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문화관 그리스도인은 현대 문화에 대해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III

주경식/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3/11/27 [15:22]

문화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바른 태도

 

화란의 신학자 헤르만 바빙크(H. Bavink)는 일반 은총을 받는 외방 세계가 단지 진리의 단편을 갖는 것만으로 온 진리를 다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와 같은 단편적인 것이라도 그것이 진리요 좋은 것이라고 했다. 

  

즉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에 의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의식없이 이루어진 문화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준 일반 은총을 제대로 구현하고 하나님의 선을 드러내면 우리가 향유할 수 있고 그것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세는 애굽의 모든 지혜 가운데 교육을 받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의 금과 은으로 하나님의 집을 단장하였다. 

  

솔로몬은 성전 건축을 할 때 히람의 도움을 받았으며 다니엘은 갈대아 학문의 교육을 받았다. 

  

동방에서 온 지혜자들은 아기 예수의 발 아래 그들의 선물을 예물로 바쳤다. 

  

이러한 예들은 우리가 문화의 결과나 이방 문화 속에 나타난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무조건 버리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성경에 볼지라도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 내려 오나니(약 1: 17)” 말하고 있다. 

  

현대의 저명한 기독교 학자인 프란시스 쉐퍼(F. Shaffer)는 이것을 특별히 예술에 적용하여 예술 자체가 – 그것이 종교적인 주제를 가지고 종교예식의 수단이 되지 않더라도 –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예술의 잘못은 그 존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용 방법에 있는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의 태도

  

그러면 이제 여기서 질문이 발생한다. 비기독교적 문화 속에서 사는 신자는 항상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이교 문화, 세상과의 긴장과 갈등, 투쟁의 관계에 놓이게 되는데 어떻게 그것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가? 신자라 할지라도 세상 문화와 상호 관계를 맺으며, 거기에 기여도 하고 그 문화의 어떤 것들은 수용하여 하나님의 것으로 감사히 받으며 또한 혜택을 누리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우 세심하고 주의 깊은 판단이 필요하다. 어느 한 부분의 문화가 어떻게 하나님의 일반 은총을 반영하고 있는지 아니면 인간의 죄악성과 아집이 일반 은총마저 방해하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취해야 할 일관된 태도가 무엇인가? 아레오바고에 선 바울의 태도가 우리에게 좋은 모범이 된다(행 17: 16-31).

 

  1) 바울은 아테네의 찬란한 예술적 문화적 성취에 매료된 것이 아니라 도리어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그 이면을 꿰뚫어 보았다.

 

  2) 아테네 사람의 요란한 우상숭배를 도리어 종교성이 많다고 해석하였다. 그래서 그들의 우상숭배를 도리어 복음증거의 기회로 포착했다

 

  3) 이 유명한 아레오바고의 설교에서 바울은 희랍시인의 시(詩)를 인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4) 심지어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다고까지 말함으로 그들을 긍정적으로 보아주었다

 

  5) 그러나 바울의 마음에는 분이 가득했다.

  

이방 문화를 바라보는 바울의 태도를 통해 우리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 번째는 이방 문화의 방향성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가 아니면 우상숭배나 하나님을 적대시하고 인간의 죄악을 부추기는가? 등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그 문화의 방향성과 이면을 꿰뚫어볼 줄 알아야 한다. 

  

두 번째는 바울은 그들과의 접촉점을 찾기 위해 그리스 시인의 시(문화)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로 그리스 시인의 시를 인용했다. 

  

이방 문화 또는 세상 문화라 할지라도 그 방향성이 중립적이거나, 진·선·미를 추구하고 인간의 도덕과 인간성을 고양하는 문화가 있다. 하나님의 일반은총을 드러내는 이러한 문화는 인간의 덕을 추구하고 인간의 성숙을 가져오게 하며 때로는 진리의 단편을 드러내게 한다. 

  

이러한 문화는 비그리스도인에 의해 만들어졌다 할 지라도 충분히 그리스도인들이 향유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의 긍극적 태도는 세상문화의 방향성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복음(기독교 세계관)으로 변혁해 나가야 할 사명을 주지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우리는 앞에서 세상에 대해 극단적인 두 가지 태도가 결코 성경에서 요구하는 태도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상에서 도피를 하는 것도 아니면 세상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도 모두 바른 태도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가? 성경은 결코 세상에 대하여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협소한 의미의 양자 택일을 하라고 제시하지는 않는다. 성경은 오히려 이것과 저것을 다 같이 요구한다. 

    

우리는 세상을 바라볼 때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선물로 감사히 받아야 하며 그의 영광을 위해 이것들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허락하신 문화와 세상이 어떻게 죄로 오염되어 있고 왜곡되었는지 선지자의 눈을 가지고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기독교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리차드 니버는 그의 책 <그리스도와 문화>에서 문화에 대해 5가지의 견해를 예시한다. 

  

△문화에 대립하는 그리스도 △문화에 속한 그리스도 △문화 위에 있는 그리스도 △문화와 역설적인 관계에 있는 그리스도 △문화를 변혁하는 그리스도 이다. 이 가운데 니버는 다섯 번째 모델로써 ‘문화를 변혁하는 그리스도’를 바람직한 대안으로 내놓는다.

  

문화에 대한 그리스도인으로 바른 태도는 세상에서 도피를 하든지 아니면(1번, 4번 모델) 무조건 받아들이든지(2번, 3번 모델)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문화를 그리스도를 통해 변혁 (Transformation)시키고 침투해 들어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개변(conversion) 시키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문화에 대해 가져야 할 올바른 태도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문화에 대한 바른 책임

 

그리스도인이라면 개인주의 영성과 신앙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이 세상과 문화를 바라볼 때 어떻게 이 문화가 하나님께서 원래 창조하신 아름다운 것들을 왜곡하고 사람들을 부패에 빠지게 하는지 안타까운 심정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또한 이 시대의 문화의 오염과 과오들을 깊이 통찰하고 삶의 전 영역과 정치, 경제, 사회의 전 영역에서 문화의 왕되신 그리스도의 주권 (Lordship)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열정들이 있어야 할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책임이라면 하나님을 떠나 탈선된 문화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돌려놓는 것 역시 그리스도인의 명백한 책임이기 때문이다. <계속>

 

주경식|본지 편집국장,  ACC(호주기독대학) 교수(Ph.D)

▲ 주경식     

 
광고
광고

  • 포토
  • 포토
  • 포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