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사랑 독도사랑 호주연합회 주최

세종대 독도연구소장 호사카 유지 교수 강연회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1/07/25 [12:43]

조국사랑 독도사랑 호주연합회(대표 고동식 장로)는 독도 지킴이로 알려진 호사카 유지 교수(세종대 독도종합연구소장)를 초청,‘역사적 사실로 본 독도’를 주제로 호주 순회 강연회를 개최했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이번 강연회에서 “독도는 이미 역사적으로 분명히 한국땅이다”라고 말하고 일본 측 주장과 한국 측 주장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일본 측 주장은 △독도는 일본의 고유영토이다. 일본은 늦어도 17세기 중반에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확립시켰다 △그 이전에 한국이 독도를 실효 지배했다는 증거가 없다 △1905년 일본은 독도를 ‘다케시마’라는 이름으로 시마네현에 편입시켜 영유권을 재확인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상 독도는 일본 영토로 확정되었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 측 주장은 △독도는 한국의 고유영토이다. 512년에 우산국에 신라에 복속되어 그때 울릉도에서 보이는 독도가 울릉도와 함께 신라에 귀속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1432) : <우산과 무릉 두 섬은(중략)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서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 신라 때 우산국이라 칭했다 △17세기 말에 일본이 울릉도 도해 금지령을 내려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도해를 금지했다 △1905년 일본의 독도 시마네현 편입은 한국이 일본에 한마디도 항의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무효이다”라고 호사카 유지 교수는 밝혔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1877년 일본 육군참모국이 작성한 ‘대일본전도’, 신찬 조선국 전도(1894), 해동여 지도(19세기 중반, 한국) 등  각종 역사적 증빙자료들을 제시하며 다케시마(울릉도) 아래쪽에 있는 섬이 마쓰시마=독도이다. 이 두 섬이 일본땅이 아니라 조선의 부속이라고 일본 정부는 결론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이어 호사카 유지 교수는 ‘평화조약 초안 작성’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1951년 7월, 한국정부가 독도를 한국 영토 조항 속에 포함해 달라고 미 국무성에 요구한 ‘러스크 서한’이 독도 문제의 시작이었다”며 러스크 서한의 중요 부분들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포츠담 선언 제8조와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독도에 대해, 일본 정부의 교묘한 왜곡행위와 미국을 설득하는 일본에 대해 설명하며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사실을 보다 세련된 방법으로 세계(특히 미국)를 설득해야 할 시기가 왔으며, 트위터, 인터넷 등을 통한 한국 논리의 세계적 확산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금번 호주 순회 강연회는 시드니한인연합교회(7월 9일), 시드니순복음교회(7월 10일), 캔버라한인연합교회(7월 14일), 멜본한인교회(7월 16일) 등 3개 지역에서 4회에 걸쳐 진행됐으며, 12일 저녁에는 이스트우드 양자강 별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1956년 동경에서 태어난 호사카 유지 교수는 동경대학공학부에 재학 중 『명성황후시해사건』에 관한 내용을 접해 ‘일본이 왜 한국을 침략했는가?’라는 의문을 풀기 위해 대학 졸업 후 한국에 유학했다. 그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3학년에 편입하여 일 년간 수학한 후 대학원에 진학,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1998년부터 세종대학교 일본학 전공 교수로 임용되었다.

석사 논문 제목은 <후쿠자와 유키치와 조선개화파>, 박사논문 제목은 <일본제국주의의 민족동화정책분석-조선, 만주, 대만을 중심으로>이다. 최종 학위는 정치학 박사이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1986년 한국인 여성과 결혼해서 2남 1녀를 두었으며, 2003년 한국에 귀화했으나 이름은 일본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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