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씩 만나는 대학동기 모임에서 금융회사 임원이었던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이십 대 젊은 친구들이 몇 년간 주식이나 비트코인에 빠졌어. 한 번 투자하면 세 배를 버니까 얼마나 신이나겠어? 은행이나 증권회사에서는 그들에게 투자액의 세 배를 빌려줬지.
물론 그 청년이나 가족이 제공하는 부동산을 담보로 잡고 말이야. 갑자기 돈이 들어오니까 젊은이들이 골프장에 북적댔지. 매너도 없이 캐디를 대하고 그린에서 막 사진을 찍어 대고 말이야.
그들이 투자한 비트코인 회사가 벌어들인 수익금을 보면 수조 원이야. 코인 거래를 하려면 외환과 바꾸는 절차가 필요해. 금융기관은 높은 수수료를 먹으려고 젊은이들의 투기를 뒤에서 조장하는 주범이지.”
젊은이들을 모두 대박꿈에 마취되게 하는 세상인 것 같다. 내 아들도 주식을 산 것 같다. 그의 말이 계속됐다.
“그러다가 증권 가격이 떨어지니까 청년들이 하루아침에 파산을 하는 거야. 젊은 층의 파산이 의외로 심각해. 외환위기 때보다 내부적으로 더 병들어가고 있는지도 몰라. 그 빚더미에서 빠져나오는 게 불가능해. 정부에서 청년들 채무탕감을 말했다가 여론에 박살이 났잖아? 투기하고 돈을 막 쓴 놈들을 왜 보호하느냐고? 요즈음 골프장에 오는 젊은 고객 수가 떨어졌대. 당연한 거지. ”
그 자리에는 조그만 편의점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가난한 동네에서 오랫동안 편의점을 해 왔어. 그런데 매일같이 로또 복권을 몇만 원어치씩 사가는 사람들이 있어. 거의 병적이야. 하루 아침에 벼락부자가 되고 싶은 거지.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로또복권을 파는 나도 책임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증권이나 복권을 사는 것이 나쁘기만 한 것일까?
일방적으로 매도할 생각은 없다. 옥수동 산꼭대기 허름한 집에서 혼자 가난하게 살던 오십 대 남자가 있었다. 그는 매주 천 원짜리 복권 한 장을 꼭 산다고 내게 말했다. 부자가 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일 주일치 희망을 산다고 했다. 천 원이면 일 주일 동안 작은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고정 관념과 편견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독도 적절한 양이면 약이 될 수 있다.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만 증권열풍이 분 건 아니었다. 삼십여 년 전 내가 삼십 대 때도 주식은 사람들을 달아오르게 했다. 직장동료들도 수시로 모니터에 떠오르는 주가의 변동에 촉각을 곤두세우곤 했다.
나도 한 번 주식을 사 본 적이 있다. 여의도 증권회사 지점장을 하는 고교 동창을 찾아갔다. 그는 사흘만 지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특정회사 하나를 찍어 주어 그 회사의 주식을 샀다.
다음 날부터 계단을 내려가듯 그 회사의 주가가 떨어졌다. 그리고 얼마 안되어 그 주식이 쓰레기가 됐다. 비싼 수업료를 내고 좋은 교훈을 얻은 것 같았다.
아버지 나이 또래의 증권회사 회장과 점심을 먹은 적이 있다. 그는 한국 증권계의 대부로 알려진 분이었다. 그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증권을 단 한 주도 사지 마라. 증권으로 돈 버는 사람은 따로 있는 거야.”
그 말의 행간에는 여러 그림자와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았다. 증권으로 큰 돈을 번 재벌가의 회장이 있었다.
고교 동기의 아버지였다. 그 회장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돈이 있으면 증권을 사지 말고 그냥 보통예금으로 가지고 있어. 증권을 하면 결국에 가서는 돈을 잃어.
나는 증권으로 돈을 번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들어. 그런데 엄 변호사는 안돼. 무조건 하지 마.”
노인회장은 아들 친구에게 뼈있는 충고를 해 주었다. 그 이후 평생을 증권이나 복권 그리고 부동산에 관심을 둔 적이 없다.
내게 떠오른 영상이 있다.
해변에 줄지어 떨어진 동전을 발견한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동전을 하나하나 줏으면서 걸어 나갔다. 그러는 사이 소년은 햇빛에 반짝이는 파란 바다도 하얀 구름도 보지 못했다. 진짜 아름다운 보석을 놓친 것이다.
주가에 정신이 매몰되어 있으면 그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때 내가 얻은 화두가 있다. 어떤 일을 하든 오 년 후에도 이 일이 내게 정말 중요할까 하는 것이다. 통장 속의 숫자의 오르내림이 나의 영혼에 영양분이 되는 것일까.
영혼은 텅 빈 채 통장의 숫자만 본다면 바닷가에서 동전을 줍는 소년과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반대로 오 년 전 오월이십 일 너는 뭘했지?하고 나 자신에게 물었을 때 백지상태이거나 돈만 따라갔다면 후회할 것 같았다.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지 말고 각자의 앞에 주어진 자기의 길을 분명하게 걸어가야 하지 않을까.
주춤거리지 않게 마음을 다잡아 일용할 양식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잔을 기울이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이상의 길을 사람에게 바라지 않을 것 같다.〠
엄상익|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저작권자 ⓒ christianreview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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