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글/주경식 사진/권순형 | 입력 : 2023/06/26 [12:15]

▲ 교통사고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병상에서 주님을 만난 박민환 형제.     

 

그의 이름은 박민환 형제. 지난 3월 퍼스 어윈부대(IwinBarracks)에 있는 가평 길을 취재하기 위해 퍼스에 갔을 때 취재 후에 꼭 그를 만나 인터뷰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자 일행은 그를 만났다.

 

기자가 그를 처음 보았을 때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이 힘들었다. 그의 머리 한쪽은 움푹 파여 있었고 그의 얼굴은 일그러지고 오른쪽 눈은 불편해 보였으며, 이마와 미간 사이에 길게 나있는 흉터자국은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웠다. 한마디로 그의 얼굴이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오다

 

2008년 7월 24일 그는 여자 친구가 운전하는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차가 전복되는 대형사고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다.

 

서호주 프랭크랜드 리버 와이너리(Frankland River Wineries)에서 농장일을 하던 그가 그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싶어 술을 사러 가자고 여자 친구에게 말했다. 그리고 여자 친구가 운전하는 오랜된 포드 팔콘 웨곤차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다 갑자기 원인도 모른 채 차가 전복되면서 상상도 못한 사고가 발생했고 그는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된 것이다.

 

이 사고로 그의 뇌는 크게 손상되었고, 목은 부러졌으며 오른쪽 안구가 빠져버렸다. 사고 후 비상 구조헬기에 의해 200km 떨어진 알바니 병원(Albany Hospital)으로 이송되었지만, 그 병원에서는 그에게 응급조치만 할 수 있었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이후 그는 다시 알바니 병원에서 로얄 플라잉 닥터(Royal Flying Doctor) 경비행기로 500km 떨어져 있는 퍼스의 로얄 퍼스 병원(Royal Perth Hospital)으로 옮겨져 10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받게 된다.

 

의사들은 그의 뇌손상의 상태가 매우 심각해 죽거나 살아도 의식이 없는 식물인간이 되거나 다행히 살아도 전신마비의 상태가 될 것으로 진단했다.

그도 그럴것이 전두엽 부분의 뇌가 심하게 손상되었고 목뼈가 부러져서 몸을 움직일 수 없었고 안구까지 빠져서 최악의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병상에서 주님을 만나다

 

그는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호주에 왔다. 학점이 좋았던 그는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담당교수의 조언으로 대기업 취직을 위해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서호주에 온 것이다. 그리고 잠시 와이너리에서 농장일을 하면서 그의 말대로 허랑방탕한 삶을 살고 있었다.

 

▲ : 불의의 고통 사고로 뇌는 크게 손상되었고, 목은 부러졌으며 오른쪽 안구가 빠져버린 박민환 형제.     

 

▲ 김신일 목사는 박명환 형제가 의식 없이 병상에 누워있을 때에 7개월여 동안 병상을 찾아와 위로와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저는 어렸을 때 주일학교 몇 번을 빼고는 평생 교회를 다녀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술, 담배를 어렸을 때부터 일찍 배워 술과 담배를 달고 살았고 호주에 와서는 백패커(back packer)로 살면서 외국인들에게 마리화나도 배우고 향락을 추구하며 살았습니다.

 

그날도 술을 마시기 위해 술을 사러 가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는 사고 후 두 달을 의식없이 침대에 누워있었다.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때 퍼스한인회에서 박민환 군의 사고 소식을 듣고 한인회 총무로 있던 박근서 집사가 본인이 다니던 교회(퍼스한인연합교회)의 김신일 목사에게 소식을 전하게 된다. 소식을 접한 김신일 목사는 교회에 그를 위한 중보기도를 부탁하고 온 교회가 열심히 그를 위해 중보했다.

 

주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신 것일까? 기적적으로 박민환 형제는 두 달 후에 의식이 돌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겨우 오른쪽 손만 간신히 움직일 수 있었다.

 

이때 김신일 목사는 자주 그의 병상을 찾아와 위로하고 기도해 주었다.

 

“처음에는 싫었습니다. 어떤 아저씨가 찾아와서 신앙이 없는 저에게 기도해준다며 앉아 있다 가는 것이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도 목사님은 꾸준히 찾아오셨고 그렇게 오래되다 보니 안오시면 서운해졌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제가 의식이 없었을 때도 목사님이 거의 매일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저에게는 바울과 같은 분이십니다.”

 

그는 병원에 7개월을 누워 있었다. 처음 두 달은 의식없이 누워있었고 의식이 돌아온 후에도 목이 부러졌기 때문에 몸을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어려웠다. 그렇게 또 두 달을 누워 있었고 그 후 조금씩 재활훈련을 하며 7개월 후에 목발을 짚고 퇴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그가 병원에 있었을 때 고맙게 친구들이 곁을 지켜 주었고 무엇보다도 김신일 목사가 청년들과 함께 거의 매일 방문해 주었다.

 

그는 그의 나이 25세 동안 교회를 다닌 적이 없는 친구였다. 어렸을 적에 주일학교에 몇 번 나간 기억은 있어도 그의 평생 신앙을 가져본 일이 없었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절망적이고 힘들 때 그를 찾아와 위로해 주었던 목사님의 호의가 고마워 교회에 출석하기로 결심했다.

 

노방전도가 재활훈련이 되다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리고 차츰 교회에 출석하면서 신앙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 김신일 목사는 그에게 전도를 해보면 어떻게냐고 전도를 권면했다.

 

“이제 저는 기적적으로 살아났고 너무 감사했어요. 저는 이제까지 술마시고 방탕하며 육욕을 쫓아 살았는데 저를 사고에서 살려주시고 주님을 만나 새생명을 얻게된 것이 너무 감사했어요. 그래서 목발 짚고 머리가 흉해서 헬멧 쓰고 주말마다 교회 청년들과 함께 노방전도를 시작했어요.

 

▲ 주님을 만나 새생명을 얻고 기적적으로 살아난 박민환 형제는 원주민 전도에 전력하고 있다.     

 

그때 퍼스에는 노방전도하는 팀이 하나도 있지 않았어요. 이렇게 매주 노방전도를 하다보니 자연히 많이 걷게 되어 이게 자연스럽게 재활훈련이 되었어요.”

 

천사를 붙여주시다

 

주님은 그에게 좋은 인권변호사를 붙여 주셨다. 그가 사고를 당해 병원에 누워 있는 동안 가장 큰 문제는 병원비와 앞으로의 생활비였다. 사고난 차는 다행히 보험에 들어 있었지만 보험금을 받기 위해서는 많은 법적인 절차들이 필요했다.

 

이때 국선 변호사인 도나 퍼시(Donna Percy)를 만나게 되었다. 돈이 없어 국선 변호사를 통해 법적 절차의 도움을 받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분이 퍼스에서 제일 유명한 상해전문 인권변호사였던 것이다.

 

도나 씨의 도움으로 충분한 보험금을 받게 되었고 의무적으로 몇 번 넣었던 연금을 통해 많은 금액의 연금까지 지급받게 되었다. 도나 변호사는 국선 변호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도와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어느 주일 오후 도나 변호사가 그를 찾아왔다. 휴일인데 일부러 시간을 내어 그를 찾아온 것이다. 박민환 형제는 당시 신앙이 뜨겁게 성장하던 때라 얼마전 교회에서 김철환 캄보디아 선교사로부터 캄보디아 어린이들이 예배당이 없어 뙤약볕 아래에서 예배를 드린다는 말을 듣고 그 어린이들이 불쌍해 어떻게든 돕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김철환 선교사님 이야기를 들었어요. 제가 어려움을 겪어봐서 힘든 걸 알잖아요. 캄보디아 어린이들이 예배당이 없어 뙤약볕 아래에서 예배를 드린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어요. 어떻게든 돕고 싶었어요.

 

당시 저는 믿음이 깊지 않아 매주 복권을 샀었어요. 그날도 복권을 사고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 복권이 일등에 당첨되면 이 복권의 십일조를 캄보디아 선교비로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도나 변호사가 주일 오후에 찾아 온 거에요. 그래서 웬일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너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주려고 일부러 왔다는 거예요. 알고보니 저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의무적으로 몇 번 넣지도 않은 슈퍼 에뉴에이션에서 연금이 12만 불이나 나왔다는 거예요.

 

도나 변호사가 법적 절차를 거쳐 찾아준 거에요.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막상 그돈이 생기니까 만 불을 캄보디아에 예배당 짓는데 보내려니까 아까운거예요. 그래도 경상도 남자의 자존심이 있어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은행에서 그돈을 부치고 나오는데 기차역까지 한 10분을 걸어오는데 갑자기 하늘을 보니 하늘도 너무 푸르고 나무들도 달라 보이고 예전에 보던 그 풍경이 아닌 거예요. 마음도 얼마나 편하고 세상이 어찌나 아름답게 보이던지 그때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깨달아지며 하나님의 은혜가 제 안에 훅하고 들어왔습니다.”

 

기적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그는 사고 당시 오른쪽 안구가 빠져나왔다. 오른쪽 뇌가 많이 파손되고 오른쪽 눈가의 살들도 떨어져 나가 안구신경은 이미 죽은 상태였다. 사고 당시 응급으로 오른쪽 안구를 다시 넣었지만 오른쪽 눈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몇 개월을 지내고 있었는데, 안과 전문의가 정밀진단을 해보니 안구신경이 이미 죽은 상태이고 이런 상태에서 보이지도 않는 눈을 계속 넣고 있으면 감염 리스크도 크고 생명에 지장이 있을 수 있으니 안구를 빼고 그냥 봉합하는 것이 생명에 안전하다고 추천하였다.

 

그러나 신앙의 눈을 조금씩 떠가던 그는 하나님께서 살려주신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안구를 빼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1년 후 그는 안과에 가서 정기검사를 하는데 검사표의 큰 글씨가 보이는 것이었다. 그럴리 없다고 의사가 기계에 앉혀 정밀검사를 했는데 기적같이 그의 죽은 시신경이 살아난 것이다. 의사는 그에게 기적이 일어났다고 놀라며 소리쳤다.

 

“그때는 이미 제가 믿음이 들어와 있었고 어떻게 보면 안구를 뽑는게 이성적인 판단이긴 했는데 이상하게 하나님께서 무슨 계획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안구를 뽑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년 후 안과 전문의에게 가서 정기검사를 하는데 왼쪽 눈 검사를 마친 후 오른쪽 눈 검사를 하는 데 맨 큰 글씨가 보이더라고요.

 

원래 손가락도 안보였는데... 그래서 제가 큰 글자를 맞히니까 검사가 잘못됐다고 눈검사 기계 앞에 앉으라 하더라고요. 그래서 앉았는데 살펴보더니 ‘기적이 일어났다. 시신경이 돌아왔다며 축하한다.’ 그러더라고요.

 

그때는 제가 믿음이 뜨거울 때여서 최고 높은 안과교수에게 제가 그랬습니다. ‘It's not a miracle, it's the grace–기적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한국에서 만난 천사

 

그는 다행히 치료가 잘되었고 법적인 절차도 마무리되어 2011년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는 교통사고를 당해 몸은 많이 불편하게 되었지만 영적으로는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에게 또 다른 천사를 한국에서 붙여 주셨다.

 

로얄 퍼스 병원에서 수술과 재활은 잘 되었지만 그의 얼굴은 정상이 아니었다. 움푹 파인 머리와 얼굴에 남아있는 수술 흉터 등은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이 부담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가 살았던 대구의 동산병원을 찾아갔다. 그리고 세계적인 성형외과의사인 한기환 장로를 소개받았다. 한기환 장로는 박민환 형제의 이야기를 듣고 무료로 그의 성형수술을 도와주었다.

 

“주님은 한국에 나가 동산병원의 한기환 장로님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그분은 나중에 알고보니 세계에서 알아주는 베스트 성형외과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분이 제가 캄보디아와 카자키스탄에 예배당을 짓고 제가 신앙적으로 헌신하는 모습을 들으시고 3년 동안 특진비 하나도 안받으시고 성형수술을 다 해주셨습니다.”

 

▲ 박민환 형제는 배상금을 받아 캄보디아 학교 건축을 위해 후원했다.     

 

▲ 원주민과 노숙인 전도 사역에 헌신하고 있는 박민환 형제.     

 

에필로그

 

그는 2014년 퍼스로 다시 돌아왔다. 주님께서 그를 호주로 다시 부르셨다. 현재 그는 퍼스에서 커뮤니티 서비스 공부를 하면서 노숙자 사역과 전도 사역을 열심히 하고 있다. 박민환 형제는 인터뷰하는 내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교통사고로 잃은 외모보다 그가 교통사고를 통해 만나게 된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더 가치있다고 자신있게 고백한다.

 

그의 감사의 고백을 들으며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글/주경식 | 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사진/권순형 | 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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