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멀티센서리 예배인가? (4)

영국이 그리도 좋소?

문문찬/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4/10/27 [11:49]

"영국이 그리도 좋소?" 
 
누가 이렇게 물으면 난 대답한다.
 
“나의 영국 생활 중 가장 소중한 한 쪽(Slice)은 바로 영국 유적지(English heritage)를 감상하는 일입니다.”
 
물론 영국이 내 조국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산 날과 외국에서 산 날이 같아 그럴까? 주중 휴일인 월요일이 되면 카메라를 강아지로 삼고 아내와 함께 가까운 유적지를 찾아 로만틱 데이트를 즐긴다.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싫다는 아내를 모델로 삼고 사진을 참으로 많이 찍는다.
 
작년 여름에는 영국 스코틀랜드 꼭대기까지 가서 발도장 눈도장을 찍고 왔다. 나는 이러한 사진들을 정리하여 배경음악과 함께 주일예배 시간 멀티센서리 묵상용 자료(Reflective Worship)로 활용한다.
 
지난 주는 음악과 함께 가을 사진을 배경으로 한 묵상 중보기도를 준비했다. 예배 후 문간에 서서 교인들과 악수를 나누는 동안 한 교인이 말을 던졌다.
 
“You are a champion!” (당신은 챔피언!) 또 다른 한 교인은 “I love your photos!” (당신 사진 정말 좋아요!) 자찬하기에는 얼굴 뜨겁지만 예배 후 이런 말을 종종 듣는다.“여태껏 당신같은 목사가 없었다오...” 난 성만찬 예식 역시 철마다 나의 사진으로 편집된 파워포인트 의식(Communion Liturgy)을 준비한다. 세례식 역시 아이들의 사진을 수집하여 파워포인트 예배순서로 사용한 후 CD에 녹화하여 가족에게 세례 선물로 준다.
 
또한 가끔 교인들과 함께 멋진 장소를 물색하여 '기도 산책'(Prayer Walk)을 즐긴다. 가는 곳마다 홀로 혹은 그룹끼리 "기도 정거장"(Prayer station)에 잠시 머물며 자연 속에 심신을 파묻은 채 신령한 명상을 한다. 실제로 영국 교회들은 이러한 기도 산책을 많이 실습한다. 영국 사람들에게 걷는 것은 취미가 아니라 일이다.
 
영국 감리교회 헌법(CPD)에는 목회자는 하루 한두 시간 책상머리를 떠나 산책이나 취미생활을 하라는 항목이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또한 종종 듣는 말이 있다.
 
“놀 줄 아는 목사가 되시오.” “쉬는 것을 죄책감으로 여기지 마시오.” 목회자 심사 프로파일에도 반드시 취미생활을 묻는다. 교회 안팎에서 쏟아져 나오는 일만 따라다닐 것이 아니라 일을 포기하고 떠날 줄도 알라는 철저한 목회자의 정서생활 배려다. 이 얼마나 호강스러운 배려인가! 목회자의 정서세계가 흔들리면 온갖 어려움을 안고 찾아오는 신자들을 만나 건강한 목회를 할 수 없다는 염려차원에서다.
 
하지만 우리 한국식 목회 교과서는 쉬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에게 A학점을 매기려 한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혹 그래서 이 찬송이 애창곡이 되었는지 모른다. 남을 구원하기 전 먼저 내 자신(몸뚱이)을 구원해야 한다는 말처럼, 영적 지도자나 신자들 역시 정서생활에 리듬이 깨어지는 날 어떤 식으로 치유를 받을 것인가? 이런 이유 때문에 요즘에 와서 한국은 "힐링"(Healing) 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영국에는 "내셔널 트러스터"(NT, National Trust)라는 엄청난 재산을 관리하는 자선기관이 있다. 정부 기관이 아니다. 큰 부자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성(Castle)에서부터 저택, 산과 강을 낀 아름다운 토지들뿐만이 아니라 평생을 통해 대대로 수집한 온 세계 곳곳의 보물들까지 덤으로 기증한다. 게다가 운영할 수 있는 돈까지 놓고 떠나기도 한다.
 
지난 여름, 난 아내와 영국 왕족 친구로 지내던 한 여인이 헌납한 저택(Polesden Lacey)을 방문하였다. 저택과 정원은 물론이고 집안에는 세계 각처의 보물들로 가득했다. 그 중 아직도 현재 여왕의 소유인 금관(Tiara)을 볼 수 있었다. 바보스럽게 물었다.
 
“이 금관, 값을 따지면 얼마나 되나요?” 대답은 대답이 아니었다. “It’s priceless!” (값으로 매길 수 없답니다!)
 
나와 아내는 해마다 NT 멤버십으로 휴가 때나 휴일에 영국 전역 나들이를 즐긴다. 놀기 좋아하는 목사라고 가십거리로 삼지 마시오! 난 영국 유적지에 푹 빠져 정서욕(情緖浴)을 통해 영국 목회를 즐기고 있다오! 이것이 바로 나의 멀티센서리 재충전의 비밀이다.〠

문문찬|크리스찬리뷰 영국 지사장, 영국 감리교회 런던연회 포리스트지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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