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신문은 갈수록 없어지는 추세이다. 종이 및 인쇄가격 상승의 이유와 모든 산업이 디지털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1990년 3월 ‘호주동아일보’로 창간되어 2015년 ‘한호일보’로 제호가 바뀌어 발간되었던 ‘한호일보’도 작년 12월 22일로 종이 신문 발간을 중단했다. 이제 ‘한호일보’는 더 이상 종이 신문으로 받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시대적 상황의 변화 때문이다. 종이 신문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여간 서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온라인 신문은 계속 발간된다고 하니 위로를 받는다.
호주 50년 교민 역사 가운데 수많은 신문과 잡지들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그 가운데 10년 넘게 지속성을 가지고 발간되었던 동포신문들은 흔치 않다. 이렇게 수없이 생겼다 사라진 잡지와 신문의 제호들을 다 기억하고 있는 동포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한인 종이 신문과 잡지들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이제 보고 싶어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초창기 종이 신문들을 창간호 부터 보관하고 있는 사람들이 없고 디지털로 변환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간혹 신문/잡지사의 초기 발행인들이 창간호부터 보관하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분들이 돌아가시면서 초기의 신문/잡지도 함께 소실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세월이 갈수록 호주 초창기 신문/잡지들은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는 형편이다.
이민 생활 초기 기자도 매주 금요일이면 한인 상점에 들러 한인신문과 잡지들을 가져왔던 경험이 있다. 그리고 가져왔던 신문과 잡지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른 용도로 사용되거나 재활용 쓰레기로 버려졌다. 실은 이것들이 모두 호주 한인 50년 이민 역사의 증거물이자 그 시대상을 알 수 있는 지표였는데 무심히 소실된 것이다.
이렇게 호주 동포사회의 한인 신문/잡지들이 세월이 지날수록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져가는 것에 안타까움을 갖고 있던 호주한인교육문화센터(Korean Culture Centre, 이하 KCC) 강병조 대표가 시드니를 비롯한 호주 교민사회에서 발간된 신문 등 정기간행물을 영구 PDF 파일로 보관, 검색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강병조 대표는 몇 년 전부터 기자를 만날 때마다 호주 50년 역사 가운데 존재했던 동포신문들이 더 사라지기 전에 누군가는 디지털 작업을 해놔야 한다는 소신을 주장했다.
그 일이 예산도 많이 들고 많은 수고가 들어가는 일이기에 마음으로 동의는 하면서도 당신이 빨리 하라고 격려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드디어 작년 2023년 3월부터 KCC에서 그 일을 시작을 하였다.
지난 1월 10일 강대표가 운영하는 한솔장례식장 라이달미어 사무실에서 실무작업을 하는 김대근 씨 와 강병조 대표를 인터뷰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
“저희 단체이름이 한인교육문화센터(KCC)”입니다. KCC가 처음 생긴 역사부터 따지면 40년이 넘습니다. KCC는 초기부터 한인동포사회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많은 일들을 해왔습니다.
그때 영주권 이슈, 임금 체불 등 교민들 계몽부터 백인들로부터 받는 차별 문제까지 KCC가 발벗고 나서서 많이 도왔습니다. 당시 한인 동포사회가 교민신문이나 잡지들을 통해 정보들을 얻고 또 신문이나 잡지가 교민 여론 형성에 많은 역할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귀한 역할을 해왔고 한인 이민사회들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이 세월이 가면서 영구 소멸된다는 것이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특히 점점 더 종이 신문들이 온라인 신문으로 대체되는 형국이고 제가 80년대 90년대 보았던 신문들은 어떻게 보관되어 있을까? 염려되었습니다. 당시에 신문을 발행했던 분들을 제가 개인적으로 다 아는 분들입니다.
예를 들면 ‘한호타임즈’의 배철상 발행인, ‘호주동아’의 오직일 발행인, ‘대한신보’의 조기성 발행인, ‘대양주뉴스’의 김정엽 발행인 등인데 김정엽 발행인 외에는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때 신문들은 보관되어 있는 것일까? 이분들이 돌아가시면 영영 소실될 텐데 걱정이 들었습니다. 1992년에 PDF 파일이 발명되어 대중화된 것이 1990년대 중반인데 이때 다행히 발행인들이 옛날 발행했던 신문들을 PDF 파일로 전환해 놓았다면 다행인데 제가 볼 땐 그렇게 해놓은 분들이 안 계십니다.
그렇다면 옛날 종이신문이 소실되면 영구적으로 소실되는 것인데 그게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래서 ‘저라도 이일을 해야겠다’라고 마음먹은 것입니다.”
강 대표는 KCC 운영위원회에 이 내용을 공유했고 다행히 운영위원들이 동의를 해주어 호주 동포신문 디지털 전환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자금’이었다. 가장 적게 예산을 잡아도 10만 불은 족히 들어갈 것 같았다.
이 엄청난 작업을 자원봉사로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다행히 KCC 회원 가운데 흔쾌히 몇 만 불을 후원하는 회원이 나왔다. 원래 계획했던 예산에는 많이 부족했지만 일단 시작하기로 하고 작년 2월 6일 캔버라 국립도서관에 도움 요청 메일을 보내는 것으로 처음 작업을 시작했다.
강 대표 역시 호주 한인 이민 역사를 위해 의미있고 역사를 보존하는 일에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뿐 아니라 재정을 지원했다.
종이 신문 디지털 전환작업(Digitalization)
2023년 3월 27일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한인신문들을 확인하기 위해 강 대표와 김대근 씨가 캔버라 국립도서관을 방문했다. 그리고 관계자를 면담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김대근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캔버라에 도착해 담당자를 만났는데 이 담당자는 어떤 단체가 국립도서관이 보관하고 있는 종이 신문이나 간행물을 디지털로 전환하기를 요청하면 그것을 돈을 받고 전환해 주는 일을 하는 담당자였습니다.
이분이 잘 보관되어 있는 ‘한호타임즈’를 갖고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도 재원이 부족해서 소수민족 신문들까지 디지털 전환을 못하고 있다. 그런데 과거에 유대인 커뮤니티는 재원을 들여서 자기들 신문을 디지털 전환작업을 했다.
그리고 “Trove라고 하는 아카이브가 있는데 우리한테 디지털 전환작업을 하면 자동으로 ‘Trove’에 저장된다”라며 견적서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한호타임즈’만 10년치를 하는데 8천 불이 넘는 거예요.”
일단 김대근 씨와 강 대표는 국립도서관에 초기 한인신문/잡지들이 보관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이민 초기의 모든 한인신문/잡지들이 보관되어 있지는 않지만 신문 발행인들이 성의있게 국립도서관에 지속적으로 발송한 신문/잡지들은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주립도서관에도 보관되어 있지 않을까? 만약 주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면 캔버라까지 가서 작업하는 것보다는 시드니 시티 주립도서관에서 작업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NSW 주립도서관을 방문했다. 국립도서관보다는 보관 상태가 좋지 않고 중간 중간 소실된 것들도 있었지만 주립도서관에도 한인신문/잡지들이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러는 와중에 한인동포 가운데 이민 초기의 한인신문/잡지들을 많이 보관하고 있는 김명동 목사(크리스찬리뷰 편집인)와 연락이 닿았다. 김명동 목사는 초기 한인 이민 역사와 관련된 소설을 쓰고자 이민 초창기인 80년대부터 한인신문들과 잡지들을 모아왔다.
강 대표는 김명동 목사가 보관하고 있던 교민신문/잡지들을 직접 싣고 와서 김대근 씨와 함께 분류했다. 라면박스로 10박스 이상의 분량이었다. 그 가운데에는 시드니에서 발간된 ‘시드니만화’ 창간호도 눈에 띄인다. 맨 앞장에는 인기 만화가 이현세 씨의 창간 축하의 글도 실려있었다.
김대근 씨와 강 대표는 디지털 전환 작업을 위해 건네받은 자료들을 신문/잡지/단체회보 등으로 분류했다. 많은 자료들을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오랜 기간을 끊이지 않고 연결되어 보관하고 있는 신문/잡지는 없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가치를 가지고 있고 도움이 된다고 김대근 씨가 강조한다.“
김명동 목사님이 전달해 주신 신문 자료의 가치는 시드니에서 발간된 모든 종류의 신문/잡지의 창간호를 보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관하고 계신 자료가 연속성이 없어도 시드니에서 발간된 모든 종류의 신문/잡지들 심지어 교회 회보들까지 보관하고 있어서 그동안 시드니에서 어떤 신문들이 발간되었고 사라졌는지 그 폭(범위)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잠깐이지만 만화전문 잡지도 발간되었던 걸 알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한인동포 신문/잡지들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은 1883년에 창간된 ‘한성순보’이다. 이 신문은 1882년에 일본에 수신사로 갔던 박영호와 그 일행이 개화된 일본을 보고 깨달아 조선 국민들을 계몽시키고 개화운동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구한말 조선에서도 신문의 발간이 필요하다고 느껴 창간한 것이다.
그 후 1896년 서재필 박사는 한자를 모르는 일반 백성이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순 한글로 ‘독립신문’을 발간했다. 다행히 이런 신문들은 디지털 작업이 되어 한국 역사자료실에 보관되어 있다.
호주에서 현재까지 수집된 자료들을 볼 때, 정기적으로 발간된 시드니 한인동포사회의 최초의 신문은 1982년부터 1992년까지 김삼오 박사가 발행한 ‘호주소식’이다. ‘호주소식’은 매주마다 정기적으로 발간된 타블로이드판 주간신문이었다.
다행히 김삼오 발행인이 ‘호주소식’을 A4 사이즈로 축소 복사하여 4권의 책으로 만들어 보관하고 있었다. 김삼오 발행인으로부터 책을 빌려 김대근 씨가 며칠이 걸려 디지털 전환작업을 마쳤다. KCC 디지털 전환작업 최초의 작업이 되었다.
그리고 김대근 씨는 NSW 주정부 도서관에 가서 조기성 씨가 발행한 ‘대한신보’의 디지털 작업을 마쳤다.
“주정부 도서관에 가니 ‘대한신보’가 있는데 1년치 정도 분량밖에 보관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대한신보가 1년 발행하고 그만두어서 그런지 아니면 더 발행했는데 주립도서관에 배송을 해주지 않아 보관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강 대표가 말을 받아 그때의 추억을 소환하여 덧붙인다.
“제가 1982년 이민을 왔습니다. 그때 한인 커뮤니티에는 ‘호주소식’과 ‘대한신보’ 두 개 밖에 없었습니다. 저도 대한신보가 계속 나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주정부 도서관에서도 동포신문들을 보관하고 있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문제가 있다. 캔버라 국립도서관의 자료들은 보관 상태도 좋고 신문의 질도 좋은 방면 주정부 도서관 자료들은 모두 마이크로 필름으로 보관되어 있는 것이다.
김대근 씨가 추정하기로는 국립도서관 자료들은 누군가 직접 기증한 자료들인 반면 주정부 도서관 자료들은 카운슬이나 다른 곳에 보관되어 있던 자료들이 주정부 도서관에 모아져서 보관하기 위해 마이크로 필름으로 작업화된 것 같다는 것이다.
“제가 지금까지 작업하면서 확인하고 추정한 바로는 국립도서관에 있는 자료는 누군가 본 것을 수집한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 기증한 것입니다. 그래서 상태가 좋고 양호합니다.
반면에 주립도서관 자료들은 누군가 보고 사용했던 것들을 보관하기 어려워 주립도서관에 보낸 것들입니다. 그래서 오려진 것도 있고 상태가 좋지는 않습니다. 어떤 것은 캔터베리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던 것을 주립도서관으로 보내진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종이 신문으로 보관되어 있지 않고 마이크로필름으로 찍어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걸 제가 다시 스캔해서 PDF 파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신문은 가독성이 좋은 것도 있지만 어떤 신문은 상태가 안 좋은 것들도 있다. 교민들 가운데 혹시 이민 초창기 동포신문/잡지들을 보관하고 있는 분이 있다면 KCC에 연락을 주기 바란다.
“그리고 남기성 씨가 한국의 경향신문을 받아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발행한 호주일보도 일단 다 작업을 마쳤습니다. 호주동아도 마이크로필름으로 20년치가 다 보관되어 있는데 국립도서관에 상태 좋은 종이 신문이 보관되어 있어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전달해주신 크리스찬리뷰는 보관 상태가 좋아 1990년 창간호부터 2008년 8월 호까지 아마 다음 주면 작업이 끝날 것 같습니다(다행히 크리스찬리뷰는 2008년 9월 호부터 현재까지 PDF 파일로 보관이 되어있다)”
그리고 1991년 발행되어 지금까지 33년간 발행해오는 호주 ‘톱뉴스’는 자체적으로 디지털 작업이 되어 있다고 해서 제외되었다.
이외에도 잠깐 발행되었다 사라진 신문과 잡지들 그리고 단체회보들이 수없이 많다. 강 대표는 일단10년넘게 지속적으로 발간되었던 신문들의 디지털 작업을 먼저 끝내고 난 후 그 후 이외의 신문/잡지/단체회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향후 결정할 계획이다.
교민사회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어떤 교민잡지는 수십 년치의 종이 자료를 보관하고 있다가 홍수가 나서 소실이 되었다. 발행인으로부터 자료를 약속받았다가 그만 집수리를 하면서 박스를 잃어버려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어 미안하다는 연락을 받기도 했다.
이렇듯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종이신문들은 영구적으로 소실되기 쉽다. 호주 동포사회의 역사가 사라지기 전에 디지털 작업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미국의 하와이 대학 한국학연구소 백태웅 교수는 하와이 120년 이민역사를 담고 있는 1909년 초창기 신문부터 최근의 신문까지 디지털 작업을 해왔다. 이것은 하와이 한인 이민역사의 주요 출처이고 중요한 한국학 연구의 중요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호주의 이민 역사도 이제 60년을 향해가고 있다. 1968년 최초의 공식 이민자인 최영길 씨가 호주정부의 초청을 받아 그의 가족이 시드니 땅에 첫발을 디딘지 56년이 되었다. 호주교민사회가 관심을 갖고 이 일에 동참한다면 호주 동포들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이 호주 한인 이민역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받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호주 교민사회를 위해 부탁의 말을 들어 보았다.
“기사를 읽으신 교민들 가운데 낱개로라도 초창기 신문인 대한신보, 한호타임즈, 시드니 코리안포스트, 대양주뉴스 등 초창기 신문들을 보관하고 계신분이 있으면 연락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외에도 오래된 신문이나 잡지들을 보관하고 있는분들이 계시면 연락을 주셔도 됩니다. 사실 저희가 이런 작업을 하는 것은 호주 한인역사와 후대를 위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되어 이일을 추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정적 지원이나 아니면 자원봉사등 어떠한 방법으로든 동참하여 주신다면 호주 한인역사를 새기고 보존하는 일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김대근
“하다못해 저희에게 잘하고 있다. 당신들이 하는 일을 응원한다 등 간단한 이메일이라도 보내 주신다면 저희가 일하다가 지칠 때에 무엇보다도 큰 위로와 힘이 될 것입니다.”-강병조
호주한인교육문화센터(KCC)는 거슬러 올라가면 1980년경 재호한인기독청년회(KCYF, Korean Christian Youth Fellowship)로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1987년 KRC(Korean Resource Centre, 한국 민족 자료실)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KRC는 이민사회에서 한국의 전통문화와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나감으로써 민족정신을 고양하고 동포사회의 권익을 신장시키기 위해 시작되었다.
그리고 1999년 지금의 KCC로 이름이 바뀌었다. KRC의 정신을 계승한 KCC 역시 한인 이민사회에서 다양한 교육, 문화활동을 통해 건강한 동포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 목적이다.
KCC 부설 시드니 한국문화학교는 매주 토요일 시드니 북서부 체리브룩 초등학교를 빌려 한글학교(초등학교 1-6학년 과정)를 운영한다. 한글 공부(2시간) 외 피아노 또는 미술 교육을 병행하고 있다.
그 외 청소년 교실, 풍물패 필굿, 민중가요 노래패 하날소래, 나비독서회, 두발로 하이킹 등 동아리 활동과 시민운동 연대 활동을 하고 있다.〠
호주한인교육문화센터(KCC) 강병조 대표 연락처 M. +61 404 116 758 / E. info@hansolfs.com.au
주경식|본지 편집국장 권순형|본지 발행인 <저작권자 ⓒ christianreview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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