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스의 아프로디테

최성은/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6/01/25 [14:55]
주전 6세기 이후 고대 그리스 미술은 보통 기하학 시기, 아케아 시기, 클래식 시기, 헬레니즘 시기로 구별된다. 헬레니즘 시기는 주전 323-31년까지를 말하며 알렉산더가 이룩한 광대한 제국에서 알렉산더가 꿈꾸던 헬라문명이 활짝 꽃피운 시기이다. 조각 작품으로는 <아오콘 군상>,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가 있다. 오늘은 상반신을 드러낸 채 약간 구부린 자세로 서 있는 팔없는 여자 <밀로의 비너스>에 대하여 기술한다.
 
밀로스의 아프로디테는 에게해에 깨알처럼 흩어져 있는 수많은 섬들 가운데 하나인 밀로스 섬에서 발견된 여신상이다. <밀로스의 아프로디테>가 <밀로의 비너스>라고도 불리는 것은 순전히 영어가 가진 힘 때문이다. 밀로스는 영어로 <밀로>이며 아프로디테의 로마식 표기가 <배누스> 인데 영어로는 배누스를 <비너스>로 읽는다. 
 
이 조각품이 발견된 것은 우연이었다. 1820년 4월 8일, 밀로스 섬의 한 농부가 아프로디테 신전 가까운 곳에 있던 자기의 묵은 밭을 아들과 함께 갈고 있었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구멍이 밭귀퉁이에 있는 것을 보고 호기심이 발동하여 파보니 동굴로 연결되는 입구가 나왔다.
 
동굴을 따라 가니 여신상이 두 파트로 분리된 채 먼지속에 버려져 있었다. 직감적으로 물건임을 알아 챈 농부는 자기의 행운을 감사하며 그것들을 동굴밖으로 옮겨 왔다. 자연스럽게 소문이 나고 마침 그곳에 정박해 있던 프랑스 해군들의 귀에도 들어 간다.
 
<쥘 뒤몽 뒤르빌>이라는 사관이 달려가 확인해 보니 범상치 않은 작품이 확실하였다. 그는 즉각 그리스 주재 프랑스 영사에게 보고하고 다른 이들이 손대지 못하게 그 곁을 지켰다. 영사는 터키 주재 프랑스 대사에게 보고했고  대사 리비에르 후작은 반강제적으로 헐값에 사들인 뒤 나뉘어진 두 부분을 잇고 손질하여 루이 18세에게 선물로 바친다.
 
루이 18세는 1821년 루브르 미술관에 이를 보내며 영구히 소장할 것을 지시하였다. 이렇게 해서 어두운 동굴속에 버려져 있던 고대 그리스의 걸작품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주전 130-100경 작품으로 추정되며 전체높이는 204cm인데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좌대에 작가의 이름인듯한 글자가 새겨져 있으나 판독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비너스상은 무엇보다 인체의 황금비율이 보여 주는 조화와 균형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였다. 황금비율이란 피타코라테스가 발견한 수학공식으로 선분을 둘로 나누었을 때 짧은 부분과 긴 부분의 길이의 비가 긴 부분과 원래 선분의 길이의 비와 동일한 경우를 말하며 이 비율일 때 인간은 균형과 조화가 최고에 이른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그 값은 1:1.618이다. 파르테논 신전의 정면의 폭과 높이가 이 비율에 맞추어 지어졌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비너스 상은 배꼽이 전체를 황금비율로 분할한다. 어깨가 배꼽까지의 상반신을 황금분할하고 무릎이 하반신을 황금분할한다. 또한 코는 어깨까지를 황금분할한다.
 
비너스 상의 자태를 <콘트라포스토>라고 한다. 한쪽 발에 무게 중심을 두고 다른 쪽 발의 무릎을 약간 구부려 전체적으로는 완만한 S자 모양이며 얼굴과 가슴과 엉덩이 부분은 약간씩 뒤틀려 보이는 자세이다. 그리스의 전설적인 조각가 폴리클레이토스에 의해 창안되었고 여성 조각상에 도입된 것은 프락시스텔레스의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부터이다.
 
비너스 상의 상반신은 플라톤의 이데아적 가치를 담고 있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어여쁜 얼굴, 단정하게 뒤로 묶은 머리, 어깨의 고운 선에서 여성의 정숙하고 단아한 기품을 느낀다. 반면에 하반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실적 가치를 담고 있다. 넉넉한 아랫배와 풍만한 엉덩이는 여성이 가져야 할 왕성한 생산력을 강조한다. 아울러 흘러 내릴듯한 튜닉 속에 감추어진 풍만함은 여성의 성적매력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조건이었음을 보여준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군살 하나 없이 근육으로 다져진 힘있는 남성과 단아하고 성적매력이 넘치는 여성을 황금비율에 맞추어 아름답게 표현함으로 그들이 추구한 이상적인 인간이 어떤 것인지 우리들이 알 수 있게 하였다.
 
그들의 기준이 미적으로 공감 못할 바는 아니나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예수님이 구원하시고 성령님으로 충만한 사람을 최고의 인간, 최상의 그리스도인으로 치는 우리의 신앙적 기준과는 아무래도 거리감이 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최성은|시드니선민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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