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주신 고귀한 선물 ‘벌꿀’

글ㅣ김명동/사진ㅣ권순형 | 입력 : 2011/11/28 [14:57]

“여보세요. 장로님이시지요? 지금 그곳으로 가고 있는데 찾기가 쉽지 않네요. 어떻게 가야합니까.”

▲ 3년 전 벌치기로 변신한 조성일 장로     ©크리스찬리뷰


“초행길이라 찾아오시기 불편하시겠지만 시간은 그리 안 걸려요. 블루마운틴 가는 M4 모토웨이를 타세요. 그리고 한 30여 분 오시면 좌측으로 글렌모어(Glenmore) 입간판이 나옵니다. 그러면 그 방향으로 들어오세요. 그 길이 몰고아(Mulgoa) 이거든요. 그 길을 타고 쭉 오시면 좌측으로 골프장이 나오고 계속 10여 분 달리면 우측으로 몰고아 초등학교가 나타날 겁니다. 그러면 조금 더 내려가셔서 오른쪽으로 꺾으세요. 그 길이 페어라이트인데 그 길을 타고 쭉 오시면 좌측으로 수도원이 나오게 되고 그러면 바로 우측으로 헨리 콕스라는 좁은 길이 나오는데 그길로 들어오셔서 다시 전화를 하세요.”

조성일(59·시드니새순장로교회) 장로를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그가 일러 준대로 몇몇 민가를 뒤로하고 인적이 없는 골짜기를 찾아 나섰을 때 “여기요”하며 조 장로가 손을 흔들었다. 60이 멀지않은 나이에 걸맞지 않은 말간 얼굴, 악수를 나누는 오른 손이 사뭇 기운찼다.

그의 집은 바람 부는 능선에 홀로 버티고 서있었다. 온갖 수목들이 집 앞뒤로 병풍을 두르고 치마끈을 풀어헤친 안개가 저수지를 휘감고 있다. 그는 그곳에서 아내 최용애(56) 집사와 함께 마치 ‘구도자의 삶’을 사는 듯했다. 시간의 흐름이 오래 전에 정지해버린 듯한 ‘원시적인’ 그의 삶터와 모습은 도시인에게 잠시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쭈뼛거리며 들어선 집 마당 텃밭엔 각종 채소들이 자유로이 자라고 있었다.

“고추 상추 깻잎 다 길러서 먹어요. 물은 빗물 받아먹고요.”

이곳 생활에 털끝만큼의 불만도 없는 듯 최 집사는 집안으로 안내하면서 만족한 어조로 부지런히 설명했다.

 
꿀벌들의 노래 산 메아리되어... 난 자연인

조 장로 내외가 느닷없이 ‘벌치기’로 변신한 것은 3년 전.

“용감한 거죠. 사실 친구 때문에 이일을 하게 됐어요. 하루는 친구를 만났는데 ‘조형, 나 벌 배워’하는데 귀가 번쩍 뜨이더라고요. 생각해보니까 노후에 마땅히 할 것도 없고, 지금 사업을 하려고해도 수십만 불이 있어야 하고 사업을 한다 해도 교회 다니는 사람이 항상 그 일에 묶여있어야 되고, 제가 사업을 해봐서 알잖아요.

그런데 양봉은 정직하게만 하면 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환자나 오지에서 고생하는 선교사님들이 허약해진 몸으로 오시면 품질이 좋은 벌꿀과 로열젤리로 섬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해서 시작을 하게 된 거죠.”

꿀벌이라고는 생전 먼발치에서 보기만 했던 그는 그길로 꿀벌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뒤지고 책을 보고 양봉모임인 클럽에도 나가서 경험담도 듣고 한국으로 건너가 그야말로 ‘벌 박사’ ‘벌치기 도사’ 칭호를 받는 분들한테 기술을 배웠다. 그런 후 벌치기에 좋은 장소를 물색하던 중 인적이 드물고 평화롭고 산세가 완만한 이 계곡에 반하게 됐다고. 그는 벌통을 사들이고 이 계곡에 둥지를 틀었다.

그러나 신출내기 벌치기인 그는 쓰디쓴 좌절을 겪어야했다.

“처음엔 병든 벌을 사서 고생도 하고 벌레 때문에 고생도 하고 어려움이 많았어요. 벌을 보면 무서워서 도망가고 쏘이면 사흘 나흘씩 붓고 그랬지요. 지금은 하루에 보통 20-30번 쏘이는데도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꿀벌과 하나가 됐습니다. 이 팔뚝을 보세요. 팔뚝이 엉망입니다.”

그는 옷소매를 걷어보였다. 그의 손과 팔뚝은 벌에 쏘인 상처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 사이 많은 벌을 잃고 독학으로 깨우친 것도 많아 이제는 무언가 알 것 같다고 했다. 사실 그는 이젠 분봉서 채밀까지 척척 처리한다. 병든 벌과 강한 벌을 가려내고 벌의 근면성을 날개 짓 소리만 듣고도 알 수 있게 됐다.

▲ 방충복(보호복)을 입고 꿀벌들의 상태를 관찰하는 조성일 장로     ©크리스찬리뷰


“보니까 한국 분들이 벌통을 한두 통씩 놓은 분들이 꽤 많더라고요. 그런데 벌에 대해서 지식이 부족하니까 거기에 질병이 생겨 다 버리는 사람도 많고, 번데기가 생겨 버렸다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러니까 많은 분들이 그냥 벌통만 갖다놓으면 저절로 되는 줄 알고 있는데 벌치기가 그리 쉬운 게 아니거든요. 사전 지식이 없어서 그래요.

저도 처음에 고생했던 게 미국부저병이라는 병인데 이것은 세균이 70년 동안 살아있대요. 그래서 아주 소각을 해버리거나 방사선 처리를 해야 하는데 그런 상식이 없으면 그 병이 퍼져나가거든요. 벌들은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꽃에 가 꿀을 받아오는데 그곳에 그 병균을 묻혀 놓지요. 그러면 또 다른 벌이 와서 그 병균을 얻어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퍼트립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그런 병에 걸리면 신고하게 되어있어요. 맨 처음 고생했던 게 그런 것인데 처음 30통 산 것이 몽땅 그 병에 걸려 다 소각해 버리고 다시 시작한 겁니다.

그리고 벌통 한 통 속에는 벌이 보통 4만에서 7만 마리 이상이 되는데 그런 병에 걸리면 다 퍼지니까 무서운 거죠. 벌이 병에 걸렸을 땐 잘 몰라요. 그런데 벌로 나오기 전 애벌레를 보면 알 수가 있거든요. 애벌레도 한 통속에 성충만큼 있다고 보면 되는데 이중에서 한 마리만 병에 걸렸어도 그 벌통을 소각해야 돼요. 내가 예방하거나 어떤 조치를 취할 수는 없어요. 한국에서는 병 방지를 위해 항생제를 많이 쓰는데 여기서는 법적으로 항생제를 못 쓰게 되어 있어요.”

이런 고생 끝에 만든 벌꿀은 돈을 받고 파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이를 조 장로는 “꿀 한 병을 팔 때 조성일도 함께 파는 거예요,”라면서 “그동안 벌치기에서 얻은 노하우를 언제든지 가르쳐 줄 준비가 되어있다”고 귀띔했다.

조 장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남에게 죄는 짓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최대한 벌들이 자연 숙성한 벌꿀을 채밀할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 장로에게는 판로가 없는 상태였다. 이때 하나님은 지혜를 주셨고 소비자에게 직판했다. 그런데 꿀이 좋다는 입 소문이 인파 만파 퍼지기 시작했다. 벌치기 3년 만에 제법 단골도 생겼다.

“맛이 틀리니까요. 현재는 이스트우드에 있는 식품점 한 곳에만 대요. 주위에서 찾고 교회에서도 주문하고 있고요. 또 한국에서 연락이 오면 택배로 보내드리고 있어요.”

기자는 넌지시 물었다.

 “좋은 꿀은 진짜 꿀일 텐데요. 진짜 꿀을 구별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조 장로는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가족이 먹는 꿀을 만든다는 마음으로 자연 숙성한 벌꿀 채취

▲ 온갖 수목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 능선 아래 저수지를 배경으로 조성일 장로, 최용애 집사 부부가 포즈를 취했다.     ©크리스찬리뷰


 “꿀은 수분함유량이 중요해요. 수분함유량이 많으면 꿀이 상합니다. 사실 모든 식품에는 유통기한이 있는데 꿀은 유통기한이 없어요. 그리고 꿀을 두 달 정도 놔두면 진짜 꿀은 굳어요.”

조 장로는 채취한 꿀을 직접 보여 주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과당은 굳지 않는데 이건 이렇게 굳어요. 포도당 성분이거든요. 수분함유량이 적기 때문이죠. 사실 꿀의 함유량을 많게 하려면 이렇게 오래 놔두질 않고 빨리빨리 따면 그만큼 수분 함유량이 많아 꿀 양이 많아지는 거거든요. 그렇게 되면 꿀의 품질은 떨어지는 거지요. 저희는 일 년에 서너 번 밖에 꿀을 안 따는데 그렇게 되면 꿀이 이렇게 오래돼서 걸쭉해지지요. 그래야 좋은 꿀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슈퍼에 가서 꿀을 거꾸로 들어보면 알아요.”

조 장로는 이 말 끝에 “좋은 꿀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면서 “가족이 먹는 꿀을 생산한다는 마음으로 일한다.”고 말했다.

“지난주에는 이런 일이 있었어요. 벌통을 늘렸어요. 늘려야 소득이 있는 거니까. 그런데 비가 좀 왔잖아요. 벌통을 열어보니까 구더기가 바글바글 한 겁니다. 딱정벌레 종류인데 이것이 외부에서 살지 않고 보통 벌들과 같이 살아요. 그것이 애벌레 있는 안에다 알을 낳는데 기하급수적으로 새끼가 늘어납니다. 열어보니까 그런 상태였어요. 날씨가 습하고 더우니까, 그런데 결국 늘려 논 벌통 다 죽여 버렸잖아요.”

 - 벌통을 늘리려면 분봉을 해야 하는데 보통 언제 합니까?

“대체로 일년에 봄가을 두 차례 합니다. 분봉할 때는 안에 꿀이 많이 저장되거나 또 여왕이 알을 낳을 장소가 없을 정도로 비좁을 때 분봉을 합니다.”

조 장로는 꿀벌에게 배울 것이 참 많다고 했다.

 “벌통 하나에 여왕벌이 하나잖아요. 그러면 분봉하려면 여왕벌이 있어야 되는데 이 여왕벌이 어떻게 생기는지 보세요. 벌은 일벌 숫벌 여왕벌 이렇게 세 종류이거든요. 여왕벌이 알을 낳으면 3일 만에 부화를 합니다. 그 중에서 12시간 안 된 애벌레 한 마리에게 로열젤리를 집중적으로 먹이는 거죠. 이 벌이 여왕벌이 되는 건데 그래서 로열젤리가 생기는 겁니다.

▲ 꿀을 채취하는 조성일 장로     ©크리스찬리뷰


다른 벌들은 3일 안에 부화가 되고 21일 만에 일벌이 돼서 보통 40일 밖에 못 살아요. 그런데 여왕벌은 7년까지 삽니다. 그동안 살면서 하루에 2천 개까지 알을 납니다. 그러니까 벌들이 40일 만에 죽어도 여왕벌이 계속 알을 나니까 벌은 계속 늘어나게 되는 거죠.

그리고 일벌과 숫벌은 꽃가루를 먹지만 여왕벌은 로열젤리만을 먹는데 이 로열젤리는 알에서 깨어난 지 10일 이내 되는 벌들에게서만 나와요. 이 젊은 벌들이 로열젤리를 계속 공급을 하는 겁니다. 숫벌은 어떻게 생기느냐 하면 여왕벌은 정자주머니가 두 개입니다. 그래서 알을 낳는 게 틀려요. 요놈은 일벌, 요놈은 숫벌 구분해가면서 알을 낳는데 앞다리로 벌집의 사이즈를 재요.

숫벌집은 몸집이 크니까 집이 가장자리에 있거든요. 숫벌집에 알을 하나 뚝 떨어트려 놓고 정액을 안 묻혀요. 그 벌이 숫벌이 되는 거고 정액을 묻히면 일벌이 되는 거고요. 그래서 숫벌은 침이 없어요.

그런데요. 분봉을 하려고 여왕벌을 빼내거나 여왕벌이 스스로 분가를 하거나 사고를 당하여 죽거나 하면 24시간 이내에 여왕벌을 또 만들기 시작해요. 그래서 이 모든 것을 알고 인위적으로 해주는 것이 기술입니다.”

 
품질 좋은 로열젤리 본격 생산할 계획

꿀을 먹고 건강해졌다는 소식이 들렸으면

조 장로는 “한국에 벌꿀을 수출하려고 준비 중에 있다”며 “앞으로 더욱 연구를 하여 꿀보다는 로열젤리를 주로 생산할 계획” 이라고 밝혔다. “품질 좋은 로열젤리를 본격적으로 생산해서 아픈 환자들, 그리고 오지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들이 오시면 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건강을 회복시켜 드리면 이것이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기독교인이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에는 성직자가 되는 길, 선교 사업에 주력하는 일, 아니면 성직자나 선교사를 성심껏 돕는 일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고 보면 그중에서 조 장로에게 할당된 건 맨 마지막 일인 것 같다. 그가 ‘생활로 실천하는 기독교인’으로 성장한 것은 교회에서 섬김을 실천하면서부터였지만 어릴 때 신앙이 밑거름이 됐기 때문이다.

 “어릴 때 교회가 바로 우리 집 옆에 있었는데 담이 없이 살았어요. 교회 강대상하고 내방 벽하고 1미터도 안 떨어져 있었으니까요. 교회 옆에 사니까 교인들이 내 얼굴을 다 알아요. 그렇지만 교회에 정식으로 나간 건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아버지가 기술자로 월남을 가셨는데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보호할 방법이 없더라고요. 하나님 밖에는 없다고 생각이 되어 내발로 교회를 찾아 간 거죠.”

▲ 품질 좋은 로열젤리를 본격적으로 생산해서 아픈 환자들, 그리고 오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이 오면 선물하고 싶다는 조성일 장로     ©크리스찬리뷰


그가 시드니로 온 것은 1977년, 25세의 새파란 청년이었다. 그의 가슴은 벅차올랐고 바로 직장에 취직이 되어 일을 하게 됐다.

“당시 시드니한인연합교회 청년회장를 맡고 있었는데 하루는 김상우 목사님이 대뜸 인쇄소가 나왔는데 해볼래? 그렇게 해서 ‘우리인쇄소’를 시작하게 됐어요. 그때가 1979년 7월 1일이니까 한국인으로서는 호주에서 제일 먼저 시작한 셈이지요. 그런데 주인이 카나다로 이민가면서 맡긴 건데 정말 시설이 형편없었어요. 그래서 이 사업을 계속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사실 호주에 올 때 무일푼으로 왔거든요. 그래서 세 가지 일을 뛰었는데 밤도 많이 새고 울기도 많이 울고 고생 많이 했어요.”

그는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고 토로했다.

“사실 인쇄소를 시작할 당시 제가 일을 하고 있는 직장이 자선단체인데 거기에서 마침 인쇄담당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작이 가능했죠. 그곳에서 기술을 배우면서 인쇄소를 꾸려나가게 된 거니까요. 그러니까 아침에 직장(자선단체)에 출근해 하루 종일 일하고 레드펀에 있는 가게로 가서 앤서링 머신 체크하여 전화할 때 전화하고 배달 준비하고 인쇄 주문받은 것 처리한 후 잠시 쉬었다가 밤 11시에 시리얼 만드는 겔로그 공장에 가서 아침 7시까지 일하고 집으로 와서 아침 먹고 다시 회사 출근하고, 그 사이 TAFE도 다녔다니까요.”

그가 어떤 때는 이렇게 하루 20시간을 계속 일에 매달려 있었다면 누구도 믿기 어려울 것이다. 성공에 대한 집념은 그에게 놀라운 힘을 줬다. 자지 않고 먹지 않고도 버틸 힘이 생겼다.

 - 듣기로는 호주 교민사회 최초로 ‘주간정보’를 발행하여 배포했다던데요.

 “네, 그거요? 사실 제가 연합교회 청년회장을 맡고 있을 때인데요, 교민 언론매체가 생기기 전 몇몇 젊은이들과 모여서 우리 교민사회를 위해 뭔가 좀 하자고 해서 시드니 모닝헤럴드 등 중요한 기사를 번역을 해서 배포했지요. 인쇄소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A4 용지에다 주간 소식지로 만들어 배포를 했는데 좋은 반응을 일으켰어요. 아마 알고 있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자료도 없고 하니까.”

조 장로는 인터넷 등 첨단산업화로 인쇄소가 하향 길에 접어들자 30년 꾸려온 인쇄소를 최근에 접었다면서 “그동안 전쟁이 난 것처럼 바빴다”고 고백했다.

이내 화제는 다시 로열젤리로 옮겨갔다.

“사실은 여기에서는 로열젤리가 많이 나오질 않아요. 호주사람들이 로열젤리를 만들 줄을 알면서도 만들지를 않아요.”

 - 왜요?

“너무 힘드니까.”

시중에 보면 로열젤리가 많이 나와 있던데요.

“......”

조 장로는 대답대신 로열젤리를 직접 가지고 와서 먹어보라고 권했다.

 “혀 밑으로 넣어서 드셔요.”

- 어? 금방 녹네. 그런데 맛은 없네요.

“허허허. 진품이거든요. 여기 겉으로 뺑 둘러싼 것이 밀랍이라는 것인데 꿀벌이 벌집을 만들기 위해서 분비한 물질이거든요. 이 밀랍 안에 들어있는 것이 로열젤리인데 양이 얼마나 적습니까. 그런데 먹어본 사람들이 효과가 있어서 더 달라고 하는데 그렇게 많이 나오질 않아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로열젤리는 하루만 놔둬도 상해요. 그래서 꿀을 섞어놓는 거에요. 그러니까 로열젤리에 꿀을 얼마나 섞느냐에 따라 로열젤리의 품질이 결정이 되는 겁니다. 앞으로 많은 양과 품질 좋은 로열젤리를 생산하기 위해 많이 연구하고 노력해야지요.”

정신과 몸 어느 구석에도 기름 끼가 느껴지지 않는 조 장로는 아내와 함께 일주일에 한두 번 시드니에 있는 교회로 내려가 예배를 드리고 교우들과 어울린다고 했다.

“적막하다든가 외롭다든가 하는 감정은 시간이 해결해 줍니다. 그건 이곳에 살면 사람에의 관심이 자연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가능해져요. 성경을 읽고 깊은 묵상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지요.”

그는 자리를 일어나는 기자에게 봉지 하나를 건넸다. 벌꿀이었다.

“시드니에 꿀이 없어서가 아니라 제가 직접 채취한 꿀이니까 주는 겁니다. 정으로 가져가세요.”

그의 정이 담긴 꿀을 가지고 오면서 “허허허”하고 웃는 맑고 건강한 그의 웃음소리까지 가지고 왔다.〠

 

글/김명동 | 크리스찬리뷰 편집인  

사진/권순형 | 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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