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Jerusalem)

김환기/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1/09/26 [15:02]
요르단에서 이스라엘 국경으로 가는 길목에 ‘예수의 세례터’라는 푯말이 있었다. 전통적으로 예수께서 세례 받은 곳은 갈릴리 호수 근처의 요단강이라고 알려져 있다.  요한복음 1장 28절에는 세례요한이 세례를 주던 장소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 일은 요한이 세례를 주던 곳으로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된 일이니라.”  말씀을 의지하면 예수께서 세례 받은 곳은 갈릴리(Galilee)가 아닌 베다니(Bethany) 근처가 분명하다. 하지만 이 문제를 놓고 요르단과 이스라엘은 아직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특별한 증거나 증인이 없을 때는 목소리 크고 힘센 놈이 이긴다. 그래서 아직도 ‘베다니’보다는 ‘갈릴리’로 순례의 물결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 감란산에서 바라 본 예루살렘 구 도시 전경.     ©김환기


택시를 타고 요르단 국경에 도착했다. 요르단에서 이스라엘로 가려면 ’킹 후세인 다리’(King Hussein Bridge)를 건너야 한다. 출국은 별다른 조사 없이 쉽게 통과했지만, 입국 검문소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겨우 짐을 통과시키고 입국 심사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대기실에서 두 청년을 만났다.  목적지가 같음을 확인하고 택시를 합승하여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했다.  나와 네덜란드에서 온 친구는 아무런 문제없이 심사대를 통과했으나 뉴질랜드에서 온 친구에게 문제가 생겼다.

그는 이곳에 오기 전에 시리아를 들렸다. 이스라엘은 영토문제로 시리아와 아주 민감한 상태여서 국적을 불문하고 시리아를 거쳐 온 사람에게는 비자를 잘 주지 않는다. 이민관은 그에게 몇 장의 서류를 건네주며 적어 오라고 했다. 우리는 밖에서 30분 이상 기다렸으나 나오지 않아 버스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예루살렘  (Jerusalem) 

예루살렘은 어원적으로 ‘평화의 도시’ (IR=도시, SHALOM=평화)를 뜻한다. 하지만 이름과는 반대로 3천년 전 다윗 왕국의 수도로 세워진 이래, 수많은 침략자들에 의해 다스리는 자들이 바뀌고 주민들은 쫓겨나는 험난한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서기 70년 로마의 침략으로 나라를 빼앗기고 ‘디아스포라’가 되어 세계를 방황하던 유태인들은 드디어 1948년 꿈에도 그리던 나라를 되찾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47년 11월 29일 유엔 총회에서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고 있던 팔레스타인 땅의 약 56%를 유대인의 국가에 주는 팔레스타인 분할을 결의했다. 아랍권이 이를 거부했지만 유대인들은 1948년 5월 14일 전격적으로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했다.

 건국 당시 예루살렘은 유엔 통치 하에 두었다. 이스라엘의 독립 선포에 불만을 품은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로 구성된 아랍 연합군은 독립이 선포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을 침공하면서, 끝이 보이지 않는 분쟁의 서막을 올렸다. 

▲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십자가의 길'     ©김환기


1차 중동 전쟁의 결과로 예루살렘은 ‘동예루살렘과 서예루살렘’으로 분할되었다. ‘서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예루살렘 성’이 있는 ‘동예루살렘’은 요르단의 땅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6일 전쟁으로 알려진 제3차 중동 전쟁 때, 이스라엘은 선제공격으로 ‘동예루살렘’은 말할 것도 없이 ‘팔레스타인 전역’을 장악하게 된다.   

 
예루살렘의 구도시 (Old City)

현재 예루살렘은 ‘구도시와 신도시’로 나누어져 있다. 신도시 (New City)는 불과 150여 년 전부터 발전되기 시작하였다. 15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신도시가 구도시의 100배가 넘는 신시가지로 발달하였다. 구도시 (Old City)는 1평방 킬로미터에 불과한 성 안의 도시이다. 이곳은 세계 3대 종교의 성지이다. 유태교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렸던 모리아 산, 솔로몬의 성전이 있었던 곳. 기독교는 예수가 고난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 가셨던 곳. 이슬람교는 무함마드가 승천한 곳. 예루살렘은 그 어느 종교도 양보할 수 없는 성지가 되어 지금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나는 ‘비아돌로로사’(Via Dolorosa)의 길을  ‘동방정교회 교인’들과 함께 걸었다.  비아돌로라사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가신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이다.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재판 받은 곳에서부터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힌 곳까지의 약 1km 정도 거리이다. 이곳은 14개 처소로 구분되어 있다.

이 중 5처소는 ‘성분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 내에 있고, 나머지는 도로변에 있다. ‘구레네 시몬’이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제5처소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십자가의 길’의 끝인 14번째 처소는 무덤이다.  무덤에 이르러 “왜 이 길이 무덤에서 끝나야 하는 것인가”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 ‘십자가’가 ‘부활’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오래 전 ‘예수의 수난’에 관한 영화를 보았을 때, 부활 없이 십자가의 고난으로 막을 내려 진한 아쉬움을 품고 극장 문을 나온 적이 있었다. 부활 없는 십자가는 ‘반쪽의 완성’이다. 십자가는 반드시 부활로 이어져야 한다.  

 
예루살렘 신도시 (New City)

나는 ‘십자가의 길’을 마치고, ‘신도시’로 자리를 옮겼다. 이상하게도 ‘신도시’는 텅 비어 있었다. 대로의 가로등도 꺼져 있었다. 마치 도시 속의 사막을 걷는 기분이었다. 마침 길가 벤치에서 책을 읽고 있는 학생을 발견했다.

 “도대체 무슨 날인데 상점 문은 닫고, 심지어 가로등까지 꺼졌니?”

“오늘은 ‘욤 하 카페림’이예요” 

오늘이 유태인의 대속죄일(The Day of Atonement)이다. 조금 전 구도시에서 ‘비아돌로로사의 길’을 걸으며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의 고난을 묵상했는데, 신도시에서 ‘대속죄일’을 맞게 될 줄이야!

대 속죄일은 히브리어로는 ‘욤 하 카페림’이라고 부른다. ‘욤’이라는 말은 ‘날’(day)이라는 뜻이고, ‘하’는 정관사(the)이며, ‘카페림’은 ‘카팔’ 죄를 덮는다, 용서한다)는 말과 복수어미 ‘임’이 합쳐서 된 말이다.  그러므로 ‘욤 하 카페림’은 ‘죄를 덮는 날’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유태인들은 ‘대속죄일’이 되면 토라를 읽으며 금식하며 기도하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학생과 이야기를 하던 중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회당(Synagogue)이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0여 분 걸어 ‘예루살렘 큰 회당’(The Jerusalem Great Synagogue)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경비가 서 있었다.  그는 내 소지품을 검사했다. 나는 내부에서 사진을 찍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하얀 옷을 입고 ‘키파’(Kipa)를 쓴 유태인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성가대는 회중을 향하지 않고, ‘토라’가 안치된 성소를 향하여 찬양하고 있었다. 유태인의 찬양은 대부분 시편에 곡조를 붙인 노래이다.

오래 전 ‘종교 간의 대화’를 위하여 시드니에 있는 ‘임마누엘 회당’에 갔었다. 예배가 시작이 되자 ‘랍비’는 회중을 향하지 않고, 성소를 향하여 먼저 예식을 치르는 것을 보았다. 그때 나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는 ‘예배 인도자’가 먼저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오늘 ‘예루살렘 큰 회당’에서 찬양은 ‘사람 앞’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유태인들이 예배 드리는 곳은 ‘성전’(Temple)이 아닌 ‘회당’(Synagogue)이다.  로마에 의해‘제2성전’이 무너진 후 아직까지 성전이 없다. 그들은 ‘제3성전’을 건축할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때 그들은 ‘메시아’(Messiah)가 올 것이라 믿고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의 역사와 비밀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한다. 〠

 

김환기|호주구세군 다문화 및 난민 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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