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코미디언들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3/11/27 [14:55]

▲ KBS 아침마당 30주년 특집에 출연한 희극계의 큰별 구봉서 장로. <TV화면 캡쳐>     

 

▲ 젊은 시절 배상룡 씨와 꽁트하는 구봉서 씨.(1972년) <TV화면 캡쳐>     

 

우리 세대가 어리던 시절 어른인 그를 ‘막둥이’라고 놀리듯이 불렀다. 희극배우로 불리던 그는 영화 속에서 항상 모자라는 인간이었다. 단체행진을 할 때 남들이 ‘좌향좌’ 할 때 혼자서만 ‘우향우’하고 걸어갔다. 눈알이 굴러나올 듯 눈을 크게 뜨고 눈동자를 한 가운데로 몰아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했다.  

 

볼에 바람을 가득 넣어 얼굴을 풍선같이 부풀려 사람들을 웃게 했다. 영화 속에서 그는 주인공의 용감한 모습에 대비되어 겁먹고 비겁한 연기를 하는 조역이었다. 우리 세대와 친근한 희극배우 구봉서 씨에 대한 어린 날의 기억이다.  

 

우리 또래가 ‘합죽이’라고 부르던 원로 희극배우 김희갑 씨가 있었다. 사람들을 웃게 하면서도 그의 연기 속에는 슬픔이 배어 있었다.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는 흑백영화의 한 장면이 있다. 돈 한 푼 없는 빈털털이인 그가 허름한 주점에서 다른 사람과 술을 먹었다. 그가 취해서 잠시 식탁에 엎드려 눈을 감고 있는 사이 같이 술을 마시던 사람이 돈을 내지 않고 슬며시 가버렸다.  

 

그가 정신을 차리고 주점을 나가려고 하자 주점의 주인은 그에게 돈이 없으면 입고 있는 옷이라고 벗어놓고 가라고 했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입고 있던 겉옷을 활활 벗어서 던져 주고 런닝과 팬티차림으로 거리로 나섰다.  

 

소나기가 퍼붓고 있었다. 그는 소나기 속을 소리치듯 노래를 부르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가난과 외로움이 담긴 희극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우리 시대의 또 하나의 코메디계 영웅은 배삼룡 씨였다. 그의 바보연기는 일품이었다. 맨발의 검정고무신에 낡은 넥타이로 허리춤을 질끈 맨 통이 넓은 낡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는 무대 위에서 개다리춤을 추면서 관객들을 웃겼었다. 코미디를 하는 그들은 자기들 스스로가 부서지고 뭉개지면서 사람들을 웃게 했다. 사람들은 바보가 되는 그들을 보고 즐거워했다. 어린 관객이었던 우리들도 그들과 함께 세월의 물결에 밀려오면서 노인이 되어갔다.  

 

팔순의 노인이 된 구봉서 씨가 텔레비전에서 지난날을 회고하면서 인터뷰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김희갑 씨는 지독히 고생했어요. 잘 데가 없어서 먼지가 가득 쌓인 무대 밑에서 자던 사람이예요. 그렇게 하면서 돈을 벌었어요. 그가 힘들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어요. 그 사람이 인색하다고 욕을 하는데 그러면 안 되죠.”  

 

유랑극단 시절 광대라고 불리며 천대받던 그들은 처절하게 가난했다. 화면 속에 나오던 김희갑 씨의 가난한 연기는 그의 삶 자체에서 우러난 경험이었다. 노인이 된 구봉서 씨가 말을 계속했다.  

 

“나하고 코미디를 같이 하던 배삼룡 씨가 많이 아파요. 그가 누워있는 병원에 갔더니 딸이 돌보고 있더라구. 돈이 정말 없는 것 같았어요. 병문안 가는 사람들이 조금씩 주는 돈으로 아버지에게 붙잡혀 있는 딸이 지내더라구. 그래서 내가 배삼룡을 보고 죽어 죽어 네가 빨리 죽어야 다른 사람이 살아 하고 울었어요.”  

 

평생 바보연기를 하며 사람들을 웃게하던 배삼룡의 모습이 화면에 나오고 있었다. 그는 몰라볼 정도로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그의 눈빛이 클로즈업되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바보가 아니었다. 그 눈은 많은 의미를 던져주는 것 같았다.  

 

다시 시간이 흘렀다. 나이 아흔 살에 가까운 구봉서씨가 아침마당이라는 텔레비전 프로에 나오고 있었다. 몸이 불편한 것 같았다. 옆에 지팡이가 놓여 있었다. 이제 그는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완연한 노인이었다. 그의 얼굴에 지나온 세월이 짙게 스며들어 있었다. 목에도 깊은 주름들이 접혀 있었다. 구순의 노인 구봉서 씨가 이런 말을 했다.  

 

“이제 남은 여생에 할 수 있다면 콧날이 시큰한 비극을 깐 코미디를 하고 싶어요. 코미디언이 되도 꽃피기가 정말 힘들어 그렇지만 나는 누가 때려죽여도 코미디언이야. 마구 웃기다가 순간 눈물짓게 하는 그런 코미디를 하고 싶어. 그런데 너무 늙었어. 심심하면 여러분도 한번 늙어봐요. 나는 남은 시간은 선교를 하다가 갈 거야.”  

 

그는 크리스찬인 것 같았다. 다시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텔레비전 뉴스 화면에서 코미디계의 원로 구봉서 씨의 죽음을 보도하고 있었다. 영정사진 속에서 그가 세상을 내다보면서 선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가난하고 배고프고 어렵던 시절 그와 다른 코미디언들은 자기를 망가뜨려 가면서 세상에 웃음을 선사했다. 좋은 사람들 아닐까. 한 인간을 평가할 때 중요한 게 무엇일까. 정말 중요한 건 목적과 그것을 위한 노력 속에 있는 게 아닐까.〠    

 

엄상익|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 엄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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