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급의 행복을 누리는 곳, 교회

강승찬/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4/03/25 [16:09]

자동차를 구매하려고 하면 자동차의 등급이 나눠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편안함과 기동력과 안전에 대한 높은 기대감을 갖고 자동차를 구매하려고 하면 적어도 프리미엄급 이상의 자동차를 구매해야 한다. 

  

그래서 자동차의 가격은 같은 무게와 크기임에도 불구하고 몇 배, 몇십 배의 차이가 나게 된다.

  

행복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에도 등급이 있다.  가장 낮은 등급의 행복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소유했을 때 누리는 행복이다. 이것은 물질을 얻고, 내가 원하던 물것을 갖게 되었을 때 누리는 행복이다. 이것은 육체적 행복이요, 인스턴트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행복은 우리의 배고픔을 채워주는 작은 만족일 뿐이다. 성경은 이것을 ‘분복’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주신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복이로다” (전도서 5:18, 개역한글)

  

중간 등급의 행복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누리는 행복이다. 관계에 따른 행복도 친밀도에 따라 다시 등급이 나뉜다. 가족 안에서 누리는 행복은 중간 등급의 행복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행복이라고 성경(시128:1-4)은 말한다. 가족이 한 상에 둘러 앉아 교제하는 것이 최고의 축복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최상급의 행복은 무엇일까? 그것은 진리를 통한 행복이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누리게 되는 행복을 말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고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 안에서만 진정한 만족과 행복을 갖게 인간을 만드셨다. 그래서 인간이 누리는 최상급의 행복은 물질이나, 인간관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연합에서 누리는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치 태아가 어머니의 모태에 있을 때 누리는 완벽한 안정감과 같은 상태의 행복처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경험하는 행복이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다.

  

진리이신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성령님을 약속하셨고(행1:4), 기도하던 사람들에게 오순절날에 성령님이 오셔서 초대교회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성령 받은 사람들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에 환경과 상관없이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과 교제하며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누리며 살아가게 되었다. 

  

당시에 로마의 압제 하에서 고통당하며 억울함과 상실감과 박탈감 속에서  빼앗겼던 행복을 다시 누리게 된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그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었다. 

  

그들은 성령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이었고 그들이 모인 곳이 바로 교회였다. 사도행전은 성령을 소유한 초대교회 성도들이 어떻게 삶을 살면서 행복을 표현했는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들은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이 돌아가면서 빵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님께서는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 (행 2:44-47, 새번역)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람들을 대할 때 자신의  가족 이상으로 자신이 소유한 것을 나누며  이웃을 섬겼다. 더 많이 소유하고 움켜 쥐는 것으로 행복을 누리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데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신의 것을 나눠 줌으로써 진정한 행복을 누렸다. 이렇게 교회는 최상급의 행복을 누리는 곳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고금리 시대, 초인플레이션 시대, AI시대의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불행하다고 말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이 불행한 시대에 교회는 최상급의 행복을 누리게 해주는 현장임을 기억해야 한다. 최고의 행복 비결은 예수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있기 때문이다.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요 15:5)처럼 예수님과 완전한 연합을 이루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영적으로 육적으로 더 건강하고 더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강승찬|시드니새생명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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