ‘군중 속의 고독’이란 말로 인간을 표현했다. 아무리 사람이 많은 곳에 있어도 늘 외로운 것이 인간이며, 더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일수록 더 큰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사람이라고 한다.

 

최초의 인류인 아담조차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을 정도로 외로워했다.

 

이외에도 많은 학자들과 예술가들이 그들의 작품을 통해 인간의 고독과 외로움에 대한 깊은 관심을 나타냈는데, 이는 고독이 ‘인간의 본성’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인간은 태어날 때도 혼자 외롭게 태어나고, 죽을 때도 혼자 외롭게 죽지 않는가!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애정 결핍

 

인간의 고독한 본성 때문에, 인간은 또한 사랑받기를 원한다. 사랑받고 싶어한다. 우리가 접하는 문학, 드라마, 영화의 주제 대부분이 ‘사랑’인 것도 이 때문이다. 사랑을 빼놓고는 시나 소설을 논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최신 SF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사랑’이 등장한다.

 

사람은 본성상 외로운 존재이고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그 현상이 정도를 넘어서면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경우가 있다. 이것을 ‘애정결핍증후군’이라고 한다. 사람은 본성상 애정의 결핍을 느낄 수 밖에 없지만, 그 정도가 심해서 누군가로부터 관심, 사랑, 인정을 받기 위해 쉽게는 꾀병을 부리고, 더 나아가 무모한 언행으로 대중의 관심을 유발하거나, 상대에 대한 과도한 반응, 분노, 또는 집착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애정결핍증후군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는 어릴 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경우다. 부모가 바빠서 혹은 부모의 냉대로 인해 어릴 때 받아야할 사랑과 관심을 충분한 받지 못하고 어른이 된 것이다. 어릴 때부터 외로움이 컸는데, 이것이 성인이 되어 ‘애정결핍 증후군’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 반대로 집안에서 과도한 사랑을 받고 자란 경우다. 온실 속 화초처럼. 이 경우 학교나 사회에 나갔을 때, 집안에서 받던 관심과 사랑과는 다른, 그 괴리감 때문에 힘들어 한다.

 

애정결핍증후군까지는 아니지만, 우리도 애정 결핍을 느끼고 때때로 외로움을 탄다. 사람의 본성이 외롭고 고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류시화 시인은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고 했는가 보다.

 

해마다 노인 고독사가 늘어가고 있는데, 너무 외로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 이유는 자기를 사랑해 주는 한 사람, 자기를 지지해 주는 한 사람을 찾지 못해서라고 한다. 이 또한 외로움이 사무쳐 생을 마감하는 경우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우리에게는 지고지순한 사랑이 있다. 우리를 끊임없이 사랑해주는 사랑이 있다. 누구든 그 사랑을 알고 누리기만 한다면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고 또 행복할 수 있다. 그 사랑 안에 거하기만 하면 애정결핍증후군이든지, 고독사든지, 외로움에 사무친 기난긴 밤들은 다 사라질 것이다. 그 사랑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을 믿는 이들도 그럴 때가 있다. 그래서 더 외롭고 더 애정 결핍을 느끼며 살아간다.

 

요한은 예루살렘에 박해가 심해지자 소아시아로 몸을 피했고, 그곳의 일곱 교회를 순회하며 목회했다. 그러던 중 로마의 도미티안 황제가 교회를 심하게 박해했는데, 요한도 로마 군인들에게 붙잡혀 밧모섬에 유배된다. 요한은 그곳 밧모섬에서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을 저술했다.

 

도미티안 황제가 암살당한 후에야 요한은 사면을 받고 밧모섬을 나와 에베소로 돌아왔다. 이미 90세를 훌쩍 넘겼을 때다. 그는 너무 노쇠했고 또한 긴 유배 생활로 몸이 상할 대로 상해서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항상 교인들에게 부축을 받아 설교했다고 한다. 그때 쓴 편지가 요한일서다.

 

백발이 성성한 노사도, 자기 몸 하나도 추스르기 힘든 그때, 요한이 전해준 하나님은 놀랍게도 ‘사랑’이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4:8). 그의 평생의 사역과 설교가 이 한 문장에 담겨 있었다.

 

너무도 늙어버린 탓에 떨리는 손으로 느릿느릿 그렇지만 확신에 차서 ‘데오스 아가페 에스틴’을 써내려가는 요한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라. 생각만 해도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이 구절이 주는 의미와 깊이가 묵직하게 전해온다. 가슴이 떨리고 눈물이 날 정도로...

 

게다가 요한은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이라든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라고 쓰지 않았다. 요한의 문장은 더 단순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요한은 ‘사랑’이란 단어를 하나님을 꾸미는 형용사로 기록하지 않았다. 하나님과 사랑을 동격으로 기록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이 사랑이시고, 사랑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요한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또 다른 이름은 ‘사랑’이었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사랑’이라는 단어에 하나님을 넣어도 그 뜻이 전혀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사랑)은 오래 참고 하나님(사랑)은 온유하며”(고전 13:4). 오히려 의미가 더 선명해진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사랑이시길 원한다. 그러면 외로움 때문에 고통받지 않고 행복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누려라

 

하루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에 가셨다. ‘수가’란 지명이 의미심장하다. 그 뜻이 ‘마지막, 종착지’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수가’에서 만난 여인은 정말 마지막 인생을 보내고 있었다. 쓸쓸하고 볼품없이 마지막 삶을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다섯 번 결혼해서 다섯 번 모두 실패했다. 그리고 여섯 번째 결혼도 곧 끝날 위기에 놓였다. 결혼이 파경으로 끝날 때마다 그녀의 인생은 점점 더 벼랑 끝으로 내몰렸고, 인생의 마지막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한 번의 이혼도 평생 상처로 남는데 이 여인은 무려 다섯 번씩이나 겪었으니 그 상처가 얼마나 컸겠는가? 또 그녀를 바라보는 이웃의 시선은 얼마나 차갑고 경멸이 가득했겠는가? 아무도 그녀를 상대해 주지 않았다. 남편에게 버림받고, 이웃에게 외면당하는 그녀는 더욱더 외롭고 쓸쓸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인생의 마지막도 이런 마지막이 없었다!

 

그렇게 모두의 외면을 받고 지독하게 외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그녀를 예수님이 찾아가셨다. 더욱이 그때가 하루 중 가장 뜨거운 낮 12시였다. 너무 더워서 아무도 거리에 나오지 않는 낮 12시, 그래서 여인도 사람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낮 12시에 우물에 물을 길러 왔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낮 12시에 인생의 마지막을 살고 있는 그녀를 찾아가셨다. 그녀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사랑에 목말라 하던 그녀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 주님의 사랑을 부어주셨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이제 그녀는 외롭지 않았다. 사랑에 목마르지도 않았다. 그래서 물동이도 버렸다. 더 이상 사랑에 목마르지 않기 때문이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 그녀에게서 영생하도록 솟아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님은 밧모섬에 있는 요한도 찾아가셨다. 그 때문에 죄인들의 유배지 밧모섬, 그 외롭고 고독한 땅 밧모섬에서 요한은 비록 핍박을 받고 유배 중이었지만,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을 생생하게 알았고 또 누렸다. 그 요한에게서 날마다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 넘쳤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신다. 우리의 ‘수가’ 인생의 종착지, 마지막까지 찾아오신다. 갈 곳 없고 절망 뿐인 인생의 막다른 길목에서, 낮 12시에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가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 찾아오신다.

 

그 사랑을 알고 누려야 한다. 힘들고 지치고 병들어 쓰러질 때에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사랑, 모든 것을 부어주시는 그 사랑을 온 몸으로 누려야 한다. 그 사랑을 알고 누리는 한, 우리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 샬롬! 〠

 

정지홍| 좋은씨앗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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