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관기(멜본) 한• 선교 125주년 기념음악회 및 영상사진전

어느 선교사의 허무한 죽음?

글|한길수, 사진|권순형•박태연 | 입력 : 2014/12/01 [12:40]
▲ 멜본한인교회 성가대의 찬양(멜본 스카츠교회)     © 크리스찬리뷰

조셉 헨리 데이비스 목사(Rev. Joseph Henry Davies)가 지금으로부터 125년 전인 1889년 한국 땅에 발을 디딤으로 호주장로교회의 한국 선교가 시작되었다. 데이비스에 대한 짧은 지식만 가지고 멜번의 스카츠교회(Scots’ Church)를 찾았다. 호주 선교사들이 100여년 전에 찍었던 사진 영상 관람과 함께 한•호 음악인들의 연주가 11월 1일(토) 오후 2시부터 진행되었다.
 
먼저 영상사진전이 시작되었는데 '호주 양복점',  훈장의 한국말 '과외'지도를 받는 두 명의 여 선교사들, 연자방아를 돌리는 두 명의 아낙네들, 첨성대에 마구 기어올라 수학여행 기념사진을 찍은 학생들이 인상깊었다. 그리고 위생관념이 없이 개천의 이쪽에선 빨래를 하고, 저쪽에선 식수를 긷는 사진을 보니까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갔다. 그들은 우리의 조상들이다.
 
물론 이날 가장 관심을 끄는 사진의 주인공은 대망의 한국 선교의 꿈을 가졌던 데이비스 목사이다. 하지만 그는 서울에서 5개월간 한국말을 배우고 20일 동안 부산으로 걸어서 여행하는 동안 수두와 폐렴에 걸려 도착 다음날에 소천하였으니 그는 33세의 미혼 청년이었다. 


▲ 한•호 선교 125주년 기념 음악회에 참석한 선교사들과 교민들     © 크리스찬리뷰

전쟁터에 나간 군인이 적진을 향해 돌진하기도 전에 스스로 칼을 칼집에 밀어 넣고 알 수 없는 일로 '자멸'하였으니,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 이는 마치 예수께서 부정부패로 찌든 로마정부를 개혁하고 억눌린 백성을 해방할 것이라는 일부 제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십자가에서 죽어가시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제자들이 깊은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어간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그리고 부활하시어서 우리에게는 희망을 안겨 주시었다. 물론 데이비스의 죽음은 한 알의 밀알과도 같이 고귀하고,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알게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가 죽은지 3년 만에 호주장로교는 5명의 선교사를 다시 파송하게 되었고, 한국 선교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25년 전 데이비스를 파송하는 예배가 이곳 스카츠 교회에서 열렸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는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그리스도인이었지만 자신보다는 남을 걱정하는 차원 높은 사고를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 호주인으로 한국에 첫발을 디딘 조셉 헨리 데이비스 선교사와 그의 누이 메리     © 크리스찬리뷰

우리가 사는 오늘은 과정을 지나치게 무시하는가 하면 결과에는 지나칠 만큼 가치를 두는 세대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만 이루면 된다는 식이다. 여기에서 사랑과 정의는 찾아 볼 수 없다. 그러한 세대는 그 세대에 적응하고 대처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을 양산하기 마련이다. 이는 한 사람이 '어떤 교육을 받았는가'와 항상 비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나도 현 세대에 발맞추어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 아닌가 자문해 본다.
 
우리 주변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복받고 성공할 수 밖에 없다'는 신앙으로 팽배한 것을 본다. 데이비스 같은 사람 또는 '바보 예수'(2004, 임애란 지음)같은 신앙인은 무언가 잘못된 경우라는 생각 말이다. 주권자인 하나님이 보시는 성공과 복의 개념이 물론 항상 불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우리가 이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 그리고 다수가 추구하는 것을 좇기를 주저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그런 생활에 젖어있다.
 
▲ 호주 선교사로 한국에서 44년간 일한 소프라노 원성희 선교사. 그는 이번 음악회에서 2곡의 찬양을 부를 예정이었으나 감기 몸살로 인해 발성이 되지 않아 불편한 몸을 이끌고 참석해 청중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인사로 대신했다. 오른쪽은 진행을 맡은 최성조 목사.     © 크리스찬리뷰

 
사진전이 끝나고 음악회가 시작되었다. 김보라의 피아노 반주로 박희승의 잔잔한 풀루트 연주는 관중들의 마음을 차분하게 준비시켰다. 멜본한인교회 성가대의 '본향을 향하네'는 김보라의 피아노 반주와 노정숙 권사의 지휘로 연주되었는데 수많은 선교사들이 걸었던 길을 연상케 하였다. 
 
'이 세상 나그넷길을 지나는 순례자... 인생의 거친들에서 하룻밤... 그 괴롬 인하여 천국 보이 ... 기쁜 찬송 부르면 ... '관중들의 마음이 롤러 스케이트를 타는 듯이 평온함과 격변을 동시에 경험하였을 것이다. 이것이 작곡자 김두완이 의도한 것이고, 이것이 우리네 인생의 단면이리라.
 
데이비스가 부산을 향해 걸었던 20일이 마지막 순례의 길이었다는 것을 그는 어렴풋이 짐작하였을까? 아마도 그 기간이 희망, 선교계획, 자기성찰 그리고 하나님과의 대화로 가득하였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그는 그 기간의 상당부분, 적어도 전염병을 얻기 전까지, 아니 그 후에도 기쁜 찬송 부르며 여행을 하였을 듯 싶다. 그가 걸었던 순례의 길은 정말 행복한 과정이었다고 말하면 무리일까?
 
그리고 국제 무대에서 활약하는 오페라 성악가들, 소프라노 이지연, 테너 김재우 그리고 카트리나 워터스가 퓌비 브릭스의 피아노 반주로 들려준 명곡들은 음악에 문외한인 나를 감동시키고도 남았다. 솔로, 중창, 3중창의 퍼포먼스가 나의 코앞에서 펼쳐지는데, 나는 ‘불가능’을 경험하는 듯했다. 나는 철저하게 압도되어 최면에 걸린 듯했다.
 
▲ 박희승의 플루트 독주     ©크리스찬리뷰

데이비스의 죽음처럼 허무하고 보잘것 없는 듯한 삶 속에서 대단한 업적을 이룬 삶을 찾아낼 수 있는가 하면, 겉으로 보기에 찬란한 예술가나 성악가의 커튼 뒤에는 얼마나 피눈물 나는 노력과 집념이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내 마음은 그들 앞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의 음악가 재스카 하이페츠(1901-1987)가 말하길 음악 연주가는 하루를 게을리하면 본인 스스로가 게으름의 결과를 느끼게되고, 이틀이면 음악 비평가가, 그리고 삼일이면 관중이 알아차리게 된다고 했다. 어떤 유능한 한 명의 음악가도 그렇게도 쉽사리 관중들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
 
오페라 성악가의 퍼포먼스 앞에서 나는 그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을 떠올리며 압도되고 말았던 것이다. 내가 모르는 또 하나의 세계를 뜻하지 않게 접한 충격 때문이다. 비싼 입장료를 내고 관람했던 오페라보다 더욱 감동적이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아마도 그 성악가들이 나로 하여금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금 강하게 일깨워 주는 순간이어서 그런가 보다. 고향을 떠난지 세월이 더해가지만 한국인의 정체성이 나를 이리도 끈질기게 사로잡는 것은 왜 그런건가?
 
그리고 그날 언급된 또 한 가지는 의사 민보은 선교사가 선배 의사 안식년을 위해 일 년 예정으로 한국에 가서 31년 6개월 동안 의료 선교사의 삶을 살았고, 원성희 교수는 44년을 한국에서 선교사로 보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인생의 황금기를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고 그들이 가진 가장 귀한 것들을 다른 이와 나눠쓰며 살았다는 것에 우리는 숙연해질 수 밖에 없었다. 
▲ 열창하는 성악가들. 오른쪽부터 소프라노 이지연, 테너 김재우, 메조소프라노 카트리나 워터스.     © 크리스찬리뷰

글을 맺으며 생각해 보는 것은 우리가 원하면 우리가 있는 곳에서 선교사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디에 거하느냐와 무관하게 우리가 오늘 '이곳'에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보내셨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이다. 그렇다면 내 곁에 있는 사람이 가족이든 직장 동료이든 그들은 나의 선교 대상이 아닐까?
 
물론 여기서 선교의 개념은 넓은 의미에서의 선교를 말한다. 필자부터 그리고 호주 속의 교민들, 그리고 여타의 기독교인이 그렇게 삶에 임한다면 우리는 사회와 역사를 바꾸는 위대한 선교사들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는 마치 데이비스 목사가 한국에서의 6개월을 살았던 모습과 유사한, 위대한 삶의 모습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글/한길수|모나쉬 대학교,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과 교수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사진/박태연|크리스찬리뷰 사진기자 (멜본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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