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없는, 사지 없는 삶Life without limbs, but without limits그가 시드니에 왔다. 사람들은 그를 ‘희망 전도사’라고 부른다. 그를 만나는 사람마다 희망을 한아름 안고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는 1982년 호주 멜본에서 태어나 브리즈번에서 자랐고, 지금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살고 있다. 2012년 2월 12일 그는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도 했다. 신혼의 단꿈을 잠시 접어 두고 희망을 전달하기 위해 시드니로 달려 온 것이다.
그의 이름은 ‘닉 부이치치’(Nick Vujicic) 이다. 닉은 양팔과 다리가 없는 선천성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의학이 발달 됐음에도 불구하고 태어날 때까지 의료진도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사지가 없이 태어난 그를 본 의사와 간호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간호사는 재빠르게 아이를 포대기에 쌓아 옆방으로 갔다. 닉의 엄마는 간호사의 이상한 행동을 보고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아빠는 엄마가 큰 충격을 받을 것을 염려하여 먼저 병실로 갔습니다. 이미 간호사와 조산원이 엄마가 함께 통곡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강보에 싸인 나를 데리고 갔으나, 엄마는 보기 싫으니 나가라고 소리 쳤습니다. 나는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물론이고 온 교회가 내 출생을 축하하는 대신 깊은 슬픔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닉은 당시 부모님의 심정을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부모님은 경건한 그리스도인이었지만 팔다리가 없는 자식을 낳고서는 하나님의 뜻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깊은 회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암담한 앞날 때문에 절망에 빠져 있었고, 자식이 정상적인 삶을 살기는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계 없는 삶 (Life without limits) ‘한계 없는 삶’, 그가 쓴 책 제목이다. 사지가 없는 그에게 삶 자체가 한계일 것 같은데, 그는 정반대의 고백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부이치치의 허그’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책 서문에서 닉은 자신을 소개했다.
“내 이름은 닉 부이치치이고, 올해 스물일곱 살(1982년 생)이다. 남들처럼 팔다리는 없지만 거기에 매이지 않고 온 세계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이들에게 역경을 이겨내며 꿈을 좇으라고 도전하고 있다.” 그의 부모는 세르비아 출신으로 독실한 크리스찬이다. 사지가 없이 태어난 그를 보고, 도대체 왜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주셨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지난 날을 돌아보며 닉은 이렇게 고백한다. “장애는 나의 축복입니다.”
그가 이렇게 고백하기까지 어둠의 긴 터널을 통과했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닉이 장애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 것은 8살 때이다. 학교를 다니면서부터 다른 아이들과 너무 다른 자신의 모습을 보고 스스로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수 없이 많은 날을 하나님께 기도했다. 아무런 변화가 없자 10살 때 자살을 기도했다. 자살이란 죽고 싶다는 뜻이 아니다. 살고는 싶지만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닉은 사지 없는 장애인으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오후,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입욕을 하게 욕조에 물을 받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욕실을 나서는 어머니에게 문을 좀 닫아 달라고 말했다. 그러곤 물 속으로 들어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수없이 많은 장면이 머리를 스쳐갔다. 오래 계획해 왔던 일을 실행에 옮길 작정이었다.” 인생의 고민은 선택에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나를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닉은 아무리 노력해도 사지 없는 그에게 내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왕따 당하지 않고, 비참해 지지 않고, 아파하지도 않는 마지막 방법인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조금만 더 참으면 폐 안의 공기는 다 사라지고 말 것이야. ‘열, 아홉, 여덟, 일곱, 여섯, 다섯, 넷, 셋…, 숫자를 세고 있는데, 문득 내 무덤 앞에서 울고 있는 어버지,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일곱 살짜리 남동생 에어런도 있었다. 다들 눈물을 쏟으며 더 잘해 주었으면 죽지 않았을 거라고, 모든 것이 자기들 탓이라고 괴로워했다. 가족들이 평생 내 죽음으로 자책감을 가지고 살게 만드는 것은 견딜 수가 없었다. ‘맞아, 난 나만 생각했어’ 얼른 몸을 뒤집고 숨을 깊이 들이 마셨다.”
사지 없는 삶 (Life without Limbs) 15살 때 그는 하나님 앞에 지금까지의 모든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는 요한복음 9장의 말씀을 읽게 된다. “누구의 죄로 인하여 맹인이 되었는가?”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닉은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했다. 누구의 죄 때문에 내가 사지 없이 태어난 것인가? 닉도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닉은 대중 앞에서 간증하기 시작했다. 닉은 이제 복음 전도자로 희망을 가지고 전 세계를 다니고 있다. 기적을 일으켜 달라고 기도하는 것 대신, 자신이 기적의 주인공이 되어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절망하고 낙심하는 자에게 희망을 전해주고 있다. 닉은 비영리단체 ‘사지 없는 삶’(Life Without Limbs) 재단을 설립했다. 닉은 재단을 통하여 후진국이나 미개발국가에 부족한 식수를 지원하기 위한 복지사업 등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그가 스무 살이 되던 해, 두 주간에 걸쳐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여행하며 강연할 기회를 가졌다. 초대한 사람과 일면식도 없었다. 안전과 건강이 염려되는데다가 여행 경비도 만만치 않았지만, 그는 기꺼이 초대에 응했다.
사연은 이랬다. “존 핑고는 나의 비디오 한편을 보고는 빈민가의 가난한 이들에게 이 희망의 메시지를 들려 주어야겠다는 사명감이 샘솟더라고 했다. 그래서 교회, 학교, 고아원 등지를 도는 순회 강연을 직접 주선했다. 그리고 내게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방문해 달라고 간청하는 편지와 전화, 이메일 등의 폭탄을 쏟아 부었다.” 닉은 직간접적으로 세계에 희망을 전달하여 주고 있다. 나도 닉을 처음 만난 것은 인터넷의 동영상에서였다. ‘아니 이럴 수가 있을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감동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그가 시드니에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찬양의 축제 (Festival of Praise) 2012년 3월 3일 시드니의 5개 교회가 연합하여 시내에 있는 ‘구세군교회’에서 닉 부이치치를 초대하여 ‘찬양의 축제’를 가졌다. 공교롭게도 시드니의 동성애자의 축제인 ‘마디그라(Mardi Gras)’가 같은 날에 열렸다. ‘마디그라’란 원래 ‘사순절’ 직전의 기독교 축제였으나, 시드니에 상륙하면서 ‘동성애자’들의 축제로 의미가 변질되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지만, 여기저기서 이상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거리를 수놓기 시작했다. 거리 반대 쪽에는 거의 나체로 남자들이 떼를 지어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이 들고 가는 피켓에는 2012년 마디그라 표어인 ‘모든 사랑은 평등하다’(All love is equal) 가 써있었다. ‘평등’이라는 말 자체는 참 좋은데, 동성애자들이 사용하니 뭔가 좀 어색하기만 하다. 이상한 무리들을 뒤로 하고 집회 장소인 ‘구세군교회’로 들어 갔다. 나는 닉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이층 첫째 칸 앞 좌석에 앉았다. 일찍 도착한 탓인지 좌석은 아직 차지 않았다.
주최측에서는 인터넷을 통하여 티켓을 판매했다. 750석은 순식간에 매진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리는 입추의 여지없이 꽉 찼다. 본 집회가 시작되기 전 닉을 따로 만날 수 있었다. 닉과 짧은 만남 (Short Meeting with Nick) 닉과 짧은 만남은 긴 여운을 남겼다. 그를 마주친 순간 잠시 할 말을 잊었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이 조금 어색했기 때문이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특별히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때 갑자기 닉이 한국말로 ‘감사합니다’하며 반갑게 인사하는 것이 아닌가! 한국에 초대를 받아 갔었다고 했다. 함께 사진 찍기를 원함을 눈치채고, 어떻게 사진을 찍으면 좋을까 하며 먼저 포즈를 취해 주는 것이다. 그는 휠체어를 높여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사진을 찍었다. 잠시 나의 눈길은 그의 왼발에 머물렀다. 왼발에는 작은 두 개의 발가락이 붙어 있다. 놀랍게도 그는 두 개의 발가락으로 컴퓨터 작동도 하고, 전화도 걸고, 수영도 한다. 보통 사람이 두 손으로 해야 하는 대부분의 일을 그는 두 발가락으로 한다.
닉은 가끔 자신의 왼발을 보여 주며 ‘내 조그만 닭발’이라고 소개하면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진다고 한다. 정말 그렇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 별명을 지어 준 것은 자기보다 여섯 살 어린 여동생 미셀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세 아이를 데리고 자주 장거리 여행을 다녔다. 미셀과 남동생 에어런, 그리고 나는 장작 다발처럼 뒷좌석에 나란히 끼어 앉곤 했다. 대다수 가장들이 그렇듯, 아버지도 일단 출발한 뒤에는 웬만해선 차를 세우려고 하지 않았다. 한참 달려도 밥 먹을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우리는 배가 고프다는 신호를 조금씩 흘려 보냈다. 뱃가죽이 등에 달라 붙을 지경에 이르러도 반응이 없을 때는 정신이 나간 듯 서로 깨무는 시늉을 했다. 미셀이 내 왼발을 깨물며 소리쳤다. “여기 닭 발이 있네, 야 맛있겠다”. 그때 이후로 닉의 왼발은 닭발이 되었다. 닉은 자신의 약점을 유머를 통해 장점으로 승화 시키는 능력이 있다. 닉은 2010년 ‘온누리교회’의 초청으로 한국에 갔다. 때마침 밴쿠버에서 열리는 동계 올림픽이 한창 이었다. 한국 피겨의 여왕 김연아가 사상 첫 금메달을 조국에 안긴 직후여서 서울 거리는 자부심과 열기로 넘쳐 있었다. 그는 차를 타고 서울 시내를 지나면서 곳곳에 들어선 수많은 교회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불과 백년 전만 해도 그리스도인을 찾아보기 힘든 나라였는데 지금은 거의 인구의 삼분의 일 정도가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고백하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사는 사람들도 만났다. ‘일등만 살아 남는다’는 부담감에 시달리는 학생들을 보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닉은 설령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실패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학생들을 격려했다. 태도가 고도(高度) (Attitude is altitude) 그는 “우리가 태도를 바꾸면 인생도 바뀐다”라고 했다. 마음가짐은 텔레비전의 리모컨과 비슷하다. 보고 있던 프로그램이 어떤 이유에서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채널을 바꿀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열심히 살았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면, 앞을 막는 걸림돌이 무엇이든 상관 없이 태도를 조종할 필요가 있다. 닉은 사람은 4가지의 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1. 감사의 태도(an attitude of gratitude). 2. 행동의 태도(an attitude of action), 3. 공감의 태도(an attitude of empathy). 4. 용서의 태도(an attitude of forgiveness) 특별히 닉은 ‘감사의 태도’와 관련해서 ‘조니 에릭슨 타다’ (Joni Eareckson Tada) 여사에 대하여 언급을 했다.
“나는 어렸을 때, 어머니가 즐겨 읽어 주던 책 가운데 ‘내가 사랑하는 하나님’이라는 책이 있었다. 처음 그 내용을 알게 된 것 여섯 살 즈음이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팔다리 없이 태어난 사람이 나뿐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역경을 헤쳐 나가는 롤 모델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의 줄거리를 따라가노라면 늘 기운이 나고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바로 조니 여사가 쓴 책이기 때문이다.” 조니 여사는 호수에서 다이빙을 하다가 목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을 당시, 열일곱 살이었다. 누구보다 건강해서 수영과 승마 경기에 선수로 출전하곤 했으며, 몇 주 뒤면 대학 생활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1967년 에 일어난 불의의 사고로 목 아랫부분을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신세가 됐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이 너무 커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결국 자신이 “하나님의 거대한 계획 가운데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후 조니 여사는 치명적인 장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분노하고 원망하는 대신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일구어 냈다. 감사하는 마음은 조니 여사의 삶을 변화시켰고, 그녀는 ‘조니와 친구들’이란 재단을 세워 100여 개가 넘는 국가에 다니며 수많은 장애인들에게 수천 개의 목발과 지팡이, 보행기는 물론이고 휠체어를 무상으로 나눠주고 있다. 조니 여사는 “편하지만 절망으로 통하는 내리막길을 걸을지, 아니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다소 고단하지만 소망으로 이어지는 언덕 길을 오를지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닉은 자신의 맨토와 같은 그녀를 만났다. 그녀를 통하여 ‘감사의 태도’가 얼마나 강력한 힘이 되는지를 알게 되었다. 닉의 간증 (Testimony of Nick) 그의 간증은 자체가 희망이었다. 몸통뿐인 그는 강대상 중앙에 위치한 원탁 위에 섰다. 탁자에는 성경과 모발폰이 있었다. “오늘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고, 특별히 오늘 나를 초대한 목사님께 감사 드립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45분 동안 여러분에게 제가 받은 많은 축복을 나누어 드리고자 합니다.” 그가 얼마 전에 결혼했다는 말을 할 때, 우뢰와 같은 환호와 함께 큰 박수를 보냈다. 닉은 지난해 8월 약혼한 일본계 미국인 ‘카나에 미야하라’와 금년 2월 12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오래 전 그의 동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그는 “내 부인은 지금 오고 있습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을 수 없지만, 나는 그녀의 마음을 잡을 수 있습니다.”라고 선포했다. 그때 그의 믿음의 선포가 이제 현실이 되었다. “오늘 여러분이 어떤 분이고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지만,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닉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 갔다. 닉은 성경 말씀을 참 많이 인용했다. 그의 닭발로 앞에 있는 성경을 펼쳐서 읽기도 했다. 제일 먼저 닉이 인용한 구절은 로마서 8장 28절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아마 이 구절은 그의 신앙고백인 것 같다. ‘사지 없는 삶’, 하지만 그것까지라도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만약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온전하게 태어나서 평범한 삶을 사는 것보다, 지금과 같이 불구로 태어나서 수많은 사람을 주께 인도하는 삶을 선택할 것입니다.” 닉은 예레미야 29:11-13절도 인용을 했다. 이 구절을 다른 곳에서도 몇 번 인용하는 것을 들었다. 아마도 그가 어렵고 힘들 때 이 말씀이 힘이 되고 능력이 되었던 것 같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그는 시편 23편을 인용하며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푸른초장 맑은 시냇물로 인도하시는 분임을 소개하며, 하나님이 목자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두려움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면 마음에 소원하는 목표와 이상을 이루지 못합니다. 하지만 두려움은 그저 느낌일 뿐 현실이 아닙니다. 실제로 별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레 겁을 먹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치과에 가거나, 면접을 보거나, 수술을 받거나, 시험을 치르거나 하는 것이 그런 경우입니다.” 특별히 그는 요한복음 9장의 말씀을 강조하며 맹인이 된 것은 부모의 죄도 아니고 자신의 죄도 아니고 그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 모두에게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강조했다. 닉은 지금까지 33개 국가에서 말씀을 전하면서 50여만 명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했다. 이날도 많은 청년들이 닉의 초대에 응답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겠다고 결단했고, 믿는 사람들은 다시 한번 자신을 주께 헌신하는 기회를 가졌다. 마지막 찬양을 부르기 전 집회를 주관한 5명의 목사가 닉에게 손을 얹고 축복 기도를 했다. 닉은 내년에 다시 올 것이라 약속했다. 찬양을 부르며 회중들은 희망을 품고 천천히 퇴장하기 시작했다. 밖에는 아직도 조금씩 비가 내리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기승을 부리던 ‘마디그라’의 열기도 짙게 깔린 어둠 속으로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 글/김환기|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호주구세군 한인사역 및 수용소 담당관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저작권자 ⓒ christianreview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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