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인가요 아니면 지옥인가요?

정지수/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3/12/22 [14:11]

▲ 왕립 호주 해군(HMAS)으로 캔버라에서 복무하는 동안 군복을 입은 프랭크 제너.     

 

"만약 당신이 24시간 안에 죽는다면 당신은 어디로 갈 것 같습니까? 천국인가요 아니면 지옥인가요?"  -프랭크 아서 제너(Frank Arthur Jenner)

 

프랭크 아서 제너(Frank Arthur Jenner)는 1903년 11월 2일 영국 햄프셔(Hampshire) 주 사우샘프턴(Southampton)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호텔 주인이자 전직 선장이었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제너는 반항아 기질이 강해졌다. 그래서 제너가 12살 때 그의 부모는 버릇없는 청소년들을 교육시키는 기관으로 제너를 보내 훈련받게 했다.

  

그가 14살이 되자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으로 보내졌다. 그가 탄 배가 영국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서부아프리카의 한 항구에 잠시 정박했다. 

  

그때 그는 아프리카의 해충인 체체파리(tsetse fly)에게 물려서 15일간 혼수상태에 빠져 사경을 헤맸다. 다행히 그는 회복되었지만, ‘기면증’ 진단을 받았다. 이로 인해 그는 자동차를 운전할 수 없게 되었다.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영국 해군에 입대했다. 그가 승선한 해군 함정이 미국 뉴욕을 방문했을 때 그가 문제를 일으켜서 영국 해군은 그를 강제 퇴역시켰다. 이 당시 그는 도박에 빠져 있었다. 

  

도박 게임을 위해 주사위를 던질 때마다 그는 토끼 발 뼈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고 굳게 믿으면서 주머니 속에 넣어둔 토끼 발 뼈를 만졌다. 이때부터 그는 뼈(bones)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 서큘러 키(Circular Quay) 근처에서 항해 중인 SS ORONSAY. 이 사진은 1924년에서 1939년 사이에 촬영되었다.©ANMM     

 

영국 해군에서 쫓겨난 그는 곧 미국 해군에 입대했다. 그가 24살이었을 때 그의 부대가 호주 멜번을 방문했다. 멜번에서 그는 탈영했다. 그리고 그는 제시(Jessie)를 만나 결혼했다. 그리고 호주 해군에 입대했다. 그는 호주 해군에서 복무하다가 1937년 합법적으로 제대했다.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면서 제너는 현역으로 다시 소환되었다. 기면증 때문에 그는 시드니에서 근무했는데, 주로 비밀 작전을 수행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그는 해군을 떠났다. 이후에 그는 기술 및 컨설팅 회사인 IBM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반항아 기질이 강했던 제너에게도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가 멜번 시내 콜린스 스트리트(Collins Street)를 걸어가고 있을 때 사람들에게 전도하던 남성들을 만났다. 그들은 클랜톤 형제단(Glanton Exclusive Brethren)에 속한 자들이었다. 

  

제너는 그들이 전하는 복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제너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고, 제너에게 복음을 전했다.

   

▲ 제너가 복음을 전했던 시드니 시내 조지 스트리트©ANMM     

 

집으로 돌아온 제너는 자신의 아내인 제시(Jessie)에게 자신은 지옥에 갈 죄인이므로 구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제시는 제너가 조울증에 걸렸거나 미쳤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당시 제너는 도박에 빠져 가정을 부양할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었다. 

  

제시는 어린 딸과 자신을 부양할 능력을 상실한 제너를 떠나 농장에서 일하기 위해 코로와(Corowa)로 이사했다. 그녀는 제너에게 당신이 제정신을 되찾아 도박을 끊고 살게 되기 전까지 절대로 안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제너는 제시의 형제들에게 전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복음 전도에 서투른 그는 복음을 전하다가 그들과 논쟁을 하게 되었고, 결국 그들과 주먹다짐을 하게 되었다. 제너는 영국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자신의 개종 사실을 알리고 그들도 기독교인이 될 것을 간청하는 편지를 보냈으나 아무런 응답도 받지 못했다.

  

1937년 후반에 제너의 아내 제시는 심하게 아팠다. 이때 클랜톤 형제단(Glanton Exclusive Brethren)에 속한 성도들이 그녀를 돌보아 주었다. 그녀는 그들의 돌봄과 헌신에 크게 감동했다. 

  

그리고 그들이 전해준 복음을 받아들여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해 연말 제시는 이미 기독교인이 되어있었던 제너와 재결합했다.

  

복음을 받아들여 기독교인이 된 제너는 도박을 끊었다. 그리고 열심히 회사생활을 하면서 직장동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하지만, 회사는 그가 회사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그를 해고시켰다. 

  

▲ 제너는 1953년부터 1977년 사망할 때까지 벡슬리 가스펠 홀(Bexley Gospel Hall)에 다녔다.©Adam.JWC     

 

제너가 직장을 잃어 경제적으로 힘들어지자 그의 아내 제시가 위궤양에 걸렸다. 남편의 실직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병에 걸린 것이었다. 제시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그들은 친척집에서 살다가 제시가 회복된 후 돌아왔다.

  

복음을 받아들인 후 제너는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했다. 그는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새벽기도를 했다. 그리고 1940년에 클랜톤 형제단(Glanton Exclusive Brethren)을 떠나 열린 형제단(Open Brethren)에 속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다녔던 교회의 성도들은 설교시간에 잠을 자는 제너를 믿음이 없는 자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제너가 ‘기면증’에 걸린 사실을 알지 못했다. 성도들이 자신을 오해하는 상황가운데서도 제너는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그는 네비게이토(Navigators)를 비롯한 여러 선교단체들과도 협력해 복음을 전했다.

 

제너는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개인전도에 전념하기로 마음먹고 매일 10명의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는 개종 때부터 파킨슨병에 걸려 기력이 쇠약해질 때까지 28년 동안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복음을 전했다. 

  

제너는 평생 약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했다. 그들 중 수백 명의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여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는 시드니 조지 스트리트 (George Street, Sydney)에서 주로 전도활동을 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질문했다. 

  

"만약 당신이 24시간 안에 죽는다면 당신은 어디로 갈 것 같습니까? 천국인가요 아니면 지옥인가요?" 

  

사람들이 자신이 전하는 복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그는 지체 없이 그들을 자신의 집이나 지역 교회로 초대했다. 제너는 똑같은 질문을 매일 시드니 조지 스트리트에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 질문은 너무나 유명해져 결국 ‘프랭크 제너의 질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주말에는 시드니 부두로 가 선원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함께 하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영국 베드퍼드셔(Bedfordshire) 출신의 노엘 스탠톤(Noel Stanton)도 제너에게 복음을 전해들은 선원들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영국 해군이었고, 시드니에서 복무하고 있었다. 

  

스탠톤은 제너가 전해 준 복음에 깊이 감명을 받았고, 복음을 받아 들여 기독교인이 되었다. 영국으로 돌아간 스탠톤은 1969년 영국 노샘프턴(Northampton)에서 선교단체인 지저스 아미(Jesus Army)를 창설했다.

  

제너에게서 복음을 들은 또 다른 사람은 노리 제프스(Norrie Jeffs)였다. 그도 해군이었고,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서 작전을 펼치고 시드니로 돌아왔다. 제프스를 만난 제너는 그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제프스는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밝혔다. 

  

제너는 그를 자신에 집에 초대했다. 제너의 집에는 다른 사람들도 초대를 받아 왔는데, 제프스는 그곳에서 미래에 자신의 아내가 될 사람을 만났다.

  

▲ 레이몬드 윌슨이 제너의 삶과 업적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한 전기문 책자 표지.     

 

1952년 제너가 시드니 조지 스트리트에서 복음을 전할 때 호주 왕립 공군에서 복무 중이던 이안 보이든(Ian Boyden)을 만났다. 제너는 그에게 그의 집 근처 교회 예배에 참석할 것을 강권했다. 

  

보이든은 제너의 조언을 받아들였고, 교회에 참석해 예배를 드렸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보이든은 기독교인이 되었다. 시드니 거리에서 제너를 잠깐 만난 다른 많은 사람들도 기독교인이 되었다.

  

한편, 1947년에 제너는 앵거스 카루더스(Angus Carruthers)라는 사람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고, 그 사람은 자신이 기독교인이며 천국에 갈 것이라고 대답했다. 제너는 카루더스를 집에 초대했다. 

  

카루더스는 제너의 집을 방문해 더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그곳에서 제너의 딸인 앤(Ann)을 만났다. 그들은 서로 사랑에 빠졌고 3년 후에 결혼했다.

  

열심히 복음을 전파했던 제너는 말년에 파킨슨병에 결렸다. 그의 몸은 쇠약해졌고 기면증은 더욱 악화되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치매까지 걸리게 되었다. 결국 제너는 1977년 5월 8일에 7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아내도 2년 후에 사망했다.

  

제너가 살아 있는 동안 그의 전도 효과가 들어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죽은 이후에 그의 전도 활동에 관한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제너의 삶과 업적에 대해 자세한 기록이 필요하다고 느낀 레이몬드 윌슨(Raymond Wilson)이 제너의 전기문을 책으로 출판했다 (Jenner of George Street: Sydney's Soul-Winning Sailor). 이 책에 의하면 많은 사람들이 제너에게 복음을 전해 듣고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시드니 거리에서 외친 복음은 수천 아니 수만 명의 삶을 변화시켰다. 제너의 삶은 우리에게 복음 전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있다. 〠 

 

정지수|본지 영문편집위원, 캄보디아 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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