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돌아가다

글|존 휴먼,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2/03/26 [11:26]

나의 어머니 레이첼(Rachel Reeve Humann McLaren)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생의 대부분을 호주에서 지냈다. 그러나 어머니가 고향 진주로 돌아가는 과정은 나에겐 가슴 찡한 감동을 가져다 주었다.

<*레이첼은 Dr. Charles I. McLaren, 한국명 마라연, 진주(1911-1923, 1939-1941), 서울(1923-1938)과 제시(Jessie McLaren) 선교사의 딸로서 1923년 2월 16일 진주에서 태어났으며, 2007년 10월 4일 멜본에서 소천했다.- 편집자 주>

 
▲한국 방문 중에 부산진교회에서 더그(앞쪽)와 존 형제 부부가 인사하고 있다.     ©크리스찬리뷰

어머니는 사랑스런 딸이자, 아내, 어머니, 며느리, 할머니이자 친구로서 따뜻한 마음으로 항상 격려하는 분이였다. 친절, 배려, 사랑과 섬김이 몸에 배여있었던 우리 어머니는 항상 배우기를 좋아하시는 지혜로운 분이기도 했다. 이중에는 일찍이 18년을 같이 보냈던 한국인들에 대한 관심이 포함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제2차 세계대전의 위협이 밀려오던 1941년 한국을 떠났다. 당시 많은 호주 선교사 가족들이 그랬듯이, 항상 마음으로는 떠나지 못해도, 다시 돌아가기는 불가능하게 될 땅을 뒤로 하고 있었다.

▲ 여의도 국회 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열매' 출판기념회를 마친 후 존과 더그가 자신들의 외조부 사진을 가리키며   기념촬영을 했다.   ©크리스찬리뷰

이 후 어머니는 1950년 멜본에서 의사였던 피터 휴먼과 결혼하여 두 아들을 키웠다. 어머니가 직접 눈으로 자기가 태어난 고장이 경제적으나 사회적으로 얼마나 변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62세가 되어서였다.

1985년 어머니는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당시 연세대학교가 100주년 설립기념식에 어머니를 초대했던 것이다. 어머니의 아버지 챨스 맥라런 박사와 할머니 제시는 한국(1911-1938)에서 의료사역으로 잘 알려진 분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저명한 정신치료 전문가였고, 이후 연세의료원 일부가 되는 세브란스 병원의 창립멤버이기도 했다.

▲ 존과 더그 형제 부부는 자신들의 어머니가 태어난 진주를 방문, 어머니 유언대로 어머니의 추억의 장소에 화장한 재를 뿌렸다.  ©John Humann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1985년 5월 한국을 방문할 행운을 누렸고, 서울, 진주, 부산 경주 등 여러 곳을 다닐 수 있었다. 어머니가 어릴 적 누볐던 골목과 만난 사람들에 대한 생생한 추억을 나 역시 같이 경험할 수 있었다.

어머니에겐 한국 방문은 큰 기쁨의 기회였지만, 나에게는 깨달음의 시간이었다. 이 짧은 3주가 어머니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던 유일한 기회였기도 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3년이 지난 2010년, 나의 여정은 계속되었다. 그해 10월에도 우리 가족은 어머니 추모예배로 모여 같이 슬퍼하고 있었다. 이때 우리는 외조부모 챨스와 제시, 그리고 다른 조상들 묘 옆에 어머니를 위한 화강석 기념패를 놓았다.

▲ 복원한 일신여학교 교실에서 동심으로 돌아간 선교사 후손들    ©크리스찬리뷰

우리 형제는 어머니의 화장한 재 일부를 따로 담아, 유언대로 어머니에게 가장 중요한 추억의 장소에 뿌릴 수 있도록 준비했다. 그중에 한 곳은 빅토리아주 중부고지 숲지대에 자리한 툴랭기 주변의 시냇물이었다. 그곳으로 어머니와 가족 모두가 종종 피크닉을 갔던 곳이었다. 이곳에 어머니에게 끌렸던 이유는, 외할아버지가 여름휴가 때마다 어머니를 데리고 산행을 했던 한국의 금강산의 쏟아내리는 시냇물을 강하게 연상시켰기 때문이었다.

2010년 10월 어머니의 기억을 추모할 더 중요한 기회가 찾아왔다. 경남성시화운동본부(대표회장 구동태 감독)가 한국에서 호주선교부에서 일했던 선교사들의 가족을 초청한 것이다. 이 열흘간의 여행은 이들 선교사들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경남선교 120주년 기념관’ 개막식 일정에 맞췄다.

레이첼의 아들로서 나와 더그(Douglas Humann)는 부부동반으로 이 초대를 기쁘게 받았고, 가는 곳마다 한국교회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 진주장로교회 묘지에 세워진 레이첼 기념비    ©John Humann

여행을 마칠 때쯤, 우리는 진주장로교회를 방문해 목사, 장로 그리고 다른 지도자들을 만나,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어머니의 마지막 한국 귀환을 위해 교회 묘지터에 어머니 자리도 같이 할 수 있을까요?’ 답은 흔쾌히 ‘좋다’였다.

그래서 우리는 진주 외곽의 소나무가 우거진 언덕 묘터에서 어머니의 마지막 유해를 뿌렸다. 거기서 감사의 기억으로 무덤 앞에 머리를 숙인채 우리 가족들과 교회 장로들이 서 있었고, 그 앞에는 계곡너머로 보이는 푸른 언덕이 펼쳐졌다.

어머니는 고향으로 돌아가셨다. 같이 하셨다면 누구보다도 기뻐하고 만족하셨으리라.

 

글/존 휴먼 (John Charles Egerton Humann)|존은 현재 멜본에 있는 스원본 대학에서 교육상담을 맡고 있다..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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