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은 어떤 곳인가?

김환기/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3/10/31 [09:58]

팔레스타인이란?

 

팔레스타인이라는 용어는 이스라엘, 가자 지구, 요르단강 서안 지구 전체를 가리키는 지리학적 지역을 의미한다. 팔레스타인은 처음에는 가나안 후에 이스라엘이라 부르다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는 유대라 불렀고, 로마가 점령한 후 팔레스티나라 불렀다.

 

팔레스틴이라는 용어는 블레셋이라는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대부분의 팔레스타인 사람은 무슬림일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에는 AD 610년 이슬람교가 생기기 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기독교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AD 638년 무슬림이 팔레스타인을 침공하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팔레스타인 크리스찬(Palestinian Christians)은 40만 명 정도로 추정되며, 팔레스타인 전체 인구의 6.5%에 해당한다.

 

유대인 중에서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을 메시아닉 유대인(Messianic Jews)이라고 한다. 2019년 9월에 베들레헴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기독교인 집에서 민박을 했다. 그들은 창살 없는 감옥에 살고 있다. 서안지구는 8미터가 넘는 콘크리트 장벽에 둘러 싸여 있다. 서안지구에서 태어난 대부분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곳에서 살다가, 그곳에서 죽는다.

 

팔레스타인의 비극

 

1915년, 1차 대전 중 오스만 제국의 지배 하에서 중동에서 살고 있는 아랍인들의 지원을 끌어내기 위하여, 영국의 고등판문관인 맥마흔은 후세인의 서신 교환을 통하여 전쟁 후에 아랍 국가의 건설을 지지한다는 협정을 체결한다. ‘후세인-맥마흔 협정’이다.

 

1916년, 영국인 중동전문가 사이크스가 프랑스 외교관 피코와 체결한 협정은 오스만 영토를 영국, 프랑스가 나눌 것을 합의한다. ‘사이크스-피코 협정’이다. 1917년 영국 외무장관 밸푸어는 유대인 재벌 로스차일드에게 서신을 보내 유대인이 전쟁을 돕는다며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세울 것이라고 약속했다. ‘밸푸어 선언’이다.

 

영국은 같은 땅을 두고 3중 계약을 했다.

 

제1차 대전이 끝나고 영국은 팔레스타인의 모든 지역을 영국과 프랑스가 직접 지배하려고 했다. 아랍인들은 영국의 배신을 규탄하고 유대인 국가의 건설을 승인할 수 없다는 의지를 단호히 표출한다.

 

결국 밸푸어 선언과 후세인-맥마흔 협정은 종전 후 서서히 흐지부지되어 갔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에서 아랍인과 유대인 사이의 긴장감은 시간이 갈수록 커져갔다. 제2차 대전이 끝나고 유대인과 아랍인 사이에서 극렬한 갈등이 발생하자, 영국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유엔에 이관하고 철수하였다.

 

팔레스타인의 분할

 

1947년 11월 29일, 유엔 총회에서 팔레스타인 땅의 약 56%를 유대인에게 주는 결의를 했다. 아랍권은 이를 결사적으로 반대했지만, 유대인들은 1948년 5월 14일 전격적으로 건국을 선포했다. 그리고 중동 전쟁의 서막이 올라갔다.

 

1차 중동 전쟁의 결과로 예루살렘은 '동예루살렘과 서예루살렘’으로 분할되었다. 서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예루살렘 성이 있는 동예루살렘은 요르단의 땅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6일 전쟁으로 알려진 3차 중동 전쟁 때 이스라엘은 선제공격으로 동예루살렘은 말할 것도 없이 팔레스타인 전역뿐 아니라 시나이 반도도 장악하게 된다.

 

4차 중동 전쟁 후 시나이 반도는 돌려주었지만 골란고원과 가자 그리고 서안지구는 반환하지 않았다. 현재의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5차 중동 전쟁으로 확전될 우려가 있다.

 

지금 이스라엘은 가자에 지상군을 투입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 레바논에 기반을 두고,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이슬람 무장투쟁 단체인 헤즈볼라는 이 때를 기점으로 전면전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다.〠

 

 

김환기|본지 영문편집장, 구세군라이드교회 

▲ 김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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