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과 진리로 드린 예배자 (2)

“영광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0-26)

정지홍/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2/05/02 [12:33]

예배는 멋진 솜씨로 찬양을 하거나 듣기 좋은 설교를 듣는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주님의 사랑과 희생을 온 몸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이같은 예배는 절로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못 자국 난 주님의 손과 발을 내가 직접 만져보아야 한다. 창자국 난 주님의 옆구리, 채찍에 맞아서 갈라지고 터진 주님의 등, 날카로운 가시관에 찢긴 주님의 얼굴을 내 손으로 만져보아야 한다. 그때 진짜 주님의 사랑, 진짜 주님의 희생이 무엇인지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주님은 2천 년 전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 승천하셨다. 그러니 2012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손과 발을 만져볼 수가 있을까? 무엇으로 주님의 창에 찔린 옆구리를 만져볼 수 있을까?

“영과 진리로” 오직 “영과 진리로”드리는 예배를 통해 주님을 만져볼 수가 있고,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에만 주님의 손과 발을 만질 수 있고, 하나님의 진짜 사랑과 희생이 무엇인지도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영과 진리(성령과 말씀) 속에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과 진리의 예배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첫째, 영과 진리의 예배는 “진정으로”드리는 예배다. 즉 위선이 없는 예배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가리운 것이 없이 위선이나 거짓됨이 없이 정직한 모습으로 예배드려야 한다. 예전 개역 성경은 “영과 진리로”를 “신령과 진정으로”라고 번역을 했다. 이 번역도 의미가 있다. 특히 “진정으로”라는 단어는 예배의 본질을 깊이 생각하게 한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는 진정성을 가지고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이기 때문이다.

진정성이 없는 것은 위선이다. 겉으로는 그럴싸하고, 겉으로는 거룩한 것 같고, 겉으로는 신령한듯한데, 그 내면은 그렇지가 않다면 위선이다. 하나님은 위선의 예배는 받지 않으신다. 아니, 위선적인 예배에 대해 분노하신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정통한 예배자들이었다. 그들은 율법의 작은 것까지라도 지키려고 애를 쓰고 경건한 생활을 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들을 향해 주님이 뭐라고 하셨는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 23:27).

성경을 읽다가 “회칠한 무덤”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메스껍고 구역질이 난다. 왜? 그 안에 죽은 사람의 뼈, 썩어버린 육신, 더러운 구더기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위선은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구역질 나는 행위다. 진정성이 없는 예배는 메스껍기만 하다. 온유하신 예수님은 결코 화를 내시는 분이 아니셨다. 그런데 유독 바리새인들에게 대해서는 독설을 퍼부으셨다. “화 있을진저” 분노하셨다. 왜? 그들에게 진정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위선의 가면을 벗고 정직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 그때 우리의 진정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우리의 온 몸으로 체험할 수가 있다.  

 
순종하는 예배

두 번째, 영과 진리의 예배는 “순종하는 예배”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예배가 영과 진리의 예배다. 예배 때마다,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된다. 은혜로운 말씀, 감동적인 메시지도 있지만, 때로는 찔리고 불편하고 두려운 말씀도 있다.

어느 경우에든지 그 말씀을 내게 주신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나에게 불편하다고 해서 그 말씀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면 사랑해야 하고, 헌신하라고 말씀하시면 우리의 몸을 드려 헌신하고, 전도하라고 하시면 거리로 나가 복음을 전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순종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인 기준, 절대적인 원칙으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형편과 상황에 따라 합리화시키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다고 해서 또 사정이 달라졌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시시각각 변하는 이 시대에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배의 부흥’이라는 말이 있다. 또 ‘예배를 통해 부흥이 온다’라는 말도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아무 예배나 부흥이 역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예배, 하나님의 말씀에 생명을 걸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통해 개인도 교회도 부흥이 역사한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했을 때, 마리아와 정혼을 한 요셉은 마리아와 헤어지려고 했다. 솔직히 요셉으로서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정혼자가 어느날 나도 모르게 임신을 했는데 놀라지 않겠는가? 그때 하나님이 요셉에게 말씀하셨다.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마 1:20).

요셉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처녀가 임신을 할 수 있으며, 그것도 성령으로 잉태할 수 있는지 자기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런데 요셉은 그 말씀을 믿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셨기에 그대로 순종하고 마리아를 데려와 아내로 삼았다.

그 순종의 결과는 너무도 위대했다. 인류의 대부흥이었다. 요셉의 순종을 통해 인류는 대부흥의 전기를 맞았다. 죽을 수밖에 없던 인류가 살아나게 되었다. 전 세계 모든 땅에 주님의 교회가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는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났다. 그 부흥의 출발점은 바로 요셉의 순종이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출애굽의 대역사가 시작되었고, 사도 바울이 말씀에 순종할 때 지중해 세계 곳곳에 교회가 세워지고 부흥의 불길이 타올랐다. 베드로의 순종으로 예루살렘 교회는 하루에 3천 명 5천 명이 회개하는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나타났다.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는 예배자를 찾으신다.

 
산 제물이 되는 예배

셋째, 영과 진리의 예배는 “산 제물이 되는 예배”다. 내가 하나님 앞에 제물이 되는 예배가 영과 진리의 예배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우리의 몸이 거룩한 산 제물이 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영과 진리의 예배다. 제물은 제단 앞에서 죽어야 한다. 그런데 바울은 그냥 제물이 아니라 “산 제물” living sacrifice라고 했다. 살아 있는 제물, 살아 있지만 하나님 앞에 죽은 제물로 드리는 것, 그것이 예배다.

살아 있는 제물은 우리의 삶이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죽어서 제물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벨의 예배는 받으시고 왜 가인의 예배는 거절하셨을까? 가인이 죽지 못해서, 가인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산 제물이 되지 못한체 예배를 드렸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도 자기 자신이 죽지 못하니까 분을 내고 안색까지 변하게 되었고 아우 아벨을 죽이고 말았다. 가인의 질투와 시샘이 죽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할 때, 그것은 우리가 드리는 경배와 찬송과 함께 우리 자신도 제물이 되는 것이다. 제물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 그래서 나의 욕망이 죽고, 나의 죄악이 죽고, 나의 허물이 죽고, 나의 질투와 시샘이 죽어서 나의 삶을 산 제물로 드리는 예배가 영과 진리의 예배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내가 죽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다. 내가 죽을 때, 예수님이 보인다. 나의 영광이 죽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닌다. 나의 이름이 죽을 때, 하나님의 이름이 존귀하게 된다. 내가 죽어야 내 삶에서 주님이 살아나신다.

우리 주님께서는 언제나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셨다. 인간의 몸이 되라시면 인간의 몸이 되셨고, 채찍과 모욕을 받으시라면 그대로 받으셨고, 손과 발에 못이 박혀야 된다면 아무런 변명도 없이 손과 발을 내미셨다. 그렇게 순종하신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산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이처럼 주님의 삶은 우리에게 영과 진리의 예배가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주셨다. 그 주님을 본받아 우리도 영과 진리의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 앞에 산 제물이 될 때, 하나님이 부흥의 역사를 시작하실 것이다. 성령의 새바람을 불어주실 것이다.〠

 

정지홍}좋은씨앗교회 담임목사

blog.daum.net/goodseed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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