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인다

김클라라/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3/12/22 [14:39]

▲ 피라미드 스핑크스 앞에서 시드니 인문학교실 팀의 단체 사진 ©시드니인문학교실     

 

2023년 10월 15일 오전 일찍 카이로의 래디슨 블루(Radisson Blu)호텔을 출발한 인문학 여행팀은 1시간가량을 달려 기자(Giza)에 도착했다. 기자에 들어서자 세개의 대피라미드(맨카우레왕, 카프레왕, 쿠푸왕)들이 차창 밖으로 보인다. 

  

순간 기대했던 피라미드를 실제 만지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흥분과 감격이 몰려왔다. 10월의 따가운 햇살과 황사로 인해 기자지역은 약간 누렇게 보였다. 제법 이른 아침에 도착했는데도 불구하고 피라미드 근처의 주차장에는 많은 버스들과 인파들로 북적거렸다. 

  

우리 팀은 세 개의 피라미드 중 가장 큰 쿠푸왕의 피라미드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피라미드를 올라갈 수 있는 시간도 가졌다. 실제 피라미드를 보고 피라미드에 올라가 사진도 찍고 버킷 리스트 중 한 가지를 이루었다는 감격이 몰려오는 순간이었다. 

  

평균 2.5톤이나 되는 돌들을 무려 250만 개나 쌓아 건축한 피라미드는 인류 최대의 문화유산이 틀림없다.

  

기자 지구에 있는 쿠푸왕의 대피라미드는 이집트 고왕국 제4왕조 쿠푸 왕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쿠푸왕의 피라미드 옆에는 아들 카프레의 피라미드, 손자 맨카우레의 피라미드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피라미드 공사는 흔히 교회에서 출애굽의 원인으로 회자되던 이야기로 듣기도 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이집트)에서 피라미드를 짓는 노역과 학정에 못이겨 하나님에게 울부짖었더니 모세를 통해 애굽을 탈출시켰다는 설교들이 그것이다. 

  

하지만 현대 고고학의 발견으로 모세와 피라미드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집트 피라미드는 고왕국 즉 기원전 2600년 전에 지어진 건축물이고 중왕국 시대와 신왕국 시대에는 피라미드 건축을 하지 않았다. 

  

▲ 카르낙 신전 앞에서 필자 김클라라 회원 ©시드니인문학교실     

 

모세가 출애굽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대는 람세스 2세의 신왕국 시대로 기원전 1300년 경이다. 모세는 무려 천 년이나 후인 시대의 인물인 것이다. 오히려 룩소르 신전 건축이나 카르낙 신전 건축에 동원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피라미드 건설은 노예들이 아니라 이집트 노동자들로 밝혀졌다. 

  

근래에 발견된 점토판에는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고 휴가도 챙기면서 비교적 자유롭게 동원되었다는 기록들이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피라미드 인접한 곳에서 노역자들이 살았던 부락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것을 통해 고고학자들은 피라미드를 건설한 사람들이 노예가 아니라 이집트 평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발굴에 참여하였던 카트만 델튼 박사는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파피루스와 점토판의 기록들을 재해석하여 이집트인들의 4500년 전의 생활상을 파악하게 되었고, 파피루스에 기록된 피라미드 축조 작업일지에 이집트 평민 40명의 노역 내역이 기록되어 있다. 

  

거기에는 노역자 이름, 노역 일자, 노역에 불참한 사유 등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노역에 불참한 사유로는 형님의 시신 염(미이라 작업) / 과음으로 인함 / 몸이 아파서 / 전갈에 물려서 / 잔치 때문에 / 아버지 묘지 정리 관계로 등의 이유들이 열거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을 통하여 이들 노역자가 노예가 아닌 것이 증명되었다. 뿐만 아니라 임금을 받고 공사에 동원된 것도 밝혀지게 된 것이다. 

  

피라미드 관람 후 앞쪽에 있는 스핑크스를 둘러보았다. 이집트 고대문명의 보고인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는 영생과 인간의 사후세계에 대한 영원을 담고 있는 인류의 표현 아니겠는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관람 후 일행은 아쉽지만 다시 버스에 올라 파피루스 전시장으로 향했다. 

  

인류가 문명을 가지기 시작한 후 가장 중요한 인간의 발명품 가운데 하나가 바로 문자이다. 이 문자를 처음 기록했던 도구가 바로 갈대로 만든 파피루스이다. 파피루스 전시장에서 가이드는 파피루스가 어떻게 제작되어지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파피루스 관람 후 점심 식사를 마치고 인문학 여행팀은 이집트 문명사 박물관(Egypt Museum of Civilization)을 방문했다. 이집트 문명사 박물관은 세워진지 10년 정도 된 새건축물이었다. 이 안에는 피라미드, 그리고 고대 무덤 등에서 발굴된 수천개의 이집트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수십 개가 넘을 다양한 미이라들 부장품들, 그리고 이집트 유물들이 이집트의 수천 년 역사를 정리하듯이 잘 정돈되어 전시되어 있었다. 

  

이집트 문명사 박물관 투어를 마친 후 일행은 오후 4시쯤 쓰레기 마을이라고 불리는 모카탐 마을과 수백년 전부터 자리잡고 있는 마을 끝에 자리잡고 있는 모가탐 동굴교회를 방문했다. 

  

모카탐 마을은 대형버스가 들어갈 수 없어 팀은 조그만 봉고차에 나누어 타고 마을로 들어가야 했다. 가이드는 모카탐 마을을 방문할 때 냄새가 나더라도 코를 막는다던지 냄새 때문에 불쾌감을 표시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아니다 다를까 마을 입구에서부터 퀘퀘한 쓰레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 마을은 전체 이집트인들의 90% 가 이슬람인 세계에서 10% 콥틱 기독교인들이 쓰레기들을 모으고, 정리해서 팔아 그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사는 기독교인 마을이다. 

  

▲ 세계에서 가장 큰 동굴교회인 모카탐 동굴교회.©시드니인문학교실     

 

이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이슬람 세계에서 어려움을 극복하면 사는 모습에 가슴이 저려왔다. 모카탐 마을 깊숙히 들어가니 세계에서 가장 큰 동굴교회인 모카탐 동굴교회가 자리하고 있었다. 자연동굴 안에 좌석을 배치하여 예배당을 꾸렸다. 

  

모카탐 동굴 교회는 3만 명이 앉을 수 있는 규모라고 안내해 준다. 팀원들 가운데 몇 사람은 동굴교회 좌석에 앉아 기도를 드리기도 하고 묵상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일행은 모카탐 동굴교회 홍보 담당 매니저의 안내를 받고 교회와 모카탐 마을을 위해 도네이션을 개인적으로 하기도 했다. 

  

모카탐 동굴교회 방문을 마친 일행은 룩소르로 가는 야간 침대 기차를 타기 위해 카이로 기차역으로 이동했다. 원래는 8시 30분 기차였는 데 기차는 9시 30분이 되서야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계속>

 

김 클라라|시드니인문학교실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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