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에 되어질 일들, 종말론(終末論) VI

주경식/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3/04/17 [09:56]

 

▲ 미켈란젤로의최후의 심판.     

 

죽은 자의 부활

 

지난 번에 살펴본대로, 성경은 분명하게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죽은 자들이 부활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바울 서신을 보면 부활을 영적으로만 믿고 있던 사람들도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지만 그리스도의 부활은 분명하게 우리 육체의 구속을 포함하는 것이다(롬 8:28, 고전 6:13-20, 15:35-49).

 

특별히 고린도전서 15장을 통해 바울은 부활시의 몸과 현재 지상의 몸은 동일하다고 선포한다.

 

부활의 시기에 대해서 성경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다시 말해 최후심판 바로 직전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요 5:27-29, 6:39-40, 44, 54, 11:24, 고전 15:23, 빌 3:20-21, 계 20:11-15).

 

이에 반해 전천년설을 주장하는 자들은 두 번의 부활을 주장하는데 한 번은 그리스도의 재림시 의로운자들의 부활이 먼저이고 다른 하나는 천년 왕국이 끝난 후 불의한 자들의 부활을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모두 한순간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단 12:2, 요 5:28-29, 행 24:15). 그리고 이러한 부활의 교리는 심판의 교리와 연결되어 있다.

 

성경은 분명하게 그리스도께서 심판장이 되셔서 선악 간의 심판이 집행될 것을 경고하고 있다(마 25: 31-32, 요 5:27, 행 10:42, 17:31, 빌 2:10, 딤전 4:1). 천사들은 그리스도의 심판을 보조할 것이고(마13:41-42, 24:31, 25:31), 성도들도 그리스도의 심판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고전 6:2-3, 계 20:4).

 

부활의 삶

 

신자들은 예배시 사도신경을 고백한다. 그리고 신앙고백의 내용 중 “우리는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한다. 즉 ‘부활’을 믿는 자들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고백이다.

 

인간의 타락으로 죽음이 이 땅에 들어왔다. 그러므로 죽음은 창조의 삶에 침투된 낯선 반규범적 침입자이다. 하지만 부활은 최종적으로 모든 사물이 정상 상태로 회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부활을 통해서 우리의 시야는 중간상태의 어렴풋한 전망에서 훨씬 뚜렷한 미래로 향하게 된다.

 

부활한 세상은 매우 친밀하고 이 땅에 새로운 희망을 제공한다. “의가 거하는 새로운 세상”(벧후 3:13)에서 “내 육체 안에서 내가 하나님을 뵈옵나이다”(욥 19:26) 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종말은 분명 극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영화된 몸은”은 무덤에서부터 올라올 것이다(빌 3:21). 불로 연단된(벧후 3:10-13) 새로워진 세상이 나타날 것이다.

 

성경은 계속해서 부활된 삷을 ‘고통이 없는 몸’, ‘슬픔의 눈물이 없는 눈’, ‘부패한 영향이 없는 생명’등으로 묘사한다. 여기서 부활의 삶을 ‘…… 이 아닌’ 등 부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인간이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세상이기 때문에 우리의 비전을 넘어서는 제한된 믿음의 표현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불완전이 다 지나간’ 후에(고전 13:10) ‘완전이 다가올 것’을 기대하는데, 그렇게 기대하는 것은 보기 때문이 아니라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실 “우리가 무엇이 될 지를” 확실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요일3:2)을 우리가 믿음으로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진 부활에 대한 소망은 우리가 가진 다른 소망과 같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바울은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라고 말한다(고전 15:16). 그러므로 칼빈은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인간의 마음이 그것을 이해하기는 몹씨 힘들다”고 전한다.

 

또한 “몸이 썩어 사라진 뒤에 때가 되면 다시 몸이 부활한다는 것을 믿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칼빈은 “그리스도께서는 여러 번 또 여러 가지 모양으로 그것이 우리에게 입증되도록 하신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기독교 강요 III, 25, 3).

 

우리의 부활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음”은 그리스도의 “이미 일어난” 부활(롬 8:11, 고전 6:14, 고후 4:14)이라는 강력한 실재에 확실하게 의존하고 있다. 우리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뿌리내리고 있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을 확실하게 증거해 준다. 또한 신자의 삶 가운데서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는 우리의 미래적 부활의 삶이 종말론적으로 이미 시작된 것을 의미하고 있다(고후 3:18, 4:10-11, 빌 3:10-11).

 

마지막 심판

 

성경의 초두, 원래의 창조세계부터 마지막 새로워진 창조세계까지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의 강조점은 늘 동일하다.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암 5:24). 태초에 창조된 질서는 “보시기에 좋았더라”였다. 하지만 죄가 들어왔고, 죄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의로운 피”가 흘려지고 말았다(히11:4). 그러므로 구속사를 통해 선지자들은 항상 “공의를 행하라”(미 6:8)라고 외쳤던 것이다.

 

때가 차매 그리스도께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를” 축복하셨다(마5:6). 결국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정의롭게 심판하실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자’들을 영화롭게 하실 것이지만, ‘주 예수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진노를 내리실 것이다’(살후 1:5-8).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인류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궁극적인 선언이 될 것이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굽어진 것은 마침내 곧아질 것이고, 보응을 받지 않은 잘못도 공의로 심판을 받을 것이며, 인간에 대해 해결되지 못한 범죄들, 하나님의 이름을 경멸했던 것들,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에 대한 무자비한 살육, 가난하고 압제 받은 자들의 울부짖음에 대한 무관심 등 모든 악들이 심판 받고 해결될 것이다.

 

이 종말론적 법정으로부터는 오직 두 갈래 길, 즉 ‘죽음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과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만이 있을 뿐이다.〠 <계속>

 

주경식|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호주비전국제대학 Director, ACC(호주기독교대학) 교수

▲ 주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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