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과 진리로 드린 예배자 (1)

“영광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0-26)

정지홍/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2/03/26 [11:33]

사마리아인들과 유대인들은 각기 다른 장소에서 예배를 드렸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렸고, 사마리아인들은 “이 산”이라 지칭한 그리심산에서 예배를 드리며, 서로가 자신들의 예배가 참된 예배라고 주장을 했다. 사마리아 여인은 궁금했다.

그래서 어느 곳에서 드리는 예배가 진짜 예배인지를 예수님께 물었다. 예수님은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21절)라고 하셨다. 예배는 장소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말씀이다. 예배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니고, 아버지께 예배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예배의 본질이다  

그동안 사마리아인도 또 유대인도 장소에 얽매여서, 정작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서로 이 산이 옳다 예루살렘이 옳다고 목소리만 높였지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었다. 우리도 이럴 수 있다. 하나님보다 예배 장소, 예배의 도구, 예배의 분위기 등 이런 것들에 얽매일 수 있다. 물론 이런 것들도 중요하다. 그러나 예배의 본질은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이다. 만일 다른 이유들로 인해 하나님을 잊어버린 예배를 드렸다면 그것은 예배에 실패한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께 집중해야 한다. 예배는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하나님, 그분 한분께 집중해야 된다. 지난 시간들, 내가 세상에서 보낸 시간들은 다 내려놓고, 나의 죄와 허물, 나의 아픔과 상처, 나의 걱정과 염려의 보따리를 다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 한 분에게 우리의 모든 초첨을 맞추어 예배를 드려야 한다. 즉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이다.

그런데 사마리아와 유대인들은 그렇지 못했다.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면서도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에겐 관심이 없었다. 더욱이 그들은 자기들이 만든 성전 안에 하나님이 갇혀 있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온 우주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계신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행 17:24). 하나님은 “이 산이나 예루살렘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다면, 하나님은 그 곳이 어디든 함께 계신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하나님은 오늘도 예배하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 이스라엘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의 번제를 드렸다. 그밖에도 속건제, 속죄죄, 소제, 화목제를 드렸다. 그래서 성전에서는 거의 매일, 매시간이 예배의 연속이었다. 얼마나 예배가 많고 또 얼마나 예배가 중요했으면, 하나님이 예배만을 준비하고 집례하도록 레위지파를 따로 세우셨을까!

그렇다면 예배하는 사람도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매일, 매시간마다 예배를 드리러 오는 사람들, 예배를 준비하는 레위지파들, 예배를 집례하는 제사장 무리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런데도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하신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는데도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신다. 왜? 참된 예배자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한 예배자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도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용철야예배, 새벽예배, 찬양예배, 열린예배 등 예배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이런 우리를 향해 하나님은 무어라고 하실까? ‘이제 그만해라. 예배자가 넘친다’라고 하실까? 아니면 예배의 홍수 속에서도 여전히 ‘내가 예배하는 자를 찾고 있다’라고 하실까? 깊이 생각해볼 문제다. 

 
영으로 드리는 예배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된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이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그렇다면 “영과 진리”의 예배가 무엇일까? 먼저 “영”으로 드리는 예배는 in spirit, 영적인 예배를 뜻한다. 헬라어로 프뉴마. 프뉴마는 영, 영혼, 성령을 뜻하는 단어다. 그래서 영으로 드리는 예배는 우리의 영혼으로 부터 나오는 예배, 우리의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하나님을 사모하는 심령으로 드리는 예배다.

입술로는 찬양도 하고 귀로는 말씀도 듣는데, 영혼이 움직이질 않고, 전혀 영혼의 울림이 없다면, 영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니다. 다윗은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시 103:1)라고 고백했다. 우리의 속에 있는 것들, 즉 우리의 영혼으로 송축하고 찬양하는게 영으로 드리는 예배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영이 거룩하지 못하다는 데 있다. 인간이 타락했다고 할 때, 그것은 육신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 즉 우리의 영까지도 타락했음을 의미한다. 타락하고 오염된 영혼을 들고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의 영이, 반드시 성령과 연합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예배를 드려야 한다. 우리의 영이 성령과 연합해야 한다.

이것은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의 영혼이 성령님에 의해 새로워진다. 죄되고 타락한 우리의 영혼을 성령님이 거룩하게 하신다. 그때부터 우리는 “영으로” 즉 우리의 영과 성령이 연합한 “영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의 영이 성령과 연합하여 드리는 예배를 드리면 우리의 몸도, 우리의 삶도 변한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성령님이 일하신다. 예배를 통해 성령의 새 바람이 우리의 삶에 불어온다. 그러면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 그래서 영으로 드리는 예배가 중요하다. 

 
진리로 드리는 예배

또한 참된 예배는 ‘진리’로 드려야 한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 최상의 가치다. 그래서 언제 어느 때나 참된 것이 진리다. 진리는 상황이 변했다고 해서 흔들리지 않는다. 진리는 오래되었다고 해서 퇴색하지도 않는다. 언제나 지고지순한 참된 가치로 존재하는 것이 진리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러한 진리가 없다. 권력이 아무리 막강해도 진리가 될 수 없다. 권력이 물러갈 때면 언제나 무상하기 때문이다.

물질이 아무리 많아도 결코 진리가 될 수 없다. 오히려 물질 때문에 타락한 인생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지식도 진리일 수 없다. 지식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원하신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언제나 동일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도, 긍휼도, 은혜도 변함이 없다. 그래서 그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는 변하지 않는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 그렇다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진리, 죽어서도 변하지 않는 진리가 무엇이겠는가?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리가 되신다.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이고, 예수님의 삶이 진리이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진리이다. 예수님의 무엇 하나 진리가 아닌 것이 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14:6을 통해 스스로 밝히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진리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예배할 자가 없다.

그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이다. 그래서 진리는 곧 그분의 말씀입니다.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예배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고 그 말씀이 내 심령에 새겨지고 내 삶의 발걸음을 인도할 때, 우리는 진리로 예배하는 자가 될 수 있다.

말씀과 동떨어진 삶으로 드리는 예배, 예배당 안의 모습과 예배당 밖의 모습이 전혀 다른 삶으로 드리는 예배, 이것은 결코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아니다. 말씀과 삶이 일치하는 예배가 진리로 드리는 예배다.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으로 증거되는 예배가 진리로 드리는 예배다.

하나님은 오늘도 참된 예배자를 찾고 계신다. 하나님은 참된 예배를 통해 교회의 부흥을 일으키고 이 세상을 새롭게 하신다. 참된 예배는 오직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령과 연합하여 드리는 영의 예배, 그리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온 삶으로 드리는 진리의 예배가 참된 예배다.

우리 모두 성령님을 사모하고 성령님께 붙들리고, 말씀이신 주님을 우리의 삶으로 나타내자. 그때 우리의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참된 예배가 될 수 있고, 우리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된 예배자가 될 수 있다.〠

 

정지홍|좋은씨앗교회 담임목사 blog.daum.net/goodseedchurch
 
광고
광고

  • 포토
  • 포토
  • 포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