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질리언스 (resilience)

김종환/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3/05/27 [12:19]

1989년 동유럽 공산주의가 붕괴되면서, 루마니아의 해괴한 가족 정책이 알려졌다. 1965년 권력을 장악한 독재자 체아우셰스쿠는 인구 배가정책으로, 모든 여성이 45세까지 다섯 아이를 낳도록 했다. 문제는 다섯 아이를 양육하기에는 너무 가난한 가정들이었다. 그래서 15만 명 이상의 아이들이 처참한 시설의 고아원에 아이를 넘겨졌다.

고아원 아동들은 영양실조에 걸렸고, 더러운 침대 하나에 네 명이 잠을 잤으며, 겨울에 내복도 없이 추위에 떨었다. 많은 아동들이 심한 설사와 전염병으로 고생했다. 2, 3살 아이들이 아직도 걸을 줄을 몰랐고, 배변 훈련도 받지 못했으며, 큰 아이들의 폭력에 시달렸다. 이 비참한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여러 나라에서 이 고아원 아동들을 입양하였다.

심리학자 아메스(Elinor Ames)는 캐나다에 입양된 아동들의 변화를 연구하였다. 이 아동들은 치료가 시급한 정신장애, 애착 불안 그리고 지능지수 85 이하 등의 심각한 문제를 지니고 있었다. 고아원에 오래 있었던 아이일수록 문제가 심각하였다.

전통심리학에 의하면, 이 아동들은 상처가 고착되어 어려운 일을 만나면 과거로 퇴행하는 불행한 인생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러나 연구 결과는 매우 달랐다. 입양 2년 후 35%의 아동들은 모든 문제들이 완전히 사라졌으며, 다른 35% 아동들도 가벼운 문제만 나타났다.

출생 육 개월 전에 입양된 아동들은 대조집단과 비교했을 때 별 차이가 없었다. 이렇게 처참한 양육 환경에서도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을 레질리언스(resilience)라고 한다. 최근 ‘행복 과학’으로 불리는 긍정심리학(positive psychology)은 전통심리학과는 달리 레질리언스를 강조한다. 탄력성, 회복력 등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나는 ‘되튐’을 좋아한다.

그렇다. 어쩌면 멋지게 튀어 오르는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고통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고난이 없으면 되튐도 없을 것이다.

아동기가 성인기를 결정한다는 대상관계론은 예비부모교육에 필요한 내용이지만, 이미 자녀를 양육한 부모에게는 레질리언스가 고맙고 희망이다.

공자는 한 살 때에 부친이, 루소는 태어나자마자, 데카르트는 한 살에, 파스칼은 세 살에 모친이 사망하였으며. 레오나르 다빈치는 사생아였으며, 바흐, 루소, 사르트르, 스탕달, 보들레르, 카뮈, 볼테르, 바이런, 도스토예프스키 등이 모두 고아였다. 대통령, 수상, 왕들 중에 300명이 고아 출신이다.

이 위대한 사람들의 생애는 불행한 인생의 원인이 36개월 이전의 모성상실에 있다는 전통심리학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이를 긍정심리학은 외상후성장(PTG /Post Trauma Growth)이라고 한다.

그래서 폴 트루니어(Paul Tournier)는 ‘창조적 고통’, 슐레징어(Laura Schlessinger)는 ‘불행한 아동기, 행복한 삶(Bad Childhood, Good Life, 2006)’, 스토(Anthony Storr)는 ‘고독의 위로’라는 책에서 슬픔과 고통을 통하여 되튀는 위대한 창조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미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 12:5~13).

 

김종환ㅣ서울신학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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