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원영훈/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3/03/27 [15:44]

사람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단연 자연일 것이다. 자연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녹색을 좋아한다. 아마 그것이 자연의 색이어서 그런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자연이 그저 좋았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 특히 한국의 4계절은 계절마다 자연이 주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회심을 경험하면서, 그때부터 자연에 대한 감상은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위대하심을 깨닫고 누리는 통로가 되었다.

 

내가 신학교에 들어갈 때의 일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회심 이후로 교회를 다니는 것이 즐거웠고 행복했다. 그러면서 주님과 교회를 위해 헌신하리라 하는 마음을 가졌다. 그러나 목사가 되리라는 생각은 하지를 않았는데 고3 후반기에 대학입학 학력고사를 3개월 남기고 하나님의 콜링(calling)을 받게 되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목회자로서의 길을 가야 한다고 다 설명할 순 없지만 여러분들에게서 동일한 권면을 듣게 되었고 내면의 부르심을 듣게 되어 신학교를 가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때까지 교회를 다니지 않으셨던, 가문의 온갖 조상 제사를 도맡아 하셨던 아버지의 핍박이 시작되었다. 갑작스런 진로의 변경에 아버지는 화를 내시며, “신학교는 공부 못하는 애들이 간다.” “우리 집안에 목사는 없다”라며 극심한 반대를 하셨다. 그 씨름은 학력고사가 끝나고 나서도 지속이 되었다.

 

언젠가는 술 취한 아버지께서 밤에 안방에서 “신학교는 안 된다”고 반대하는 이야기를 계속 하셨고 그러다 밤 12시가 넘어서 잠이 드셔야 내 방으로 올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장 힘든 날이 찾아왔다. 아들이 아버지 말을 듣지 않는다고 속상하셨던 아버지가 그날도 술을 드시고 집에 오셨는데, 또 같은 이야기를 하셨다.

 

“신학교 가지 마라”’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아버지 말씀을 다 따랐지만, 이번만큼은 저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저는 신학교 가서 목사가 되겠습니다. 이것이 제가 가야 할 길입니다.”

 

이 말에 아버지는 “그럼 집 나가라! 아버지 말을 안 듣는 자식은 자식이 아니다.” 결국 그 추운 겨울밤 10시 넘어서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집에서 나오는데 얼마나 마음이 힘든지...

 

“하나님, 이게 뭡니까? 하나님 뜻에 순종하려다가 아버지 공경을 어기는 이것은 무엇입니까? 왜 하나님 뜻대로 살려하는데 순적한 길을 주시지 않습니까? 저 이제 교회도 없는 강원도 깊은 산골로 들어가 세상 인연 끊고 거기서 살겠습니다.”

 

청량리역에서 강원도로 출발하는 중앙선 기차를 타기 위해 동네 전철역으로 나갔다.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전철역에 가서 표를 끊으려 하는데 누가 뒤에서 어깨를 잡았다. 뒤돌아보니 어머니였다. 아들이 집 나간 것을 아시고 어머니가 따라 나오신 것이었다.

 

“얘야, 아버지가 술김에 그런 것이니 너 이러지 마라.”

 

“아녜요 어머니, 자식도 아니라는데 저도 아버지와 같이 있을 수 없어요.”

 

그렇게 옥신각신 하는 사이 어머니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그럼 가더라도 추운 날씨에 따끈한 차라도 마시고 가라”면서 전철역에 있는 홍익다방에 들어가게 되었다.

 

거기서 차를 마시면서 어머니는 “너 밤늦은 시간에 가봤자 기차도 없을 것이니 내일 아침 떠나라. 그리고 잠은 교회 가서 자라”고하셨다.

 

당시 집사였던 어머니의 설득에 교회로 가게 되었고 어머니는 교회에서 철야하며 기도하시고 그 소리를 들으며 잠을 잤다. 다음날, 교회를 나와 어머님이 뜨끈한 국밥을 먹고 가라며 아침 일찍 여는 도가니탕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거기서 밥을 먹으며, “얘야, 이 추운 겨울에 어디서 농사를 지을 수가 있겠니? 그러지 말고 엄마가 아는 기도원이 있는데 거기 가서 기도해라.”

 

그 말씀에 설득이 되어 경기도에 있는 산 속 깊은 기도원으로 가게 되었고 마침 금식기도원이어서 금식기도를 하게 되었다.

 

금식을 한 지 이틀째 되던 날 오전 집회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왔는데 그 전날 내 옆에서 주무시던 아버지 또래의 한 신사가 “학생, 어떻게 기도원에 왔어?”라고 물으셨다. 그렇게 대화가 시작되었고 기도원에 오게 된 그때까지의 상황을 쭉 말씀드렸다.

 

그러자 그분은 자신이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이고 내가 들어가려던 신학대학의 선교대학원을 장로로서 마쳤다고 하면서, 그분의 두 아들은 신학교를 가라고 했는데 공대를 나왔다며 아버지가 반대하는 신학교를 가려다가 쫓겨나기까지 했다는 이야기에 너무 감격해 하셨다.

 

바로 다음날 아침 집회를 마치고 그분이 말씀하셨다.

 

“너의 집으로 가자. 내가 너의 아버지를 설득하겠다. 지금은 아버지가 몰라서 그렇지 나중에는 너의 이 선택을 아버지도 기뻐하실 날이 올 것이다.”

 

그날 저녁 집회를 마치고 삼 일 금식이 마치는 늦은 밤에 기도원 뒤편의 산길을 혼자 올랐다. 영하의 추운 날씨 가운데 하늘은 청명하고 캄캄한 밤하늘에 은하수의 별들이 셀 수 없이 펼쳐져 있었다.

 

‘하나님, 내일 집으로 내려갑니다. 여기서 만나게 하신 장로님과 함께 내려가오니 주님 선하신 길로 인도하여 주세요’라고 기도하는데 마음에 확 오는 깨달음이 왔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지금도 너와 함께 하고 있다’라는 확신이 강하게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는 이렇게 피신해서 여기에 왔고 세상 사람들은 내가 여기 있는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은 이 첩첩산중 산골에서도 나와 함께 하시고 이 장로님을 여기서 만나게 하신 거구나’ 그때 나도 모르게 찬양이 흘러나왔다. 그것이 바로 시편 8편의 찬양이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손가락으로 지으신 주의 하늘과 주가 베풀어 두신 달과 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며 이 대자연 속에 모래알갱이보다도 더 작은 자, 저 많은 별들 속에 섞여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는 자를 이렇게 살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올려드리는데 차가운 기운이 더 이상 춥게 느껴지지 않고 가슴이 시원해지고 웅장해지면서 우주 어느 곳에서도 역사하시는 광대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행복한 밤이었다.

 

다음날, 금식 중던 장로님과 함께 집으로 갔다. 아버지는 한번 쓱 보시더니 아무 말 없이 안방으로 들어가셨고 그 틈을 타서 장로님이 아버님 뒤를 따라 들어갔다.

 

그 후로 2시간의 시간이 흘렀고, 아버님이 나오면서 말씀하셨다.

 

“그래, 신학교 가라.”

 

그 후 3월에 신학교를 입학하게 되었고 아버지는 4월부터 교회에 출석하셨다. 처음 교회에 나오면서 하신 말씀이 “아들이 목사가 되는데 아버지가 교회 안 나가면 되겠니?”라고 하셨다.

 

그 뒤로 신학교와 대학원을 나오고 시골에서 4년을 총각 목회를 할 때도 서울에서 내려와 같이 사시며 항상 후원자가 되어 주셨다. 그 후 아버지는 내가 호주에 온 이듬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지금도 자연을 보면 당신의 피조물과 함께 하시는, 광대하시지만 너무나 섬세하고 세밀하신 하나님의 임재와 숨결을 느끼게 된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원영훈|케언즈한인연합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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