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카이로 (Old Cairo)

좌충우돌의 성지순례(16)

김환기/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1/03/28 [12:08]
‘올드 카이로’는 외국인에게는 '콥틱지역', 카이로 사람들은 ‘구 시가지’라는 의미의  '마스르 알 카디마'로 불린다. 이곳에는 회교, 유태교 그리고 기독교가 공존하고 있다.  카이로 신 시가지에서 전철을 타고 30분 정도 가서‘Mar Girgis’ 역에서 내리면 된다. 전철역 바로 앞에 ‘세인트 조지 교회’, 그 옆에 ‘콥틱 박물관’이 있다.  교회 좌측으로 조금 가면 지하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좁은 지하 길을 따라 가면 ‘아기 예수 피난 교회’가 보인다.    
 
▲ 콥틱 지역으로 불리는 올드 카이로 거리 풍경    ©김환기

세인트 조지 교회 (Church of St. George)  

주일에 ‘세인트 조지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교회가 크고 유명해서 많은 사람들이 참석할 것이라는 기대 속에 이곳을 찾았다. 기대와 달리 10여 명만이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교회 내부는 어두웠다. 아마 ‘콥틱교회’의 분위기가 이런 것이 아닌가 짐작하여 본다. 중앙에 달려 있는 큰 샹들리에 빛이 내부를 밝히고 있었다. 정면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 상이 있고, 왼쪽에는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앉고 있는 성화가 있다. 나는 조용히 뒷자리에 앉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앞 사람이 일어나면 따라 일어났고, 앉으면 나도 앉았다.

나는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2008년 8월에 ‘종교 간의 대화’를 위하여 ‘본다이’에 있는 ‘임마누엘 회당’에 간 적이 있었다. 안식일 집회가 오후 9시에 있는 것을 알고 회당 랍비에게 연락해서 참석할 의사를 밝혔다. 히브리어로 집회가 진행되니 조금 걱정된다고 했다. 그때 랍비가 이렇게 조언을 해주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앞 사람이 일어나면 같이 일어나고, 앉을 때 따라 앉으면 됩니다” 

예배가 무르익어 갈 때쯤 사람들이 앞으로 나간다.  사람들은 줄을 서서 사제가 들고 있는 접시 안의 음식을 머리를 숙이고 입을 대고 먹는다. 근엄한 사제복을 입고, 긴 수염을 한 사제의 거룩한 모습은 성찬식에 참여한 모든 이들을 회개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집트는 회교 국가이다. 회교 국가의 성일은 ‘금요일’이다.  모슬렘 교리에 따르면 아담을 창조한 날이 금요일이었고, 범죄를 저질러 쫓겨난 날도 금요일이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날도 금요일이다. 뿐만 아니라 최후의 심판이 행해지는 날도 금요일이다. 회교 국가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일예배’를 드릴 수가 없다.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예외가 될지 모르겠지만, 공동체에 속하여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금요일에 무슬림은 모스크에서, 크리스찬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다. 그래서 주일인 오늘 ‘세인트 조지 교회’에 사람들이 없었던 것이다.      


 콥틱 박물관 (Coptic Museum) 

‘콥틱(Coptic)’이란 뜻은 당시에 ‘알렉산드리아’에 살고 있던 디아스포라 유태인들이 ‘복잡한 이집트어’를 공용어인 ‘희랍어’로 단순화한 한 글을 ‘콥틱어’(The Coptic Language)라고 한다. 콥틱어는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판독하는 수단으로, 특히 고대 문자의 발음에 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모슬렘 세력이 이집트를 점령하고 나서 언어를 아랍어로 바꾸었지만, 알렉산더에 살고 있던 기독교인들은 끝까지 자신들의 언어인 ‘콥틱어’를 고수하였다.

그 후 기독교인들이 ‘콥틱어’를 사용함으로 ‘콥틱교’라고 불리게 되었다. ‘콥틱교’는 정교회에 속해 있다. 기독교를 크게 분리하면 로마 중심으로 발달한 ‘서방교회’인 가톨릭과 ‘콘스탄티노플’ 중심으로 발달한 ‘동방 정교회(Orthodox Church)’가 있다.  정교회는 그리스 정교회, 러시아 정교회, 앗시리아 정교회 등 국가 이름을 사용하지만, 이집트는 ‘콥틱교회’(Coptic Church)’라고 한다.

 ‘콥틱교’를 논할 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수도원 운동’이다. 수도원 운동은 콥틱교에서 시작하여 세계로 확산되었다. ‘올드 카이로’에 가면 ‘콥틱 박물관’이 있다. 장식된 많은 유물들이 ‘수도원’과 관련이 있다. 유물들은 사막의 기후 덕분에 잘 보존되어 있었다. 박물관을 관람하면서 ‘사막의 교부’들이 콥틱교 출신임을 알게 되었다. 

박물관 내부에는 유명한 ‘사막의 교부’(Desert Fathers)인 ‘안토니우스(AD 250-353)’에 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당시 ‘안토니우스’에 의해 시작된 ‘수도원 운동’은 ‘동방교회’뿐 아니라 ‘서방교회’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 ‘영성’(spirituality)이란 용어는 아마 이때를 기원으로 삼아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 콥틱 박물관      ©김환기

아기예수 피난교회 (The Church of Abu Serga) 

성서의 마태복음 2:13-1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헤롯왕의 박해를 피하여 애굽으로 갔다.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아기예수 피난교회’는 요셉이 아기 예수를 데리고 피난 갔을 때 머물렀던 천연 석회암 동굴 위에 지었다고 한다. 일명 '아브사르가의 교회'(The Church of Abu Serga)라고도 하는데, 4세기 초 순교한 ‘성 세르기우스’의 이름을 딴 것이다.  교회는 본당 옆으로 2개의 복도와 3개의 지성소가 있고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상징하는 12 기둥 중에서 가롯 유다를 상징하는 기둥은 거친 검붉은 색 대리석으로 되어 있다.

학자들은 예수님의 애굽 체류 기간을 일반적으로 3년 6개월~7년으로 추정한다. 얼마 전 TV에서 방영된 아기예수의 피난길을 추적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물론 2000년 전의 사건이니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아직도 아기예수가 그곳을 지나갔다고 주장하는 지역에 ‘콥틱교회’들이 있음을 알았다. 구체적으로 예수님과 관련된 유물을 제시하는 교회들도 있었다.

'베들레헴'에서 '시나이 반도’를 지나 이집트까지의 경로는 결코 쉬운 여정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통과하는데 40년이 걸린 길이다. 더구나 아기예수를 데리고 가는 요셉과 마리아의 여행을 상상해 보라. 당시 예수가족이 겪었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다음 목적지는 ‘지중해의 진주’라 불리는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이다.  BC 332년 알렉산더 대왕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세운 도시이다. 이곳에 콥틱교 제1대교황인 ‘성마가’의 유골이 있다.  고대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알렉산드리아 등대’와 고대세계에서 가장 컸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있었고, 그리고 그 유명한 ‘70인역(셉투아진트)’이 번역된 곳이다. 〠
 
▲ 아기예수피난 교회       ©김환기


김환기|호주구세군 다문화 및 난민 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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