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 ” (레위기 27:30)
오늘 성구의 주제, 십일조는 뜨거운 감자다. 내 경험은 “조심스럽게 다루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건 내 유형이 아니다.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십일조 드려라. 아니 십일조 정도로 만족하지 말라. 가능하면, 수입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라! 적신으로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의 것이라고는 본디 아무것도 없었다.
천지 만물이 하나님의 것이니, 원래 주인께 돌려드리면 된다. 이 정도에서 화가 나면, 이 글 그만 읽고 눈을 씻고 귀를 털어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당신을 준비하실 때까지 기다리라. 그러나 마음에 찔림이나 감사가 있다면 계속 읽으라.
십중팔구, 어려운 중에도 십일조를 꾸준히 드리는 사람은 ‘맞다’고 감사하며 더 드리고 싶어 할 것이고, 마음은 있으나 형편상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는 사람은 ‘어쩌나’하는 찔림이 있어 드리기를 계획할 것이고, 여유가 있어도 십일조를 ‘안 드리는’ 사람은 매우 화가 날 것이다.
십일조는 “수입 전부가 다 내 것인데, 그중에서 1/10은 하나님께 드린다’가 아니다. “내 수입과 재산 전부가 다 하나님의 것인데, 잠시 나에게 맡기셨으니 나는 선한 청지기 정신을 지닌 관리자로 그중 1/10은 하나님께 특별한 목적을 위해 미리 구별하여 드리고, 나머지 9/10 역시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되도록 나와 가족, 이웃의 필요에 따라 재량껏 나눠 사용한다. 나에게 맡기신 분이 장차 나와 회계하실 것이다.”
이것이 위에서 내가 ‘수입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라’라고 말한 의미다.
십일조에 관해 말이 많다. 원래 핑계하는 사람은 말이 많은 법이다. 성경을 믿는가? 그럼, 아주 간단하다.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라. 다른 설명, 변명, 또는 고상한 신학적 해석이 필요치 않다.
구약은 그 명백함과 광대함 때문에 일단 젖혀 놓더라도, 신약에서 그것도 예수님께서 직접 십일조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셨다.
외식하는 자들의 기도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누가복음 18:12)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태복음 23:23).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버렸다”라는 것이 그들의 문제였다. 금식과 십일조는 오히려 그들의 자랑이다. 예수님께서는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라”했다. 참 경건의 능력을 버린 채 경건의 형식만을 행해 전시하고 있었던 외식하는 자들이 예수님 당시에 있었다.
코로나에서 점차 자유로워지고, 예배를 회복되면서 맞는 첫 부활절에 예수 사랑과 순종의 구체적인 행동으로 십일조를 부활시켜보자.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믿음 생활의 핵심이 되는 가르침도 잘 이행하지 못하면서, 믿음의 형식마저도 취하지 않는 이런 후안무치의 대담함은 어디에서 나올까? 높고 깊고 넓은 사랑으로 무한히 용납하고 영원히 구원한 하나님의 은혜를 알기는 할까?
십일조는 나에게 돈보다는, 헌신이나 경건 훈련과 더 관련된 주제다. 시드니에서 30년 넘게 목회했지만, 청소하고 사진 찍고 액자 만드는 생활인으로 살아온 나는 이민자 삶의 고달픔을 안다. 나도 일해서 먹고사는 생활인으로 나눈다.
“어떻게 번 돈인데! 누구나 아깝다. 주께서 우리 형편 다 아신다. 조급해하지 말라.” 공감하는 목회자로 내가 말한다. “무리는 하지 말고 형편에 맞게끔 마음이 준비되면 자원하여 인색하지 않게 드림을 실천하십시오.”
영혼이 깨어나기를 바라는 설교자로 내가 외친다.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여 자신의 것으로 쓰지 말라. 결단하고 온전한 십일조, 그 이상을 당장 드리기 시작하라. 그래서 십일조가 원래의 목적대로, 교역자의 생활비, 공동체의 축제, 가난한 이들의 구제를 위해서 사용되도록 하라.”
그러나 이런 사람은 십일조 하지 말라. 하고도 불평할 사람, 자기 자랑, 공로, 의로 삼을 사람, 더 드렸다는 비교 우위에 빠질 사람, 나머지는 자기 뜻대로 사용하겠다는 사람 등 십일조의 근본정신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의무나 복채로 알고 율법적으로 행하는 사람에게 십일조는 복이 아니고 오히려 화가 될 것이다. 숫자에 얽매이지 말고, 자원하여 자애롭고 자유롭게 감사를 나눠 서로를 평균케 하려는 마음으로 드리라. 이것이 봉헌의 원리다. 〠
서을식|시드니소명교회 담임목사 <저작권자 ⓒ christianreview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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