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 인간, 그 영혼의 문제

배용찬/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4/09/29 [14:44]

생명은 오로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고 철석같이 믿어왔던 서구사상은 그 서구사회의 산물인 과학이라는 수단으로 그 밑동을 조금씩 허물더니 결국 그 생명을 넘보는 데까지 이르고 말았다. 생명이 귀하다고 하는 명분을 앞세워 그 생명을 죽이고 만드는 일을 합리화하는데 내 건 겉모습만 보고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셈이다.
 
생명을 물질로 보아 이를 조작하여 개량하고 심지어는 다른 모습으로 만드는 일에까지 이르게 된 현재의 과학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가고 있지만 언젠가는 옆도 돌아보지 않고 그 길로 갈 것은 과거의 예로 보아 확실한 행보이다.
 
1960년대부터 일기 시작한 낙태행위가 정당하다고 주장할 때만 해도 일부에서는 거센 반대가 있어 이를 내놓고 시술하지 못했으나 지금은 의학적 지지를 기반으로 보편화되었으며 1980년대에 와서는 시험관아기의 출현을 놓고 한때 생명의 존엄성을 논쟁거리로 하였으나 지금은 이를 입에 올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으로 몰리기 일쑤일 만큼 세상이 변했다.
 
현대과학은 인간의 복제는 아직은 멀었다고 말하고 있다. 돌연변이의 발생으로 장애자, 기형아 그리고 면역결핍 등이 발현할 수 있어 정상적인 생명유지가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으며 체세포 제공자가 가지고 있던 각종 질병요인이 그대로 유전됨으로서 수명이 단축될 것이고 특히 복제과정은 원자나 분자수준에서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함으로써 가능하기 때문에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생쥐의 체세포 복제의 성공률은 2%내외이고 복제양 돌리도 434개의 난자를 사용하여 277번째에야 겨우 성공시킨 작품임을 감안한다면 인간복제는 그리 순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복제는 이론은 말할 것도 없고 시행하는데 여러 기술적 어려움을 모두 마친 이때에 나라마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주장 앞에 일시 몸을 사리고 있지만 멀지 않은 장래에 자기와 똑같은 사람들이 자신의 주위에서 활개 치며 살아갈 날이 멀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그 복제된 인간의 영혼은 어떤 모양일까 하는 것이 우리들의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니까 영혼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세상의 죄악을 오래도록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속성상 어떤 형태로든 영혼이 스며들 것이라는 것이 보편적인 생각이다.
 
이러한 영혼을 가지고 태어난 복제인간은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분야에서 다양하고 새로운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복제된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시점에서 자신은 누구인가라고 하는 문제에서부터 자기를 만들게 한 체세포 제공자는 자기와 어떤 관계인가 하는 등 정체성문제가 필연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래서 복제인간은 개인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인간적인 삶의 존엄성을 훼손할 것이다. 복제인간은 인간을 공장에서 제작될 수 있는 것 또는 손으로 제작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게 함으로써 개인의 가치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나아가 복제인간은 정부나 다른 집단에 의해 비도덕적•착취적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이는 오직 타인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착취하는 것이며, 복제인간이 완전한 도덕적 개인으로서 지니고 있는 평등한 도덕적 가치와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생명은 오로지 절대자 하나님의 주관사항이다. 아무리 인간의 유익을 위한다고 하나 그 영역을 침해당하신 하나님의 노여움은 인간들이 예측할 수 없다. 예측을 못하기 때문에 불을 보고 대어드는 부나비처럼 살아가다가는 인간은 스스로 그 명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배용찬|멜본한인교회 은퇴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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