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부른다는 것

송영민/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2/11/28 [12:39]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의 “꽃” 중에서

 

들판에 핀 꽃들, 다 하나하나의 그 이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때로는 잡초처럼 대할 때가 있다. 의미없이 피는 꽃은 없다. 마지 못해 피는 꽃도 없다. 이름 모를 그 들꽃에도 하나하나 모두 향기가 다르고 형형색색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난다.

 

우리의 인생에도 잘났거나 못났거나 각자에게 부여된 소중한 아름다움이 있다. 세상에 의미없이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성경에 존재감 없이 살던 인생이 꽃이 된 이야기가 있다. 삭개오 이야기이다. 그는 세관장이고 부자였다. 그의 이름의 원래 뜻은 깨끗한, 순결한 이런 뜻을 가지고 있다. 아마 삭개오가 태어났을 때 부모가 그의 이름을 지을 때 깨끗하고 순결하게 그렇게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붙여준 이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삭개오는 외모적으로 콤플랙스가 있었다. 키가 작은 것이었다. 웬만하면 성경에서 외모 가지고 언급하지 않는데 작다고 한 것은 정말 작았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외모 콤플렉스가 너무 큰 사람인데 이것이 스트레스가 되고 열등감이 생기고 자존감이 떨어지는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가 무시당하지 않고 살기 위해서 자기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으로 택한 것이 돈을 많이 버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당시에 죄인의 대명사 같은 세리가 되어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그는 정말 부자가 되었다. 남들이 함부로 할 수 없을 만 큼, 그런데 문제는 뭔가 그의 마음이 공허하고 허탈하고 행복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돈도 많이 있었고 권력과 지위도 있는데 그렇지만 마음은 텅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그의 인생에 의미 있는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예수님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 사건이다. 삭개오, 그 이름을 불러주는 그 순간에 자기의 존재 가치를 깨닫게 된 것이다. 그의 이름이 불려질 때 그는 그냥 아무렇게나 자라는 잡초가 아니라 그도 아름답고 향기나는 꽃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모든 인생은 하나님이 창조했을 때 존재 가치가 있다. 죄악으로 존재가치를 잃어버리고 살아가지만 하나님은 그 이름을 불러주시고 하나님 나라에 그 이름을 기록하기를 원하신다.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하는 이유

 

어느덧 이민교회 개척해서 목회한지 20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민 교회목회를 하면서 그래도 주님이 칭찬을 해주실 것이라는 기대감은 맡겨준 영혼들을 위해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들에 핀 들풀처럼 존재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 예수를 영접하고 침례를 받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있다. 그 이름을 부르며 침례를 줄 때 예배는 한 영혼이 주께 돌아오는 기쁨의 축제가 된다. 그의 이름이 하나님의 나라 생명록책에 기록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로 영원한 의미가 생기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 기쁨을 아는 성도들은 가만히 신앙생활 할 수가 없다. 얼마 전 목양실에서 늦은 시간까지 사역준비를 하고 있었다. 목양실은 교회의 공간이 여유가 없어 본당 뒤에 위치하고 있다.

 

이미 어두워진 시간에 어린 아이를 데리고 들어 오는 인기척이 들렸다. 그러더니 기도소리가 난다.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를 한다. 그러더니 잠시 후 전화를 건다. 그리고 대화가 이어진다. 내용이 다 들리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기도하던 그 대상자와 통화하는 듯했다. 그리고 또 다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드리는 간절한 기도소리는 예배당에 퍼저 나갔다.

 

한 사람 한 사람 그 이름과 상황을 하나님 앞에 아뢰며 성도의 기도는 하늘의 보좌를 두드린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던 그 이름을 하나님 보좌 앞에 아뢰며 그 이름이 하나님 나라에 생명록에 기록되어지길 원하는 간절한 기도는 참으로 사명을 넘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에 한 사람

 

카일 아이들만은 그의 신간 ‘한 번에 한 사람’에서 예수님이 인류 역사상 가장 영향력있는 비결을 설명한다. 그 비결은 바로 ‘한 번에 한 사람’이다. 예수님은 무리를 대하듯이 사역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무리 속에서 한 사람을 찾으신다. 마치 예수님은 줌 렌즈 카메라를 가지시고 무리 속에서 한 사람을 클로우즈업해서 바라보신다.

목회사역을 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바로 이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랑해야 할 교인들이 무리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목회의 위기도 한 사람 한 사람 보는 법을 잊고 풍경사진 찍듯이 대하는 순간이다.

 

무리를 보고 설교하고 무리를 대상으로 사역하고 무리를 대하듯 막연히 기도한다. 그들은 그저 군중일 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리를 보고 사역하지 않으신다. 무리 중에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으시는 분이다. 무리 중에 자신의 옷자락을 만진 여인을 만나주시는 분이시다.

 

삭개오의 삶이 완전히 바뀐 것도 그 이유에서다. 그는 예수님이 자신에게 다가와 이름을 불러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이름을 불러줄 때 그의 인생에 가치와 의미를 발견한 것이다.

 

삭개오는 행복했을까? 삭개오가 예수님앞에 드린 고백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다고 한다. 또 누구에게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 주겠다고 했다.(누가 19:8)

 

삭개오의 변화된 모습 그의 흥분된 모습이 느껴지지 않는가? 돈이 전부이고 그것만을 추구하며 살아온 그가 자신의 전 재산을 잃어도 좋을 만큼 예수님에게 고백하는 것은 그 인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모든 꽃들은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있다. 골짜기에 피어난 꽃들도 있고, 버림받은 잡초 더미 위에도 꽃은 피어난다. 온실 속에 사랑받는 화초가 있는가 하면 벌판에서 혹한을 견뎌내는 작은 들꽃들도 있다. 우리는 이름 모를 들풀이라 싸잡아 잡초라고 부르지만 모든 꽃들마다 부여된 소중한 아름다움이 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잘났거나 못났거나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에게 부여된 소중하고 의미있는 삶이다. 한 번 뿐인 인생을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늘도 그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이유는 이 시대의 삭개오들이 주님을 만나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며 영원한 행복을 얻길 원하기 때문이다.〠

 

송영민|시드니수정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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