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캄보디아, 희망의 씨앗이 자란다

글/김명동 사진/권순형 | 입력 : 2023/04/17 [09:43]

▲ 중환자실 간호사들이 미국에서 온 간호사 최기주 선교사와 큐티를 하고 있다.©크리스찬리뷰     

 

▲ 기도하는 최기주 선교사.©크리스찬리뷰     

 

헤브론 모든 가족은 오전 7시 30분에 큐티를 한다. 그들은 큐티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모든 일의 중심에 말씀이 놓여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큐티는 의사와 간호사, 스태프 등 직군별로 모인다. 큐티 후에는 각자 업무자리로 돌아간다. 의사들은 병실이 있는 2층에서 회진을 한다. 본격 진료는 9시부터다. 정오가 되면 오전 진료가 끝난다. 환자들은 흩어져 식사를 해결한다. 전 직원이 1층 로비로 모인다. 기도회로 오전 진료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기도’를 뜻하는 '아키스탄’이란 말이 울려 퍼진다. 크메르어로 찬양하고 기도를 한다. 현지인을 위한 배려다. 짧은 말씀이나 광고를 하고 기도회를 마친다.

 

오후 진료는 낮 2시부터다. 3시간 진료 후 로비에 모여 찬양과 기도로 하루를 마감한다.

 

사랑요? 헤브론이죠

 

식당은 점심식사 준비가 한창이다. 식사 지휘는 매니저 뚜잇((Nol Sreytouch)이다. 뚜잇은 시장에 나가 직접 반찬거리들을 구입하여, 주방사 꾼띠어(Nol Chanthan)와 피사이(Sovann Chan Pisey) 함께 정성스런 식사를 만든다. 이들은 병원이 세워지면서부터 15년 동안 함께 자리를 지켰다.

 

▲ 안경점 직원들이 삐셋 전도사와 큐티를 하며 찬양을 하고 있다. (왼쪽 위). 아래는 병실 간호사들의 큐티 장면. 큐티를 마친 후 입원실을 순회하며 전도하는 삐셋 전도사(위)와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크리스찬리뷰     

 

▲ 한글 공부하는 뚜잇.©크리스찬리뷰     

 

▲ 한글을 가르치고 있는 최수일 선교사(2015. 2) ©크리스찬리뷰

 

이곳 선교사들의 생활은 모두 각자가 해결해야 하는 자비량 선교사들이다. 그렇지만 점심만큼은 모든 선교사들에게 제공된다. 일시 방문자에게는 아침, 점심까지 제공해 준다. 물론 헤브론의료원내 숙소동에서 머물 경우 숙박비며 식사비를 지불해야 하는데 대부분 돌아갈 때 헌금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점심식사를 하러갔다. 주방에서 모두들 기자를 반긴다. 김치와 무국, 닭튀김, 야채 화려하진 않지만 아기자기하고, 소박하나 품위 있는 식탁이다. 이곳 선교사들에게 하루 한 끼라도 골고루 영양을 섭취하도록 준비한다는 정성어린 배려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모두 이구동성으로 박정희 선교사(71)에게 혼나면서 배운 솜씨라고 말했다.

 

▲ 헤브론의료원 주방팀 왼쪽부터 박정희 선교사, 피사이(3번째), 한혜숙 선교사, 꾼띠어, 오른쪽 뚜잇 (2015. 2) ©크리스찬리뷰     

 

▲ 최근 촬영한 사진이다.(2013. 2) 오른쪽 뚜잇, 꾼띠어(가운데).©크리스찬리뷰     

 

- 헤브론의료원에서 어떤 계기로 일하게 되었나요?

 

“저는 원래 통역을 배우고 싶었어요. 하지만 당시에는 캄보디아에서 한국어 통역을 배우기 어려웠어요. 마침 한국인 선교사님이 계신 헤브론의료원에서 사람을 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지원하게 되었어요.” (뚜잇)

 

“원래 한국인 교회에서 일했어요. 그 교회에서 김우정 원장님의 사모이신 박정희 선교사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헤브론의료원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꾼띠어)

 

“헤브론의료원이 궁금했어요. 이렇게 많은 환자들을 무료로 돌보고 있는데 다른 직장하고 다른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지원하게 되었어요.” (피사이)

 

- 헤브론의료원에서 일하면서 변화된 것이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믿게 됐다는 거에요. 그리고 누군가를 이해하는 방법을 알게 된 것 같아요. 초기에 선교사님들과 일하며 문화차이를 크게 겪었어요. 누군가에게 혼나본 적이 없는데 혼이 나면서 일을 배우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왜 그 과정이 필요했는지 알 수 있게 되었어요.

 

그것이 하나의 관심이고 사랑이었던 거에요.”(뚜잇)

 

“저도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 큰 변화에요. 하나님을 알기 전, 제 삶은 슬픔으로 가득했어요. 아버지는 킬링필드 시절에 돌아가시고, 하나뿐인 오빠는 소년병으로 죽고 언니는 공부를 잘한다고 하여 죽임을 당했어요. 지금까지 헤브론과 함께 이겨내고 있습니다.” (꾼띠어)

 

“사랑 얘기를 하는데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사랑은 나누는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헤브론의료원이 하는 것처럼요.” (뚜잇)

 

“이해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상대를 이해하고 품어주는 거요.” (꾼띠어)

 

“사랑요? 헤브론의료원요.” (피사이)

 

이들은 “사랑을 알 수 있도록 손잡고 기도해주며 요리를 알려주었던 박정희, 한혜숙 선교사, 한국어를 가르쳐 주신 최수일 선교사께 감사드린다”며 “보고 싶다. 우리도 사랑을 베풀며 살겠다.”고 말했다.

 

깜퐁 스프 썽까에 마을을 가다

 

점심식사 후 우리 일행은 헤브론의료원이 개척한 교회를 방문하기로 하고 길을 떠났다. 깜퐁 스프 썽까에 마을은 차로 2시간 남짓 거리에 있다. 캄보디아 특유의 폭염이 우리를 감싸는 가운데 삐셋 전도사가 운전을 하며 길잡이가 돼 주었다.

 

한순간 잘 달리나싶더니 그것도 잠깐, 길이 막히기 시작했다. 차가 방향을 틀자 ‘덜컹’ 충격이 왔다.

 

▲ 석가모니의 열반일을 맞아 행진하는 캄보디아 불자들. 김신일 목사(왼쪽 아래)가 행진 대열과 함께 걷고 있으며, 길가에는 소떼들이 줄지어 다닌다.©크리스찬리뷰     

 

“어머나 저것 봐! 역주행!”

 

김승기 집사가 소리쳤다. 그것은 캄보디아에 처음 온 김승기 집사가 이곳에 머물 동안 내내 보게 될 풍경과의 첫 만남이었다.

 

잠시 후, 다시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로는 경적이 끊이지 않는다. 1시간쯤 달렸을까, 소떼들이 주인이 있는지 없는지 무덤덤하게 길을 점령하고 있다. 오토바이와 차와 사람들이 눈치를 보며 소를 피해 가느라 북새통이 벌어져도 소는 느긋하게 대로상에서 오물을 배설한다.

 

소떼, 우마차, 자전거, 오토바이, 자가용, 트럭, 다양한 이동 수단이 황야를 달리는 무법자처럼 경적을 울리며 다닌다. 그나마 몇 년 전 비포장이던 도로가 포장도로로 바뀌었다. 그러니 언젠가는 이 길도 우마차 자전거가 사라질 것이다.

 

서울을 달리던 트럭이 지나간다. 트럭에 쓰여 있는 건 분명한 한글. ‘한진 택배’다. 왜 한글을 지우지 않고 그냥 뒀을까? 지우는데 드는 비용이 아까워서였을까. 한 현지인의 설명에 따르면 단지 비용 때문은 아니었다.

 

캄보디아에서도 ‘문화 한류’가 몰아치고 있어 한글이 쓰여 있는 자동차를 더 좋아한다는 것이다. 예전 우리나라에서도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영어 문구가 쓰여 있는 옷을 입고 자랑스러워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한글이 해외에서 이와 같은 대접을 받고 있는 걸 보니 왠지 뿌듯했다.

 

한참을 달리더니 차가 또 멈췄다. 불교신자들이 깃발을 앞세우고 북을 치며 행진하고 있다. 반짝거리는 눈빛의 학생들이 그 뒤를 따랐다.

 

삐셋 전도사에게 물었다.

 

“무슨 축제지요?”

 

“모르겠는데.”

 

"여기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잖아요? 몰라요?

 

“몰라. 왜냐 하면 여기는 불교행사가 너무 많아요.”

 

삐셋 전도사가 완벽한 한국어는 아니지만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가면서 능숙하게 농담도 하는 바람에 한바탕 웃음이 빵 터졌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석가모니의 열반을 기리는 행사라 했다. 그러고 보니 ‘수많은 불교 축제가 캄보디아를 가난하게 만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만큼 캄보디아인들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그리고 사후에도 불교 안에서 살아간다.

 

사찰이 마을의 중심에 위치하고 결혼, 장례 등의 풍습이나 축제도 역시 불교식으로 하고 있다.

 

깜뽕 스프 썽까에 마을에 들어섰다. 길이 붉다. 산도 없이 펼쳐진 들녘. 마을길은 좁았으나 더없이 다정하고 재미있었다.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는 200여 가구의 이 마을은 1970년대 한국 농촌 모습이다.

 

이 마을 주변으로 20여 개의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웃음소리와 한숨소리까지를 다 알만큼 정다운 크기의 마을, 그래서 전원은 하나님이 만드신 솜씨를 감사하며 가꾸는 곳이고, 대도시는 하나님의 솜씨를 걷어내고 사람이 멋대로 만든 곳이라 했던가.

 

기자로서는 이 마을 방문이 두 번째다.

 

▲ 015년에 만났던 9살 어린이 체첸 군이 심장수술을 받은 후 건강하게 성장하여 17세 소년으로 김명동 목사와 다시 만났다.©크리스찬리뷰     

 

희망이 보이지 않던 이 마을에 헤브론의료원 스태프들이 처음 방문하게 된 것은 10년 전이다. 심장병 어린이를 위해 홍보 차 이곳에 들렸다가 당시 9살인 체첸(Cheat Chin)이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치명적일 수 있는 체첸을 한국으로 보내 무료 심장수술을 진행해 새 생명을 찾았다. 그래서일까. 이 마을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듯 보였다.

 

우리 일행은 더 이상 차가 갈 수 없는 곳에서 내렸다. 들쭉날쭉한 돌담을 돌고 돌아 어느 한 작은 집에 이르렀을 때 깍까다(29) 전도사가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교회 성도인 깐 킴(41) 집사의 집이라 했다. 현재 이 교회를 맡아 사역하고 있는 깍까다 전도사는 캄보디아대학교와 캄보디아장로교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 브론 의료원 현지인 교회 담임을 맡고 있는 삐셋 전도사와 깜뽕 스프 썽까 마을 교회 담임 깍까다 전도사. 깍까다 전도사는 삐셋 전도사를 자신의 멘토라고 소개했다. ©크리스찬리뷰     

 

헤브론의료원은 5년 전, 이 마을에 교회를 개척하기로 하고 헤브론의료원에서 사역하고 있던 리닌(42) 전도사를 통해 주일예배를 드리도록 했다. 캄보디아 대학교와 캄보디아장로교신학대학교를 졸업한 리닌 전도사는 박사 과정을 위해 이 교회를 삐셋 전도사에게 이양했고, 삐셋 전도사가 헤브론교회에서 사역함에 따라 깍까다 전도사가 맡아 순조롭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현재 교인은 40여 명으로 주일 오전에는 아이들 예배를 오후에는 어른들 예배를 드리고 있다.

 

깍까다 전도사는 아버지가 중국계인 불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가 처음 교회에 나가게 된 것은 5살 무렵, 스와이링(Svay Rieng) 지역에 한국인 선교사가 개척한 교회였다.

 

▲ 깜뽕 스프 썽까 마을의 유일한 세례교인 깐 킴 집사 댁에서 인터뷰를 가졌다(왼쪽 위). 깐 킴 집사와 깍까다 전도사. 아래 사진은 예배 장면.©크리스찬리뷰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녔는데 그땐 아이들과 함께 놀이를 하는 것이 좋았어요. 매일 집에 혼자 남아 외롭게 지냈기 때문에 아이들 만나는 것이 기뻤고 교회가 놀이터였습니다. 그러다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교회를 멀리하게 되었지요.

 

그런 후 12살에 교회를 다시 나가기 시작했는데 고등학교 졸업 후 선교사님이 저를 찾아와 공부를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그러시는 거에요. 선교사님은 저를 무척 사랑해주셨는데 선교사님의 도움으로 대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졸업 후 믿음이 생기자 본격적인 신학의 길을 걷게 됐고요.”

 

깍까다 전도사는 “신학은 공부했지만 목사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다”며 “그런데 선교사님이 시험장까지 나를 끌고 가 시험을 볼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학교 채플시간이었어요. 목사님 설교를 듣는데 내 심장이 뜨거워지는 거에요. 그러면서 나를 위해 십자가의 형틀에 매달렸다는 예수님의 삶이 떠올라 한없이 울었어요. 이때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지요.”

 

거룩한 하나님의 터치였다.

 

깍까다 전도사는 조용하면서도 다부진 모습이었다. 신앙에 대해 얘기할 때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고 눈이 반짝였다.

 

“여기 삐셋 전도사는 어떤 분인가요?”

 

“나의 멘토에요. 학교에서 만났는데 저한테 힘을 주고 용기도 주고요. 앞으로 함께 교제하며 비전을 공유하면서 캄보디아의 복음화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깍까다 전도사는 “한국 교회에 감사하고 한국 교회의 영적 수준을 본받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내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 깜뽕 스프 썽까 마을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마친 후 전 교인 기념촬영을 가졌다.©크리스찬리뷰    

 

유일한 세례 교인 ‘깐 킴 집사’

 

깍까다 전도사는 “마을에서 제대로 믿는 자는 오직 한 분”이라며 ‘세례자 1호’ 깐 킴 집사를 소개했다.

 

“이 마을에서 몇 년 살았나요?”

 

“여기서 태어났어요.”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까?”

 

“제 딸이 먼저 교회를 다녔는데 계속 나한테 4년 동안 전도를 했어요. 그래서 예수는 안 믿지만 계속 교회에 다니다보니까 말씀도 듣게 되고요. 그런데 예수님의 기적이 일어난 거에요. 무슨 기적이냐면 제 딸이 예수 믿고 난 후부터는 성격이 달라졌어요. 겸손하고 순종하는 아이가 됐어요.

 

예수님이 누구시기에 저렇게 아이가 변할까, 어떤 분인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삐셋 전도사님이 설교말씀을 전하시는데 열심히 듣고 또 듣고 계속 들었어요. 그런데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이 사실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하시는데 내 마음속에서 좀 더 알고 싶어지는 거에요.

 

그러면서 계속 관심을 가지고 말씀을 듣다가 어떻게 하면 나의 죄를 용서 받을 수 있을까, 기도하는데 눈물이 났어요. 그러면서 예수님을 영접했지요.”

 

“언제 세례를 받았나요?”

 

“2021년이니까 2년 됐네요.”

 

“그러니까 깐 킴 집사님이 이 동네에서 유일하게 세례를 받으신 분이네요?”

 

“그래요. 이 마을에 한 8백여 명이 살고 있는데 세례를 받고나니까 배신자라며 손가락질하고 핍박을 했어요. 나도 예수 믿기 전에는 똑같이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한 사람입니다.”

 

“여기 마을 사람은 주로 무슨 일을 하면서 생활하나요?”

 

“주로 농사짓고 공장 다니고 팜 트리로 설탕도 만들고요.”

 

“자녀는 몇 명인가요?”

 

“두 명인데 큰 딸이 지금 23살이고 남편은 아직 예수를 안 믿는데 계속 기도하며 전도하고 있습니다.”

 

“헤브론의료원에서 치료받은 적 있나요?”

 

“있어요. 참 좋은 병원입니다. 복음도 전하잖아요.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죠. 깍까다 전도사님, 삐셋 전도사님을 이 동네로 보내주셨잖아요.”

 

깐 킴 집사는 어떤 일도 척척 해낼 것 같은 복스러운 인상이었다. 그녀는 세례 받던 그날을 회상하는지 즐겁게 웃었다.

 

오후 5시가 되어가자 이웃들이 몰려든다. 아이들이 맨 먼저 다가서고, 여인네들도 이어 쭈뼛쭈뼛 나선다. 예배는 사방이 탁 트인 선교관에서 진행됐다. 기타에 맞춰 찬양하고 박수치고 깔깔대고 은혜로 다가왔다. 그리고 아아, 세상에! 아이들이 기도할 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험한 삶을 버텨나가는 주민들. 그래도 예배가 있고, 심방이 있다. 오늘은 손님 덕에 선물까지 받는 날, 아이들 표정이 행복하기만 하다. 헤브론의료원은 이 지역에 교회당 부지를 구입했다.

 

예배가 끝난 후 체첸(18)을 만났다. 7년 만이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브론의료원의 도움으로 심장수술을 받은 소년이 어느덧 건장한 청년의 모습으로 성장했다. 그를 끌어안자 참으로 이상한 감동이 가슴 속에서 복받쳐 오르는 것이었다. 기도의 마음은 인종이나 나라를 초월해 하나가 되는 것일까.

 

체첸은 어머니와 둘이 살고 있었다. 코코넛을 판매하는 어머니를 도와 야자나무를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의 꿈은 에어컨 수리 기술자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는 것이다.

 

▲ 심장수술을 받고 기적적으로 생명을 건진 쓰레이 빗을 중환자실부터 퇴원하여 학교에 입학하기 까지 2년여에 걸쳐 시리즈 사진으로 편집했다.(2015-2016) ©크리스찬리뷰     

 

▲ 헤브론병원에서 심장수술을 받은 쓰레이 빗이 17세 소녀로 건강하게 성장하여 본지 권 발행인과 7년만에 다시 만났다.(2023. 2) ©크리스찬리뷰     

 

소녀 ‘쓰레이 빗’

 

우리 일행이 마을을 떠난 것은 해질 무렵이었다. 이 마을에는 심장수술을 받고 기적적으로 생명을 건진 소녀 ‘쓰레이 빗’도 살고 있었다.

 

“이 근방인데?”하며 차를 멈춰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골목길에서 한 소녀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제 쓰레이 빗 아냐?”

 

권순형 발행인이 그녀를 쳐다보면서 혼잣말로 내뱉었다. 천사도 흠모할 만한 미소를 가진 소녀, 쓰레이 빗(17)이었다. 그녀는 수줍고도 앳된 표정으로 권 발행인을 안을 듯이 반갑게 맞이했다. 권 발행인도 가족을 만난 것처럼 반가워했다. 쓰레이 빗과 권순형 발행인과는 아주 특별한 사연이 있다.

 

2015년 8월 3일 권순형 발행인이 ‘헤브론병원 24시’ 촬영을 위해 세 번째로 헤브론의료원을 찾았을 때다. 부산대 양산병원 심장수술팀이 8명의 어린이들을 수술하고 8월 1일 귀국했다. 그 중 9살 된 쓰레이 빗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모든 의료진들과 한국의 후원자들이 기도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엑스레이를 촬영해 보니 폐에 물이차서 가슴이 하얗게만 보일 뿐 전혀 회복될 수 없을 정도의 상태라 했다. 숨쉬기도 힘들어 산소호흡기에 의존하고 있는 쓰레이 빗을 애타게 바라보는 엄마 위치카의 마음도 타들어갔다. 김우정 원장을 비롯한 의료진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아이를 살릴 수 있는 길은 오직 기도와 하나님의 기적뿐인 것을 믿고 있었다. 모두 손을 잡고 쓰레이 빗의 건강과 빠른 회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다음날 다시 촬영한 엑스레이 필름을 보니 상태가 호전됐다. 간호사들이 산소 호흡기를 끌고 아이는 링거대를 잡고 한 걸음씩 걸음마를 시도했으나 아이는 몇 발짝 걷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이날 몇 차례 걷기를 시도하고 가벼운 식사도 할 수 있었는데 다음 날에는 놀라울 정도로 건강상태가 호전되어 의료진들이 모두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났다”며 환호했다.

 

이후 쓰레이 빗은 놀라울 정도로 건강이 회복되어 퇴원했는데 권 발행인은 10일간 지켜본 쓰레이 빗의 투병생활 과정을 카메라 르포로 소개했던 것이다.

 

쓰레이 빗은 7월 26일 입원, 30일 수술, 8월 18일 퇴원하여 23일간 입원해 있었는데, 입원비와 수술비 등의 경비가 최소 US $20,000 이상 소요되었으나 $100을 내고 퇴원했다.

 

권 발행인은 준비한 선물을 주면서 쓰레이 빗의 등을 두드렸다.

 

“쭘 리업 리어”(안녕히 가세요)

 

쓰레이 빗의 마지막 말에 콧등이 시큰하면서 가슴이 떨렸다, 차는 천천히 그 소녀를 등 뒤로 밀어냈다. 돌아보니 쓰레이 빗이 아득하게 손사래를 쳤다.

 

우리도 쓰레이 빗과 같은 기적을 경험하며 살았다. 1906년 무렵 부모 없이 버려진 동상 걸린 소녀 옥분이는 미국 의료선교사들에 의해 목숨을 건졌다. 옥분이는 두 손과 다리 한 쪽을 잘라내고 목발을 짚은 채였지만 “두 손 없고 발도 하나만 있는 나 옥분이도 예수님이 사랑한다고 말했어요”라고 고백했다.

 

미네르바 구타펠(Miss Minerva L. Guthapfel) 선교사 병원일지 기록이다.

 

헤브론의료원은 2008년 백병원 김용인 교수의 수술로, 어려운 환경에서 힘들게 살아오던 12세의 싸비(Savy Noem)가 건강을 되찾게 되면서 심장수술이 시작되었다. 이후에도 몇 차례 더 백병원을 통해 수술이 진행되다가 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분당 서울대병원, 전북대병원 등을 통해 38명의 어린이들이 건강을 되찾게 되었다.

 

그러나 심장수술을 받기 위해 아이들이 한국으로 가는 것은 비용도 많이 들뿐만 아니라 말이 통하지 않고 음식도 다르고 너무나 다른 기후 때문에 심장수술을 시작하기도 전에 받아야하는 스트레스가 많은 점들을 고려하여 지난 2014년 8월, 헤브론의료원에 소아심장센터를 개소했다.

 

기자가 캄보디아에 관심 한 번 가져본 게 언제던가.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 아래 이 땅을 밟았기에 이제 마음이 동할 때 기도할 수 있는 애정이 생겼다. 모든 나라와 선교지가 그렇다. 같이 밥 한 그릇 나눈 정으로, 어려움을 나눈 위로로, 희망을 공유하는 기쁨으로 현지 상황을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그곳을 품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비행기로 전 세계 어디든 하루 만에 도착 가능한 일일 생활권에서 사는 우리들은 이제 “내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내 이웃의 범주를 다시 고민해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두가 형제요, 이웃이다.〠 <계속>

 

김명동|본지 편집인

권순형|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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