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와 순종이 개혁의 시작과 끝이다

서을식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2/10/24 [16:25]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고린도전서 6:12)

 

반전 있는 구절이다. 겉으로는 자유로운 허용과 선택이 제공되는 듯 보이나 실제는 정반대다. 속은 듯 약간 씁쓸하지만 결국은 절제와 규모 있는 삶을 선택하도록 설득하는 힘이 있다.

 

종교개혁 505주년 기념 주일이 지나간다. 해마다 10월 마지막 주일이면 “기념만 해서 무엇하나?”라는 회의부터 “기념이라도 해야지!”라는 자조까지 다양한 생각이 스친다. 과거의 개혁 정신으로 현재의 현상을 보면 무엇이 개혁되어야 할까?

 

많겠지만, 시드니의 상황을 자문하면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다. 어느 신학대학 한국어 신학 과정 졸업반 학생, 아직 세례도 받지 않은 그분은 ‘다 그렇게 한다’면서 거리낌 없이 자신의 교회 봉사 활동 이력을 거짓으로 확인해 달라고 했다.

 

의식 있는 누구나 한마디씩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돼 공론의 자리에는 오르지 못하는 문제 아닌가? 호주 이민 사회에 난립한 교회와 신학교 그 가운데 일부이겠지만, 건강하지 못한 교회와 신학교는 스스로 뼈를 깎는 개혁을 하든지 아니면 문 닫아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벌떼처럼 들고일어나 오십보백보라고 양비론을 외칠 사람이 있겠지만 상식적이지 않은 비정상의 극치, 합법을 가장한 불법의 판도라 상자를 언제까지 안고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과잉 일반화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나는 이 문제를 오히려 너무 일반화되어 당연시되는 고도화된 악한 현상의 해체라고 부르고 싶다. 건강치 못한 구조를 설계하고 이익을 취하는 책임자가 먼저 개혁에 앞장서야 한다.

 

아니라면 비정상적인 교회와 학교에서 신분과 이득을 취하는 교수와 목사, 돈을 갖다 바치면서 불법에 기대어 신분 세탁하는 학생과 교인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 집을 향해가는 탕아처럼 자기 자신이 되는 순간을 경험했으면 한다.

 

이 구절은 음행을 경계하는 문맥 첫머리에 등장한다. 육체적 음행만 있지 않다. 영적 음행은 더욱 심각하다. 너 죽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같이 살자고 말한다. 이민사회와 이민교회의 생태계를 오염시켜 모두를 서서히 죽게 만드는 악을 더는 방치하지 말자.

 

“기독교가 미국으로 건너가 비즈니스가 됐고, 한국에 건너와 재벌이 됐다’라는 말이 던지는 성찰과 함께 값싼 은혜를 외친 기독교가 싸구려 종교로 전락한 위기는 이미 현실이다. 종교개혁 기념주일을 맞아 이제는 기념 대신 반성, 말 대신 행동, 유보 대신 순종해야 진정한 개신교개혁 기념주일이 되지 않겠는가?

 

실험실에서 개구리를 물에 넣고 서서히 온도를 올리면 튀어나오지 않고 그 안에서 죽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천천히 높아지는 온도에 익숙하게 잘 적응하다 익어 죽는다. 아니면 고통을 덜어주려는 누군가의 친절한 배려로 처음부터 뇌가 제거된 개구리였기에 스스로 튀어나올 수 있는데도 죽은 것이다. 적응은 타협을 타협은 이탈을 이탈은 죄를 죄는 심판을 부른다.

 

바울 사도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서 모든 것이 가하더라도 다 유익한 것은 아니니 스스로 절제하겠다”고 말했다. 합법을 가장하고자 정교한 위법을 동원해 법에 따른 제재는 받지 않을 정도로 거짓 포장하는 일에 능숙하다면 이미 죄의 종으로 억세게 붙잡힌 것이니 절제하자.

 

그만큼 했으면 충분하다. 지금은 즉각 멈추고 격하게 돌아설 때다. 좌고우면 말고 말씀에 즉시 순종해보라. ‘내려놓는다’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한다.

 

한 번 맞은 팬데믹의 철퇴로 충분하지 않은가? 팬데믹이 잦아든다고, 힘든 시기에 체득한 교훈을 쉽게 잊고 다시 부패의 물레방아를 돌려 더러운 물을 계속 뒤집어쓰지 말자. 다음에 무엇이 올지 모른다.

 

호주 한인 사회의 신용이 회복 불능의 일격을 맞는 치욕적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썩은 부위를 도려내 찰칵거리는 시한폭탄을 제거하자.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다. 오직 말씀에 따른 욕심의 절제와 거룩한 순종 없이 개혁은 시작하지도 끝나지도 않는다.〠

 

서을식|시드니소명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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