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논의를 끝맺음하면서, 성경 전체에서 드러나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리를 확고히 믿는 것이 어째서 중요한 일인지를 말씀드려야겠습니다.
그런 복잡한 교리적인 문제는 그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에게만 중요한 것이지 우리 같은 평신도들에게는 별 해당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과 구원 전체가 이 문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의 진실성 여부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령 값비싼 물건을 파는 거래를 하는 경우에, 만일 대금으로 지불받은 돈이 가짜 지폐라면 어찌 되겠습니까?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일이 없도록 받은 지폐가 가짜인지 진짜인지를 확인하지 않습니까? 기독교 교리의 진실성 여부는 그보다 무한히 더 중요한 사안입니다. 우리의 앞으로의 영원세계의 진위 여부가 달려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니 다른 어떠한 문제보다도 이 문제에 신중을 기하여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자, 삼위일체 교리에 확신을 갖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논의에서 드러납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속죄의 문제가 이와 결부되어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 아니시고 창조된 피조물에 불과하다면, 그가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받으사 우리 죄를 위하여 피를 흘리셔서 우리로 하여금 구원을 얻게 하셨다는 그 모든 사실이 허사가 되고 말 것입니다. 피조물에 불과한 자의 죽음이 어떻게 우리의 죄를 속하는 죽음일 수가 있겠습니까? 성경의 위대한 가르침은, 죄악 가운데 있어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는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성부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과 동등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나게 하셔서 그들을 대신하여 죽게 하심으로써 그들이 받을 심판을 대신 받게 하셨고, 그것을 근거로 그 백성들의 죄가 씻음 받고 그리하여 하나님 자신 앞에 설 수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자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과 동등한 하나님이요 동시에 완전한 사람이 아니시라면 그의 죽음은 그저 수많은 다른 사람들의 죽음과 별로 다를 게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다시 부활하심으로써, 자신의 죽음이 인류의 죄를 씻는 속죄의 죽음이었음을 만천하에 드러내신 것이었습니다. 둘째, 성자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게 되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신약성경의 “칭의”(稱義)의 가르침 전체가 헛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만일 성자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 아니라면 그의 죽음은 인류의 죄를 씻는 속죄의 죽음이 될 수가 없고, 그의 죽음이 속죄의 죽음이 아니라면 신자들의 칭의도 허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칭의가 허구가 되어버린다면, 죄인이 대체 무엇을 근거로 무한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서 그에게 예배하며 그와 교제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칭의의 교리는 오직 성경에만 계시되어 있는 기독교의 유일무이한 가르침입니다. 세상의 다른 어떠한 종교에도 그런 가르침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과연 참되신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칭의’의 교리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허구가 되면, 기독교가 다른 여타 세상의 종교들과 다른 게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이 무한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이 아니라면 과연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를 기반으로 삼아 하나님께 경배하고 기도하는 모든 행위 자체가 무의미해집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면 그의 이름으로 하는 우리의 모든 신앙적인 행위들이 허사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나아가 그에게 기도하고 그를 예배하는 모든 행위들은 그야말로 헛된 것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넷째, 만일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고 그저 피조물에 불과한데도 죄인이 그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것이라면, 이는 하나님에게 돌아갈 존귀와 영광을 피조물에게 돌리는 것이 될 것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은 자신의 존귀와 영광을 다른 피조물이나 우상에게 돌리는 행위를 그냥 묵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사 42:8; 48:11, 등). 구약성경에서 누누이 드러나는대로, 그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출 20:5)이십니다. 그런데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자에게 존귀와 영광을 드리다니요? 이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면치 못하는 행위가 되고 말 것입니다. 〠 원광연|크리스찬리뷰 편집위원 <저작권자 ⓒ christianreview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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