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마리아 대성당 재건에 힘쓴 ‘존 휴스’

John Hughes (1825-1885) grocer, property developer and Catholic benefactor

글/정지수 사진/권순형 | 입력 : 2023/06/26 [12:23]

▲ 시드니 중심에 웅장하게 자리잡고 있는 성모 마리아 대성당(St. Mary’s Cathedral) 전경.     

 

▲ 가톨릭교회에서 충성스러운 교인으로 활동했던 존 휴스(1872년경). 그가 이룬 업적들 중에 가장 위대한 업적은 시드니 시내에 위치한 성모 마리아 대성당을 재건축 한 것이다 

 

존 휴스 (John Hughes)는 아일랜드에서 1825년 6월 24일에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식료품 가게를 운영했고 존 휴스를 포함 총 6명의 자녀를 낳았다.

 

존 휴스가 15살이 되던 해에 그의 부모는 아일랜드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호주로 이민을 가기로 결정했다. 수개월 간의 긴 항해를 마친 그의 가족은 1840년 1월 15일에 시드니 항에 도착했다.

 

정착 초기 그의 가족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지만, 어려움을 이겨내고 호주에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가톨릭교회의 교인이었던 그의 가족들은 정착 초기에 경험하는 어려움들을 믿음으로 이겨냈다.

 

시드니에 도착한 존 휴스는 시드니 칼리지(Sydney College)에서 공부했다. 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 한 식료품점의 견습생이 되어 일했다. 식료품 가게의 일을 배운 후 그는 시드니 중심가인 조지 스트리트 (George St.)에 자리를 얻어 동업자와 함께 식료품 가게를 열었다.

 

1851년에는 시드니의 마켓 스트리트(Market Street)와 조지스트리트(George Street)의 코너에 자신의 식료품 가게를 열어 사업을 확장시켜 나갔다. 그의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1856년 7월 2일, 그는 아일랜드 태생인 수산 샤키(Susan Sharkey)와 결혼해 8명의 자녀를 낳았다.

 

존 휴스는 자신이 운영하던 식료품 소매점을 1862년에 팔았다. 사업 자본금을 확보한 그는 식료품 수입 사업에 뛰어 들었다. 그는 식료품 등을 해외에서 수입해 도매로 팔았다. 그의 사업은 번창하였고, 그는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 1820년도에 세워진 성모 마리아 대성당. 1920년 경     

 

▲ 2008년도에 촬영된 성모 마리아 대성당 전경.     

 

그는 1871년에 수입 사업과 도매 사업을 정리했다. 그리고 도시에서 창고 사업을 시작했다. 또한 부동산에도 투자하기 시작했다. 그는 새로운 사업에서도 많은 수익을 남겼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부러워했다.

 

존 휴스는 지역사회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알려졌을 뿐만 아니라 덕망과 신뢰를 쌓아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 또한 1867년에는 치안판사로 임명되어 시드니 법원에서 활동했다. 그는 수년 동안 자신이 맡은 치안판사의 임무를 충성스럽게 이행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가톨릭교회에서 충성스러운 교인으로 활동했다. 그는 가톨릭교회의 자선 단체에 아낌없이 재정적 지원을 했고, 많은 사람들을 자선 사업에 동참시켰다. 그가 이룬 업적들 중에 가장 위대한 업적은 시드니 시내에 위치한 성모 마리아 대성당(St. Mary’s Cathedral)을 재건축 한 것이다.

 

성모 마리아 대성당은 1820년 존 테리(John Therry) 신부에 의해 지어지기 시작했다. 존 태리 신부는 주지사의 허락을 받고 죄수 막사와 마을에서 가까운 곳에 터를 잡고 예배당을 건축하기 시작했다. 예배당과 노회 사무실과 신학교 건물 등을 짓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1843년에 종탑이 세워졌으며, 1847년에는 대성당의 북쪽과 동쪽에 토지를 추가로 기증받아 부속건물들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성모 마리아 대성당은 호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대성당이 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1865년 6월 29일에 발생한 화재로 인해 잿더미가 되었다. 가톨릭교회 성도들뿐만 아니라 시드니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들이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 불에 탄 것을 안타까워했다.

 

가톨릭교회는 성모 마리아 대성당을 재건하기로 결정하고 설계사를 선임하고 재건축에 들어갔다. 하지만, 거대한 대성당을 재건하려면 엄청난 재정이 필요했었다.

 

가톨릭교회의 교인이었던 존 휴스는 성모 마리아 대성당 재건을 위해 많은 재산을 헌금하였고, 재건축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재정적 후원을 이끌어냈다. 그는 성모 마리아 대성당 재건축에 있어서 가장 큰 기여를 했다.

 

그의 기도와 노력으로 성모 마리아 대성당 재건축이 무사히 마무리 될 수 있었다. 성모 마리아 대성당은 1900년 9월에 정식적으로 개관했고, 1905년 공식적 미사를 통해 봉헌되었다. 그 이후에 부속건물들이 증축되었고 첨탑도 보수되었다.

 

성공적인 재건축으로 인해 성모 마리아 대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큰 영국식 고딕양식의 대성당이 되었다.

 

존 휴스가 성모 마리아 대성당 재건축에 기여한 것은 그의 가장 큰 업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외에도 그가 가톨릭교회에 기여한 것이 많다.

 

그는 예수 성심회 수녀회(Sisters of the Society of the Sacred Heart of Jesus)가 시드니로 이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가 로즈 베이(Rose Bay)에 이 수녀회가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 후원해 주었다.

 

▲ 하이드공원 분수대에서 바라 본 성모 마리아 대성당.     

 

또한 그는 엘리자베스 베이 (Elizabeth Bay)의 부지를 교회에 헌물했는데, 이 부지에는 세인트 카니스 교회 (St. Canice 's Church)가 건축되었다. 그리고 그는 시드니 리버뷰(Reverview)에 위치한 성 이그나티우스 칼리지(St. Ignatius’ College)와 울루물루(Woolloomooloo)에 위치한 성 콜럼킬 교회(St Columbkill’s Church)에 대리석 제단을 헌물하기도 했다.

 

교회 건축뿐만 아니라 장학 사업에도 관심을 가진 존 휴스는 성 이그나티우스 칼리지(St. Ignatius’ College)의 장학 사업을 위한 기금 마련에 큰 도움을 주었다. 많은 학생들이 이 장학 사업의 혜택을 받아 학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1882년 가톨릭 교황이 존 휴스의 신앙과 헌신을 알게 되어 그를 성 그레고리 기사단의 기사로 임명했다. 존 휴스는 1885년 6월 29일 그의 집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장례 미사는 성 마리아 대성당에서 진행되었고, 미사를 마친 후에 그는 웨이벌리(Waverley)에 위치한 묘지에 안장되었다.

 

존 휴스는 사회에 봉사하고 교회에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그의 삶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도전을 준다.〠

 

정지수 | 본지 영문편집위원, 캄보디아 지사장

권순형 |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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