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에 울려 퍼진 케이팝 열풍

글ㅣ유종오/사진ㅣ권순형 | 입력 : 2011/11/28 [15:03]

다이아몬드 스탭에 고고춤

 
원, 투, 스리, 포...

 강원도 설악산 어느 여관 앞마당에서 우리 고등학교 수학여행단은 다이아몬드 스탭에 맞추어 고고춤을 추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힘들게 챙겨온 거대한 녹음기에 테이프를 틀어 놓고 말이다.

▲ 홈부쉬 ANZ스타디움에서 열린 K-POP 공연에 2만 명이 넘는 관객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사진은 9인조 여성 음악그룹 소녀시대.     ©크리스찬리뷰


요즘이야 아이폰·아이폿만 있으면 어지간한 음악은 어마어마한 스테레오로 감상할 수 있지만 70년대야 어디 그런게 있었나, 그보다 훨씬 나중에도 워크맨이라도 하나 들고 다니면 시대를 앞서는 사람으로 마냥 부러워만 보였는데 말이다.

그런 내가 거대한 항아리 같은 시드니의 ANZ 스타디움에서, 지난 11월 12일 토요일 밤을 3시간 동안 젊은이들과 함께 뜨겁게 입맞추고 호흡하면서 보냈다.

그날 나는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대한 음악과 나의 고고춤을 능가하는 현란한 춤사위 앞에서 그만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 한ㆍ호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열린 대규모 케이팝 시드니 공연에 소녀시대, 카라,샤이니 등 한국의 대표적 아이돌 12개 팀이 출연했다. 금번 공연은 JK엔터테이먼트와 MBC가 공동 개최했다.   ©크리스찬리뷰


말로만 듣고 우리 아이들을 통해서만 접했던, 소위 말하는 아이돌 그룹을 내눈으로 직접 봤으니, 비록 인생 5학년이지만 이 나이에 안 갔으면 평생 후회할 일이었노라고 자평하면서 K-팝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기로 했다.

▲ 케이팝의 열기를 보여 준 관중들의 다양한 모습.     ©크리스찬리뷰


사실, 나는 클래식도 좋아하고 팝송도 좋아하고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K-팝 역시 좋아한다. 물론 CCM은 물론 성가곡도 망라하는 아마 잡식성 음악 애호가인가 보다.

뭐 그렇다고 변변하게 연주할 수 있는 악기 하나 있는 것도 아니다.

아, 물론 전도사 때는 헨델의 ‘할렐루야’까지 지휘했으니까 콩나물 대가리 정도는 읽을 수 있고 비평정도는 할 수 있으리란 자부심 속에, 아직도 이 음악 저 음악에 기웃거리고 있는, 말 그대로 그냥 감각적인 음악 매니아 일뿐이다.

▲ 시드니 케이팝 공연    ©크리스찬리뷰


2만여 명 넘는 관객들 열광

이날 행사가 ‘한·호 수교 50주년 기념 축하공연’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12개 팀(샤이니, 동방신기, 미쓰에이, 카라, 포미닛, 2AM, 씨앤블루, 비스트, 씨크릿,엠블랙, 씨스타, 소녀시대) 57명의 가수들로 구성된 어마어마한 출연진을 보기 위해 모인 동서남북, 흑백과 남녀노소를 초월한 2만여 명이 넘는 거대한 군단의 광팬들에게는 왠지 초라한 제목의 느낌마저 들었다.

▲시드니  케이팝  공연    ©크리스찬리뷰


사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부탁하기도 전에, 사전 판매 공지가 나오기도 전에, 거금을 들여서 두 아이들 깜짝 선물용으로 티켓 4장을 미리 장만해 두고 회심의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역시나 티켓을 받아든 아이들의 기쁨이야말로 내게는 전쟁터의 승장처럼 어깨에 힘을 주고 오랜만에 아빠노릇 제대로 한번 했다는 안위함을 가졌다.

▲  케이팝 공연장에서   ©크리스찬리뷰

그날 나의 눈앞에서 거의 3시간 동안, 아니 한 10분은 앉아서 잠시 휴식 시간 빼고는 가수들을 따라서 흔들어대는, 8,9학년 정도 되어보이는 노랑머리 2명의 여학생들 때문에 그밤이 더 내게 뜨겁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자기들이 무슨 한국말을 알고 언제부터 우리의 이 위대한 한류에 빠졌다고 말이야 하면서도, 속으로는 아! 홍콩의 스타들 앞에 진을 쳤던 우리문화가 엊그제 인데, 정말 우리 대한민국의 영향력이 굉장해졌구나를 인정하면서, ‘한류여 영원하거라’ 소리를 외치면서 두개의 공연(?)을 함께 보는 행운을 가졌다.

▲  케이팝 공연장에서  ©크리스찬리뷰


마지막에 가수들과 청중들이 함께 ‘아리랑’을 부르면서 피날레를 장식하고 가수들이 무대 뒤로 다 사라지기까지, 그리고 관객들이 자리를 거의 다 빠져나가는 시간까지, 우리 부부는 사진을 찍고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하면서 최대한의 여운을 남기려고 기를 쓰다가, 의자 밑의 다 식어버린 커피잔을 들고 내일 주일을 위해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교회도 복음도 열정 어린 준비와 훈련을

다음은 그 다음날 주일 설교 서론 부분인데 소개하고자 한다.

▲     ©크리스찬리뷰


“어젯t밤 저는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있었던 K-Pop 공연을 보고 왔습니다. 2만여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분위기가 굉장했습니다.

약 3시간 동안의 공연에 모든 관객들이 한마음이 되어 흥분하는 것을 함께 지켜보았습니다. 제 눈에는 한국 사람들이 반, 외국인들이 반 정도로 보였습니다. 물론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거의 할아버지 연령대 같이 보였습니다.

12개 팀의 가수들의 열정과 현란한 춤솜씨는 아, 이래서 전 세계가 저들에 흥분하고 열광하고 있구나를 직접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     ©크리스찬리뷰


제가 가수들 모두를 잘 모르니까, 제 아들이 좋아하는 KARA가 나왔을 때는 구하라를 보면서 며느리 삼으면 좋겠다는 재미있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또 딸이 좋아하는 동방신기가 나왔을 때는 그놈들 참 잘 생겼단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2AM의 ‘죽어도 못보내’ 그리고, 소녀시대의 ‘Gee Gee Gee"는 조금 따라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관심은 다른데 있었습니다.

그 어마 어마한 무대 분위기와 백만 불이 넘게 들었다는 음향 그리고 말 그대로 환상적인 영상쇼와 레이져 쇼 등은 젊은이를 감성과 미친듯한 괴성과 환각의 세계로 빠지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정말 교회도 복음도 저렇게 열정 어린 준비와 그치지 않는 훈련으로만 이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저 자리에서 설교를 한다고 생각한다면, 저 가수들처럼 끊임없이 연습하고, 실제와 똑같이 리허설하고 또 고치고 바꾸지 않으면 그 자리를 지킬 수 없겠구나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은 저처럼 급변하고 쉬임없이 새로워지기를 위해서 목숨을 내걸고 그 자리를 지키려고 밤잠을 설치는데, 과연 우리 성도들은 내가 체험한 복음, 내가 심장 속에 간직하고 있는 예수그리스도의 보혈, 그 생명의 십자가를 지키기 위해 우리의 삶 속에서 얼마나 애통하고 있는지를 고민해 보았습니다...”

좀 심각해 졌나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그 거대한 항아리 안에다 이런 메아리를 남겨 놓았다.  “이런 공연에는 비싼 돈들여서 다 찾아오는데, 우리 기독교문화도 돈내고 자발적으로 2시간 전부터, 아니 7시간 전부터 기다리는 그런 것은 없는 것일까? 아니면 못하는 것일까?”〠

 

글/유종오 | 시드니행복한교회 담임목사

사진/권순형 | 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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