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일을 이루는 것을 보기만 하라

글/김명동 사진/권순형·김신일 | 입력 : 2023/10/31 [10:39]

▲ 사랑의교회 유스콰이어 팀을 태운 대형버스가 헤브론의료원으로 진입하고 있다.©크리스찬리뷰    

 

오전 7시, 햇살은 따가웠다. 하지만 캄보디아 전역에서 몰려든 수백 명의 환자와 가족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기소에서 진료순서를 기다렸다. 헤브론의료원의 좋은 소문을 듣고 이틀씩이나 걸려 찾아온 발걸음도 있었다.

 

대기소를 한 바퀴 돌아 정문 쪽으로 갔을 때, 대형버스 한 대가 미끄러져 들어오더니 대기소 앞에서 멎었다. 버스의 문이 활짝 열리면서 눈부신 아이들이 늘씬한 몸을 날려 내려왔다. 사랑의교회 유스콰이어 팀이었다.

 

합창 공연이 시작되었다. 영어 찬송들이 캄보디아 사람들에게는 생소하게 들릴 수 있었음에도 공간을 가득 채우는 아름다운 하모니는 어느새 모두를 찬양에 흠뻑 빠져들게 했다. 그리고 세상에! 그 열렬한 박수소리. 아아! 환자들이 그렇게 하나가 되어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고, 해면이 물을 빨아들이듯 그렇게 찬양을 마음으로 받아들여주는 것에 기자는 큰 감동을 받았다.

 

공연이 끝나자 사랑의교회 유스콰이어 팀은 헤브론의료원 현장을 직접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헤브론의료원의 바탕이 되는 헤브론정신과 역사에 대해 설명을 듣고, 진료실과 수술실, 병동과 CAP센터 현장을 돌아보며 헤브론의료원이 어떻게 치유를 이어나가고 있는지를 자세히 보고 들으면서 벅찬 감동을 느끼는 듯했다.

 

▲ 김우정 선교사가 헤브론의료원을 방문한 사랑의교회 유스콰이어 팀을 환영하고 있다.©크리스찬리뷰     

 

팀장 박원범 전도사는 “청소년 중·고등학생으로 구성된 합창단으로 다른 일정 중에서도 헤브론의료원의 소문을 듣고 왔다”며 “이른 새벽부터 진료를 받기 위해 모인 캄보디아 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지친 몸과 마음에 조금이나마 하나님의 위로가 있으시길 바라면서 준비했다”고 말했다.

 

순종과 헌신

 

“이곳을 방문하는 단기선교 팀들이 많지요?”

“예”

김우정 선교사는 진지한 표정에다 눈빛을 빛내며 대답했다.

 

▲ 헤브론의료원환자 대기실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는 사랑의교회 유스콰이어 팀.©크리스찬리뷰

 

▲ 이른 아침부터 캄보디아 원근각처에서 찾아오는 환자들로 인해 헤브론의료원은 항상 북적인다.©크리스찬리뷰     

 

“선교사님, 사실 단기의료선교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이 있고 부정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단기의료선교에 대해 부정적이었어요. 잠깐 봐주고 가는 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장점들이 있어요. 이렇게 와서 현장을 보지 않으면 누가 우리를 돕겠느냐, 저는 그렇게 많이 얘기를 합니다.

 

현장을 봐야 현장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장기로 와있는 사람들을 돕겠다는 마음이 생기고 나도 헌신하겠다는 마음이 생기고 그런 점에서 굉장히 긍정적이거든요.”

 

김 선교사는 “헤브론의료원도 인력이나 필요한 약품이나 재정후원이나 의료장비 등 상당히 많은 부분들이 단기 팀으로부터 넘어왔다”며 “약품도 남으면 다 주고 가는데 약품을 주고 가는 것만 해도 적은 양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의료원을 개원하고 두어 달쯤 지났을 때였습니다. 퇴근했다가 볼 일이 있어 밤 9시쯤 병원을 찾았습니다. 의료원에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알았습니다. 의료원 문 앞에 30여명이 서성거리고 있었어요.

 

지금은 캄보디아 프놈펜도 많이 발전해 저녁에도 의료원 주변이 북적거리지만 당시만 해도 인적이 거의 없었어요. 그러니 놀랄 수밖에요. 알고 보니 이들은 다음 날 아침 진료를 받기 위해 온 환자들이었습니다.”

 

김 선교사는 “처음 헤브론의료원을 시작할 때에는 어떤 계획이나 어떤 그림이 있지 않았다”며 “서로 따로따로 온 선교사들이지만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연합해서 하면 조금 더 규모 있는 의료선교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고 의료원이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어느 날이었다.

 

▲ 새벽부터 찾아오는 환자들이 땅 바닥에 앉아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2015. 8).©크리스찬리뷰   

 

“헤브론의료원 건물과 숙소동 건물이 지어지고 첫 이사를 했습니다. 잠이 들었는데 새벽 2시경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깨어 창밖을 보니 주변은 온통 암흑천지인데 의료원 문 앞에 환자들이 모여 기다리는 거예요. 일할 의료 인력이 충분하지 않았고 물론 수술할 의사도 없었습니다.

 

진료 공간도 변변히 없었고 약품도 준비된 것이 많지 않았습니다. 의료장비도 저희가 준비한 것이라곤 간단한 엑스레이 기계와 엉성한 초음파 장비, 그리고 간단한 혈액검사 장비가 전부였습니다. 정말 너무나 안타까워 창밖을 내다보며 많이 울었습니다.”

 

순간 머리를 스치는 번개 같은 생각.

 

“단기 의료선교 팀이 몇 명쯤이나 될까 궁금해서 카운트를 한 번 해봤습니다. 물론 정확한 카운트는 할 수가 없죠. 그런데 대충 해보니까 일 년에 그 당시에 캄보디아를 찾아오는 의료 선교 팀이 한 120팀 정도쯤 되는 것으로 카운트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제 생각에 여기서 5분의 1만 헤브론병원으로 올 수 있게 흡수하면 헤브론병원이 많이 성장할 수 있고 그 단기 팀을 활용해서 성장의 활력소로 이용할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정말로 그렇게 인도를 해주셨어요.”

 

김 선교사는 “처음엔 헤브론의료원을 아는 사람도 그래서 헤브론의료원을 찾아오는 곳도 없었지만 해가 갈수록 헤브론의료원을 찾아오는 단기 팀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의료원 건축도 참 신기합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건축이 되는데 2008년 금융위기 와중이었거든요. 하나님이 이렇게 일을 하시는구나, 이렇게 놀랍게 일하시는데 우리가 괜히 걱정을 많이 했구나. 이렇게 생각할 정도로 건축이 되어져 갔거든요.

 

▲ 헤브론의료원은 환자들이 편안하게 대기하며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대기실을 마련했다.(2023. 2월 촬영) ©크리스찬리뷰     

 

그 와중에도 또 걱정이 되는 것은 이렇게 큰집을 생각도 안했는데 큰집을 지어놓고 우리 이젠 어떡하지 우리 안에는 이렇게 큰집을 운영해본 사람도 없고 진료할 의사도 없고 수술할 의사도 없고 이거 어떡하지 그랬는데 하나님께서 놀랍게도 역사하셔서 그 의료원을 꽉 채워주셨습니다.

 

저희는 수술 방을 하나만 만들면 족하다 생각해서 수술 방을 하나만 만들려고 처음에 생각했었죠. 그랬는데 어느 분이 충고하기를 수술 방은 한 번 만들면 다시 증설이 어려우니까 3개를 만들어야 된대요.

 

그래서 3개를 만드는 게 맞는 건가 보다 하고 3개를 만들었죠. 그때 잠깐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지금은 수술할 의사가 한 사람도 우리에게 없지만 그러나 혹시 알아 나중에 방 한 칸을 좀 크게 만들어 놓으면 여기서 뇌수술이나 심장 수술 같은 큰 수술을 할지.

 

▲ 헤브론의료원 2층에 마련된 심장수술방. 코로나 사태와 의료진 부족으로 인해 수술방은 최근 폐쇄되었다.©크리스찬리뷰     

 

그래서 이미 해놓은 칸막이를 헐고 다시 수술 방에 맞게 크기를 조정했어요. 그랬는데 놀랍게도 꼭 5년 만에 그 방에서 직접 심장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김우정 선교사는 항암 치료 중이다. 앉아 있을 힘조차 없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특유의 음성으로 성실하게 질문에 답해주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생판 모르는 분들을 연결시켜 주시고 교회와 후원자들을 동원하시고 사람들의 작은 손을 통하여 일하셨습니다. 헤브론의료원은 여러 교회와 봉사자, 후원자들의 사랑과 기도와 물질로 오늘도 지어져 가고 있는 병원입니다.”

 

김우정 선교사는 “헤브론의료원이 시작될 때에도 그리고 병원 건물 건축을 시작할 때에도 아무 능력도 없이 준비 없이 시작한 일이었다”며 “여호사밧왕이 능력도 없고 어찌할 줄도 모른다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때에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일을 이루는 것을 보기만 하라’고 응답하셨던 역사가 헤브론의료원에도 있을 줄 믿고 지나온 날들이었다”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회상했다.

 

‘순종’과 ‘헌신’이란 가치가 일종의 조롱거리가 된 지 오래인 시대. 기자는 아득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어린아이처럼 무방비한 김우정 선교사의 얼굴을. 해맑은 미소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캄보디아에 대하여 폈던 사랑과 열정과 추억과 갖가지 열매들.

 

기자는 그것들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리라 마음먹는다. 순종과 헌신이라는 말의 아름다운 의미를 생각하면서.

 

희망의 불씨 이음센터

 

우리 일행은 이음센터 개척예배에 참석하기로 하고 길을 떠났다.

 

“멀지 않습니다. 가까워요.”

 

▲ 안산동산이음교회 창립예배에서 인사하는 송롱운 전도사와 사모 송은정 선교사.©크리스찬리뷰    

 

캄보디아 특유의 폭염이 우리를 감싸는 가운데 헤브론교회 삐셋 전도사가 운전을 하며 길잡이가 돼주었다.

 

“담임 전도사가 캄보디아 사람인데 저와 같은 캄보디아장로교신학교에 다니고 있고요. 사모는 한국사람입니다.”

 

삐셋 전도사가 완벽한 한국어는 아니지만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가면서 능숙하게 말하는 바람에 한바탕 웃음이 빵 터졌다.

 

“다 왔습니다.”

 

별 특징이 없는 집들이 처마를 비벼대듯 서 있는 곳에 차는 멎었다. 교회에 도착하니 미리 연락이 되어있었는지 전도사 일행이 환영을 해주었다. 이음센터 송롱운(42) 담임전도사는 콧날과 턱의 선이 단단해 보이는 건장한 청년이었고, 사모 송은전(41) 선교사는 한국적인 몸놀림으로 웃음을 전신으로 웃으며 교회 안으로 우리 일행을 안내했다.

 

▲ 안산동산이음교회 창립예배를 마친 후 성도들과 축하객들이 단체사진을 촬영했다.©크리스찬리뷰  

 

▲ 안산동산이음교회 창립예배를 마친 후 성도들과 축하객들이 단체사진을 촬영했다.©크리스찬리뷰  

 

예배당은 꾸밈도 장식도 호들갑도 없는 겸손하고 조용한 교회였다. 교인들끼리라면 그 집의 숟가락이 몇 개며 웃음소리와 한숨소리까지를 다 알 만큼 그렇게 정다운 크기.

 

예배가 시작될 즈음, 자리를 채운 사람은 30명 남짓. 하지만 여느 예배 못지않게 하나님에 대한 절절한 믿음을 고백한다. 기타 한 대로 예배가 진행된다. 하지만 함께 기도하고, 찬양 드리는 이 은혜를 감사한다.

 

송롱운 전도사는 캄보디아에서 태어나 2006년 외국인 노동자로 한국으로 건너갔다. 안산 동산교회 캄보디아 예배에 등록했고, 당시 간사로 활동하던 송은전 선교사를 만나 결혼했다.

 

“원래 교회를 안 다녔는데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장소를 알아보다가 동산교회에 다니게 되었지요. 둘이 같은 부서에서 봉사를 하다가 선교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던 중 함께 선교하면 좋겠다 싶어 선교훈련을 받고 결혼까지 하게 됐어요.”

 

송 전도사는 “동산교회에 캄보디아 팀 부장으로 봉사를 하면서 통역도 해주고 아픈 사람 병원도 같이 가주고 한 번이라도 교회에 왔던 사람이라면 그들이 근무하는 공장과 기숙사, 좁은 자취방도 마다않고 찾아가 손을 잡고 기도하고 새벽에 전화가 와도 달려갔다”며 “황무지와 같은 캄보디아를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을 하나님이 주셔서 신학공부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 본지 단기팀이 어린이들에게 호주 코알라 인형을 선물로 전달했다.©크리스찬리뷰     

 

이들 부부는 동산교회 출신들이 본국으로 돌아가 더 이상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교회에 나가지 않는 상황에 안타까움을 나누던 중 그들의 신앙을 바로 세우고 양육하기 위해 선교사의 비전을 가지고 2022년 8월 동산교회에서 캄보디아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16년 동안 한국에서 열심히 돈을 벌어 살림집과 옆에 있는 공터를 샀어요. 이 집을 확장, 리모델링하여 낮에는 지역 주민들에게 오픈해서 아이들 케어하고 주말에는 교회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 송롱운 전도사와 송은정 선교사의 가족.©크리스찬리뷰     

 

이들 부부 선교사 사이에 두 아들 주영(12) 주안(9)이가 있다.

 

예배 후엔 격의 없이 교제를 나눴다. 형 같고 친구 같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함께 박수를 치면서 껴안고 웃고 식사를 나누는 광경이 참 좋았다. 다들 행복한 하나님의 사람 얼굴이었다.

 

이런 은혜 때문일까. 거짓말처럼 나를 괴롭히던 모기 한 마리도 보기 힘들었다.

 

서로 헤어지려는데 어디선가 “뚜우~ ”하는 소리가 들렸다. 힐끗 둘러보니 사찰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곳곳에 피어있는 꽃들은 향기로웠고.〠 <계속>

 

김명동|본지 편집인

권순형|본지 발행인 김신일 본지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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