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최초로 전해들은 호주 원주민

인물|토마스 베넬롱(Thomas Bennelong)

정지수/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4/02/23 [17:29]

▲ 호주 원주민으로 최초로 복음을전해들은 토마스베넬롱의 초상화.그는 유럽을 방문한 최초의 호주 원주민이었다     

 

호주 원주민들 중에서 최초로 복음을 전해들은 사람은 누구일까? 호주 원주민들은 수천 년 전부터 호주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지리적 위치 때문에 그들에게는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백인들이 호주로 이주해 살기 시작하면서 호주 원주민들은 복음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호주 원주민들 중에서 최초로 복음을 전해들은 사람은 토마스 베넬롱(Thomas Bennelong)이다. 베넬롱이 어떻게 복음을 전해들을 수 있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시드니에 백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할 때부터 백인들과 원주민들은 충돌하기 시작했다. 1789년 11월에는 백인들이 호주 원주민들과 싸웠고, 전투 중에 호주 원주민인 토마스 베넬롱을 생포했다.

 

베넬롱의 나이는 25세로 추산되었다. 그는 파라마타강 주변의 한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의 얼굴은 용맹스러운 모습이었고 키도 컸다. 그는 음식도 잘 먹었다. 또한 그는 총명했으며 성격도 밝은 편이었다.

 

당시 총독이었던 아서 필립(Arthur Phillip) 총독은 호주 원주민들의 문화와 관습을 배우기 원했다. 그래서 생포된 원주민들 중에서 베넬롱을 선택해 시드니 만(Sydney Cove)에 위치한 정착촌으로 이송시켰다.

 

백인들의 정착촌에 온 베넬롱은 백인 사회에 잘 적응했다. 백인들의 음식을 잘 먹었고, 술도 잘 마셨다. 영어를 배우려는 의지도 강했다. 그의 밝은 성격과 강인한 체력은 그가 백인들 사회에 적응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한편, 필립 총독은 베넬롱이 백인들의 정착촌에 잘 적응하는 것을 본 후에 그를 자신의 집에 머물게 했다. 그리고 백인들의 문화와 복음을 그에게 전해 주려고 노력했다. 이때 베넬롱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백인들의 정착촌에 잘 적응하던 베넬롱은 가족들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1790년 5월 백인들의 정착촌을 탈출해 자신의 마을로 돌아갔다. 그가 다시 백인들의 정착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같은 해 9월에 발생한 맨리(Manly) 지역 원주민들과 호주 백인 정착민들 사이에 일어난 다툼 때문이다.

 

서로 간의 오해에서 비롯된 논쟁은 큰 싸움으로 번졌다. 이때 필립 총독이 호주 원주민의 창에 찔려 부상을 입는 일이 벌어졌다.

 

이 사건 이후에 베넬롱은 자주 백인들 정착촌 주변에 나타나 총독의 건강 상태를 물었다. 베넬롱은 진심으로 총독의 건강을 걱정한 것이었다. 다행히 총독의 상처는 깊지 않아 빨리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 사건 이후 필립 총독은 베넬롱을 호주 백인 정착촌 근처에 거주시키길 원했다. 그래서 필립 총독은 현재 베넬롱 포인트(Bennelong Point)라고 불리는 시드니 만(Sydney Cove)의 동쪽에 위치한 벽돌 오두막집을 베넬롱을 위해 마련해 주었다.

 

베넬롱은 가족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이주해 살기 시작했다. 그는 백인들과 교류하며 백인들의 문화와 영어를 배웠다.

 

필립 총독은 베넬롱을 신뢰했고 그가 백인들과 원주민들 사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주길 기대했다. 그래서 1792년 12월에 필립 총독은 베넬롱을 데리고 영국으로 건너가 조지 3세(King George III) 영국 국왕에게 그를 소개했다.

 

영국을 방문해 영국 국왕을 만난 베넬롱은 크게 감격했다. 그리고 발전된 영국의 모습을 보고 그는 많이 놀랐다. 영국에서 서양의 문화와 기술 문명을 체험한 베넬롱은 1794년 8월 새로운 총독인 존 헌터(John Hunter) 총독과 함께 호주로 돌아올 계획이었다.

 

하지만, 출항이 미루어지면서 베넬롱은 지쳐갔다. 그는 영국의 추위와 고향에 대한 향수병 때문에 많이 힘들어 했다. 기약 없이 출항을 기다리는 일도 그를 힘들게 했다. 1795년 9월이 되서야 그는 시드니로 돌아올 수 있었다.

 

고향에 돌아올 수 있어서 그는 기뻐했지만, 그의 육체와 마음과 정신은 크게 지쳐있었다.

 

시드니로 돌아온 이후 베넬롱의 삶은 비참해졌다. 그에게 호의를 베풀던 필립 총독은 사임했고, 새로운 총독은 필립 총독처럼 베넬롱을 대하지 않았다. 베넬롱은 백인들의 정착촌에서 거주하는 것을 더 이상 원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그는 크게 환영 받지 못한 것 같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기록이 없어서 알 수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은 그가 호주 원주민 부족들 간의 전투에 참여해 부상을 입었다는 것과 1813년 1월 3일 시드니의 키싱 포인트(Kissing Point)에서 그가 사망했다는 사실뿐이다.

 

필립 총독에 의해 백인들의 정착촌에 거주하며 백인들의 문화와 기독교 복음을 접한 베넬롱이 결국 백인들의 사회에도 호주 원주민들 사회에도 적응하지 못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들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큰 축복이었다고 볼 수 있다.

 

▲ NSW주 첫 번째주지사이자 시드니가 된 정착지의창설자 아서 필립.필립 총독은 베넬롱이 백인들의 정착촌에 잘 적응하는 것을 본 후에그를 자신의 집에머물게 했다. 그리고 백인들의 문화와 복음을 그에게전해 주려고 노력했다.     

 

한편, 베넬롱에게는 아들이 한 명 있었는데, 시드니에 거주하던 윌리엄 워커(William Walker) 목사가 그를 입양했다. 윌리엄 목사는 그에게 복음을 전했고 세례를 베풀었다. 그리고 그에게 토마스 코크 베넬롱(Thomas Coke Bennelong)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었다.

 

윌리엄 목사는 그에게 복음을 전해 그를 기독교인으로 개종시키길 원했다. 그래서 그는 토마스 코크 베넬롱에게 성경을 가르쳤고 서양식 교육을 받게 하였다.

 

윌리엄 목사는 토마스 코크 베넬롱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토마스 코크 베넬롱은 약 3개월 만에 성경 읽는 방법을 배웠다. 그는 성경 읽기 수업과 기도회 모임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자신이 속한 부족의 젊은이들에게 기독교 복음을 권했다. 그리고 그는 모든 일을 할 때 항상 기도했다.”

 

윌리엄 워커 목사는 토마스 코크 베넬롱을 잘 양육시켜 원주민 선교 사역에 참여시키길 원했다. 그가 많은 정성을 들여 토마스 코크 베넬롱을 양육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20세의 젊은 나이에 병을 얻어 사망했다.〠

 

정지수|본지 영문편집위원, 캄보디아 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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