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대신 누군가 죽는다

손성훈/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4/03/25 [16:43]

 

 

 

 

G집사는 전에 잘 다니던 교회를 그만두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목사님이 설교에서 군대 얘기를 했는데, 축구한 얘기는 아니었다. 참호를 파다가 다른 병사와 교대를 했고 곧 그 병사는 깊게 판 참호가 무너져 죽게 되었다. 그것은 간발의 차이로 죽지 않게 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다고 침을 튕기며 감사하다고 했다

  

그러나 G집사는 기분이 나빠왔다. 다른 병사가 대신 죽지 않았는가. 다른 사람을 살렸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그런 목사님의 교회를 더 이상 나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어떤 사람이 갑자기 몸이 아파 당일날 비행기 탑승을 취소했다. 그러자 대기하던 승객이 그 비행기를 타게 되었고, 마침 그 비행기는 추락하여 전원이 사망하게 되는 사고를 당한다.

  

또 이런 경우도 있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더니 타려는 버스가 막 출발해서 손 흔들며 쫓아갔지만 놓치고 말았다. 

 

그는 에잇, 오늘 재수 옴붙었네, 푸념을 한다. 아니면 버스가 와서 타려고 했더니 버스 운전사가 제지를 한다.

  

"승객이 너무 많이 타고 있으니 다음 버스를 타세요."

  

그러면서 문을 닫고 가버린다. 인상을 쓰며 뒷창으로 보니 버스 안은 손님으로 꽉차 있었다. 그래도 그는 땅바닥에 침을 탁 뱉으며 남이 듣던 말던 씨부렁거린다.

  

"제기랄, 이러다 회사 늦겠다. 저 자손 대대로 버스 운전사 할 인간, 아무리 콩나물 시루 같아도 좀 낑겨주지. 몇 사람 내렸었잖아."

  

그런데 다음 버스를 타고 가다보니 웬 차가 낭떠러지 아래에 굴러떨어져 있었다. 완전히 찌그러진 그 모습을 자세히 보니 바로 먼젓번 버스였다. 그날 뉴스엔 이 사고로 거의 다 사망했다고 나온다. 

 

정말 죽고 사는 게 잠깐 사이에 바뀌었던 것이다. 살아난 사람은 몸을 부르르 떨며 외쳐댄다.

 

"진짜 큰일날 뻔했네. 그때는 왕재수였다고 생각했는데, 참 운명의 장난이란..."

  

옆에 있던 아내가 부추긴다.

  

"억세게 운좋은 당신, 우리 복권이라도 사야 되는 거 아니예요?"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은 대부분 불행해졌다고 한다. 이혼하는 경우도 있고. 

  

한편, 기독교인들은 이렇게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것이다.

  

"주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교회 잘 다니겠습니다."

  

그런데, 나 대신 누가 죽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면 죽은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인가? 

  

이럴 경우 은혜에 겨워 간증하며 돌아다닐 것이 아니라 죽은 자에 대해 안타까워 하며 기도해 주어야 한다.

  

골프장에서 흔히 쓰던 말,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어서는 아니된다. 

  

심지어 성경은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고 했는데 원수도 아닌 사람이 나대신 죽었다면 불쌍히 여기며 애도해야지 하나님의 은혜 어쩌고 하며 낄낄거리고 다니면 올바른 처사는 아니다.

  

진짜 감사해야 하는 경우라면 당연히 나를 대신해 목숨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케이스일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노아의 홍수' 때처럼 몇 번이나 인류가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수도 있다.

  

또 소설을 써보자면, 선택받았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한심한 작태에 분노가 치민 하나님께서 또 다시 선민이건 이방인이건 싸그리 심판해버리겠다고 마음 먹으셨다. 

  

물로는 아니고 불로 할까 뭘로 할까 오래 고민 중이셨는데 예수님께서 제안을 하나 하셨다.

  

"내가 진짜 인간이 되어서 저들에게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 또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지 알려주면 어떨까요?"

  

그러자 성령님이 거드셨다.

  

"참 좋은 의견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고개를 끄덕이시며 한 번 더 기회를 주어보자고 하셨다. 

  

성경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고 했다. 그런데 반대로 자기 대신 남이 죽었을 경우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죽음에 무덤덤하다면 믿음의 상태를 따지기 이전에, 어찌 그런 자들이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겠는가.

  

이제는 피끓는 심정으로 예수님의 희생, 고통과 조롱당함과 배신에서 오는 슬픔을 내 것처럼 여기며 '예수 사랑'에 올인해야 한다.〠 

 

손성훈|크리스찬 소설가, 골드코스트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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