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깨워 생각나게 하라

서을식 /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4/02/23 [17:40]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 (베드로후서 1:13)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스트레칭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실에 티브이가 켜져 있다. 요즘 전기세를 내가 납부하고 있는 터인지라, 티브이를 끄지 않은 채 자리를 비운 아내를 탓하며, 소파에 앉았다. 그 자리에서 제목도 모르는 영화를 보기 시작해 마지막까지 봤다.

 

나중에 보니, ‘노트북’이라는 영화였는데, 성년을 전후한 사랑에 폭 넓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노년의 사랑에 대한 이해 역시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미숙하나 아름답게 사랑했던 청소년 노아와 앨리는 안타깝지만 사회 경제적 장벽을 만나 헤어진다. 나중에 앨리는 자신의 집안과 어울리는 론이라는 남자를 만나 약혼한다.

 

웨딩 드레스 피팅 날 앨리는 신문에 난 자신의 결혼에 관한 기사를 읽다가, 자신과 추억이 있는 윈저 저택을 수리하고 그 앞에서 찍은 노아의 사진을 보게 된다.

 

또한 그가 자신과 헤어지고 난 직후 1년 동안 매일 쓴 편지를 어머니가 숨겼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앨리는 결국 노아에게 이끌리는 솔직한 감정에 충실한, 용기 있는 결정을 내린다. 노년이 되어 기억을 잃은 아내 곁에서 애쓰며 돌보는 남편의 애잔한 사랑이 돋보이지만, 내 마음을 사로잡은 부분은 짧더라도 가끔 제 정신이 돌아오는 아내의 기억을 만나고자 일기를 읽어주는 그의 지극한 노력이었다.

 

기억을 되살려주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나는 이 성구의 필자인 베드로도 안타깝다. 베드로도 이제 늙었다. 그 자신의 기억조차 오락가락할 나이다.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라는 표현으로 그는 아직은 살아 있는 자신의 육신과 남은 때를 암시한다.

 

노사도가 갖는 비장함을 넘어 위기감마저 느껴진다. 그가 이리도 절박하게 자신의 목숨이 붙어 있는 동안에 다른 이들을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겼던 사명은 무엇일까?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4절).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가 우리로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함이니, 구원 그 이후에 펼쳐질 크리스찬 삶의 온갖 요소들은 이 목적을 위해 드려져야 한다.

 

내용은 놀라게도 구체적이다.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5~7절).

 

믿음으로 시작하여 사랑으로 완성된다. 이것이 우리가 가야 할 영적 여행이다. 지속해서 그리고 하나씩 단계를 오르며 더해 나가야 한다. 그것도 겨우 구색 갖추는 정도가 아니고,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 즉” (8절)이 말하듯, 풍성하여 넘치도록 해야 한다.

 

그는 이 내용을 나열하는 시작점과 끝점에 “더욱 힘써” (5, 10절)라는 말을 반복한다. 왜? 그렇게 할 때 크고 많은 유익이 뒤따른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는다”(9절).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하고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 한다 (10절).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신다” (11절).

 

반면에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9절). 섬뜩하다. 멀리 보지 못하는 맹인. 치매에 걸린 신앙인을 말하지 않는가! 물론 크리스찬은 과거에 멈춘 기억을 고집해 정지된 시간에 사는 시간의 포로가 아니다.

 

그렇게 허비할 시간도 없다. 또한 미래에 대해 먼 전망을 가지고 현실을 온몸으로 열어가야 하는 과제도 떠안고 있기에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하지만, 종교와 현실 생활에 몰두하다가, 숲 안에서 길을 잃었을 때, 잠시 멈추고 “정말 중요한 일이 무엇이었지?”라는 질문 정도는 가끔 던질 줄 알아야 멋지다.

 

기억 속에는 어수선한 삶을 리셋하는 힘이 있다. 우리가 가끔 촉수를 뻗어 기억의 편린을 찾는 과거로 회귀하는 시간여행을 하는 이유도 삶의 여정이 지나온 과거와 대과거에서 우물물처럼 추억을 퍼 올려 목축인 후 “처음 사랑”(계 2:4)을 붙들고 다시 일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질문자에게 베드로는 이렇게 답한다.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돼라!”〠

 

서을식|시드니소명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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